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가을 이야기를 해야겠다. 민정당 당원이셨던 공무원 아버지와 학생운동에 빠진 둘째 형과 한 방을 쓰고 살았던 고등학생의 이야기다. 힘들게 일하시는 부모님의 등골을 빨아먹는 흡혈귀. 집안 꼴을 엉망으로 만드는 가정파괴범. 내게 둘째 형은 ‘먹고 대학생’이자 ‘불효막심한 자’였다. 아버지의 호통과 읍소는 잦아지고, 대문을 박차고 나가는 횟수는 늘어만 갔다. “제발 우리 둘째 머리에 들어있는 빨간 물을 빼내어 주세요!” 어머니의 간절함이 재수부적을 너덜거리게 만들어도 좀처럼 붉은 기운은 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봄부터 형이 귀가하는 새벽엔 유난히 고춧가루 냄새가 방안에 진동했다.

가을, 어떤 연유로 그곳에 갔는지 기억이 없다. 이유 모를 열정이 가득했던 명동성당 한편에서 독일인 기자가 만들었다는 ‘5·18 광주사태’ 비디오를 보고 만다. 울분과 분노, 정의감 같은 단어는 적확하지 않다. 배신·배반이 어울리는 감정단어다. 살아온 모든 것을 부정하게 만드는 허무함. 1987년, 내게 찾아 온 ‘반란’의 시작. ‘정의사회 구현’과 ‘새마을운동’으로 채워진 가슴은 ‘혁명’과 ‘민주주의’로 데워졌다.

6월항쟁의 승리에도,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에도, 노무현 정권의 탄생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좀처럼 생각대로 바뀌지 않았다. 항쟁의 수혜자는 다름 아닌 전두환의 친구였고, 민주정부 10년 동안 신자유주의는 꽃을 피웠다. 정치권력의 자리엔 슬그머니 자본권력이 지위를 꿰차고 앉았을 뿐더러 자유는 온전히 더 돈을 벌 자유만을 의미했다. 양극화, 소외, 공동체의 파괴는 인간의 세상을 아비규환으로 만들 뿐이다.

더 나은 사회라는 상상력이 요구될 때마다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라는 이방인이 우리 곁에 있었다. 귀화 명 박노자. 그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대변되는 북유럽 사민주의를 비판적으로 소개했고, 한국사회 장기 보수화의 원인을 좌파의 무능과 김대중·노무현 같은 우파 자유주의정권의 시장자본에 대한 백기투항에 있음을 뼈아프게 지적한 바 있다. 그리하여 촛불로 일궈낸 또 한 번의 대전환기에 박노자의 새 책 《러시아혁명사 강의》(나무연필 펴냄)를 만나는 일은 의미 있고 설레는 과정임에 틀림없다.

“원칙적으로 사회주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적인 관리와 통제를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이게 사라지고 간부들의 공장사유화 욕망이 불거지면, 결국 오늘날과 같은 야만적 자본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 두어야 한다. 민주주의 없이, 아래로부터의 적극적인 참여와 감시 없이는 그 어떤 사회주의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러시아 혁명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이다.”

“스탈린이 얘기한 ‘일국사회주의’는 사회주의라는 상표를 떼어내면 결국 국가가 시장을 대체해 압축성장을 해낸다는 논리로 스탈린 치하의 소련체제는 사회주의라기보다는 대민 포섭능력이 뛰어나면서 고속 압축적 성장을 지향하는 국가 단위의 비(非)시장적 개발주의, 이른바 ‘적색 개발주의’라 명명해야 한다.”

“김일성, 마오쩌둥, 스탈린 계열은 공통적으로 관료의 위계질서적 지배를 정당한 것으로 보았다. 혁명 이후의 정치투쟁 과정에서 급진적이거나 좀 더 사회주의에 가까운 노선을 주장하던 계파들이 몰락했고, 보수적이면서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가능한 경제개발을 우선시했던 계파들이 현재 이 나라들의 지배층이 되었다.”

이 책은 러시아 혁명의 주역인 레닌, 트로츠키, 스탈린의 일생과 사상, 유럽좌파 정당의 역사와 아시아 혁명의 성격, 특히 한국사 전공자답게 조선공산당의 역사성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 칭하는 ‘나’의 주변엔 좌파운동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 레닌의 말대로 좌파운동이 늪에 빠진 사람이 자기 머리카락을 당기며 늪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최소한 나는 이런 모습의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를 증오한다. 러시아혁명은 비록 실패했지만 비시장적 산업모델을 역사 속에서 실험한 최초의 준거(準據)가 되었다. 더 나은 사회란 결국 자기소외 없는 개인에 도달함을 의미하지만 말이다.

 

류재량 (광장서적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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