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전의 겨울 이야기다. 학교는 겨울방학을 했고, 체육선생인 나는 두 가지 일에 매달렸다. 육성종목인 조정부에 아이들 여섯 명을 선발해 전국실내조정대회를 준비하기로 했고, 일주일 동안 ‘펜싱캠프’를 열기로 한 것이다.

조정부는 1학년 남학생을 중심으로 로윙머신(에르고메타) 운동으로 체력을 키우고 실내조정대회까지 나가는 것이 목표였다. 펜싱의 경우 도민체육대회 참가경험이 있는 아이들과 겨울방학캠프를 열자고 약속한 것이었다. 조정부는 선수출신으로 인명구조 자격증을 갖고 있는 대학생을 두 달 간 보조코치로 채용해 지도했다. 세 명의 아이들이 전국실내조정대회 생활체육부분에 참가해 1위를 하는 등 방학동안 땀 흘린 것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펜싱캠프는 선수 출신으로 군청 공무직 일을 하고 있는 젊은 친구가 맡아주었다. 이러한 스포츠 활동은 ‘엘리트스포츠’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학생 운동선수’라는 말은 모두 ‘체육특기자’의 다른 말이다. 한국사회에서는 ‘학생선수’라는 용어가 통용되면서 ‘전문체육-엘리트스포츠’ 활동을 하는 아이들을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확연히 구별지었다. 초·중·고를 막론하고 대학교에서까지 운동을 좋아하며 ‘스포츠경기’에 참가하는 ‘학생선수’들을 또래의 아이들에게서 분리시켜 섬처럼 만들어 놓고 ‘스포츠문화’를 영위해 온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성장과 발전의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서열화 돼있는 대학입시제도, 무한경쟁의 입시교육으로 ‘공부기계’를 만들어내는 교육현실에서 체육·스포츠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스포츠머신’을 양산해 내는 데 동원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체육교사로 학교현장에서 많은 변화를 직접 느끼고 있다. 학교에서 더 이상 ‘운동부’나 ‘학생선수’라는 이름으로 다른 아이들과 구별하지 않는 모습도 많이 눈에 띈다. 중학교에서는 합숙이 사라진 지 오래고, 종목별로 각종 경기가 방학 중이나 주말리그로 전환되고 있다. 학교스포츠클럽도 활성화되고 있다. 운동 환경이나 여건도 예전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학생선수들은 ‘과 운동’, ‘기본권 유보’, ‘위계질서’ 같은 것들에서 자유롭지 않다. 일상화된 강요와 학습권 침해도 여전하다. 지도자나 감독은 ‘학생선수’들을 ‘내 새끼들’이라며 사유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전국의 수많은 어린 학생선수들은 오늘도 축구장·야구장·체육관·코트·수영장·슬로프·얼음판에서, 또는 매트·링·강물·도로·말 잔등 위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운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학교장과 학부모들을 비롯해 모든 어른들은 ‘학생선수’들을 ‘동계훈련’, ‘전지훈련’에 기계적으로 내몰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 세 시간 이내로 운동시간을 제한할 것, 그 이상 운동에 내몰거나 일몰 후 훈련이나 경기를 치르는 것은 ‘학대’라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작은 실천이 ‘학생선수의 인권’을 지켜내는 첫걸음이다.

‘학생선수’는 국가대표, 좋은 대학, 고액연봉을 위해 스포츠머신으로 길러지고,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호모스포츠쿠스(Homo Sportscus)가 아니다. 올림픽이 지속되는 한 스포츠를 통해 세계평화를 꿈꾸게 하는 눈물겨운 존재들인 것이다. 세계사적인 평화의 역사를 쓰게 될 평창동계올림픽의 개막, 북측대표단을 기다리는 겨울날들이 참 좋다.
 

김재룡 (화천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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