중앙로3가 레스토랑 함지

늙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며 애써 카메라를 피하는 이종석 사장을 겨우 설득해 카메라에 담았다. 김남순 시민기자

1980년 5월 화사한 어느 봄날이었다. 고교 1학년이었던 나는 국방색 교복을 정성껏 다림질해 바지 날을 바짝 세웠다. 생애 처음 레스토랑에서 ‘경양식’을 먹는 큰일을 앞두고 마냥 마음이 떨려 날 세운 바지 칼로라도 잠재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실내에 퍼지는 가벼운 클래식 음악과 우아한 인테리어에 잔뜩 주눅이 들어있는 나를 향해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와이셔츠의 웨이터가 물어왔다.

“밥으로 하시겠습니까? 빵으로 하시겠습니까?”
“스프는 야채로 하시겠습니까? 크림으로 하시겠습니까?”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때 나는 크림스프와 빵을 선택했던 것 같다. 후식으로 좋아하는 아이스크림까지 조심스럽게 먹었는데, 긴장한 탓에 어깻죽지가 뻐근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렇게 레스토랑 ‘함지’에서 벌어진 최초의 서양식 식사는 그저 울렁거림으로만 남아있는 셈이다.

37년이 지난 지금 나는 무조건 야채스프와 밥&빵을 주문한다. 주로 ‘함박스테이크’를 즐기는데 스테이크를 반쯤 덮고 있는 반숙된 계란 노른자위가 식욕을 자극할 뿐 아니라 소고기를 잘게 갈은 뒤 적당히 부쳐낸 감칠 맛 나는 육질이 소스와 함께 입안 전체를 부드럽고 맛깔스럽게 감싸기 때문이다.

올해 일흔여섯이 되는 ‘함지’의 이광석 사장님은 여전히 37년 전 그분이다. ‘에지(edge)’ 있는 멋쟁이인 그는 조카인 웨이터와 그 자리를 줄곧 지키고 있다. 세월이 훌쩍 지나 손님들은 대다수 단골이 되었다.

“몸은 힘들고 크게 남는 것도 없어 그만두고 싶어도 단골 때문에 그만둘 수 없어요.”

테이블이나 의자 하나까지 손님을 배려하는 것이 오랜 시간 ‘함지’를 지속할 수 있었던 비결이며, 제1의 운영원칙이라는 이광석 사장은 지역사회 현안이나 정치사회적인 동향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라 내가 들를 때마다 사회 현안이나 지역의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묻곤 한다.

생경하고 어색했던 서양식 요리집이라는 ‘함지’에 대한 기억은 이제 우리 가족이 자주 찾는 단골집으로 바뀌었다. 기념해야 할 일이 있거나 딸아이 또는 아들 녀석과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주저 없이 찾는 편안한 곳이 됐다.

허리를 다친 뒤 빠르게 늙어가는 모습을 손님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면서 카메라를 피하는 모습에서 그가 지켜내려는 삶의 잣대가 엿보인다. 춘천사람들이 레스토랑 ‘함지’에 발길을 끊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그의 이런 원숙한 겸양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함지
춘천시 명동길 50-1
254-5221

 

 

 

유정배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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