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동부민요보존회 변기영 회장

변기영 회장은 ‘동부민요’는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 생성돼 전승된 노래로, 민초들의 애환이 가장 잘 표현된 민요라고 설명한다. 김남순 시민기자

곧 설날이 다가온다. 설날은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가장 큰 명절이다. 설날에는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에게 세배를 하는 것으로 새해 첫날을 맞이하고, 차례가 끝나면 온 가족이 모여 민속놀이를 하며 함께 즐기기도 한다. 민요는 민속놀이에서 우리 정서를 대변하고 흥을 돋우는 데 항상 함께해온 우리 노래다. 지난해 11월 25일, 사단법인 한국동부민요보존회에서 주관하는 ‘제1회 동부민요·아리랑 전국경연대회’가 많은 경연자가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마쳐 관심을 모았다. 설을 즈음해 이 행사를 주관한 사단법인 한국동부민요보존회 회장이며 경기민요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이수자인 변기영 회장을 만나 동부민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민요가 우리의 노래라고는 하지만 막상 민요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고 마땅히 들을 기회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민요란 무엇이고, 동부민요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민요는 보통 민중들의 생활을 노래한 것으로 민중들 사이에서 구전돼 민중들의 사상이나 감정 등이 담겨 있습니다. 노동을 하면서 박자에 맞추어 소리를 내고, 소리에 선율을 얹어 부르면서 시작됐을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우리나라 민요는 지역별·언어별로 5가지로 구분이 됩니다. 평안도와 황해도를 중심으로 한 ‘서도민요’, 서울·경기·강원도 일부지역의 정형화된 밝고 경쾌한 ‘경기민요’, 호남지역에서 불린 ‘남도민요’와 제주지역의 ‘제주민요’, 함경·강원·경상도를 아우르는 태백산맥 동쪽 가장 광범위한 지역의 민요인 ‘동부민요’가 있습니다. ‘메나리토리’ 선율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는 ‘동부민요’는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 자연스레 생성돼 구비전승이 돼온 소리로 민초들의 애환을 가장 잘 표현한 민요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제1회 동부민요·아리랑 전국경연대회

동부민요를 이야기할 때 ‘메나리토리’라는 음계와 선율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메나리토리’란 무엇인지요?


‘토리’라는 말은 한 지역의 민요가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음악적 특징을 가리키는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우리나라 민요는 이 ‘토리’라는 말로 민요권을 구분해왔는데, ‘메나리’라는 말은 강원·경상도에서 김매기를 할 때 부르는 노래 이름입니다. 여기에서 유래된 ‘메나리토리’의 구성 음은 ‘미·솔·라·도·레’의 5음계로 되어 있고 주요 음은 ‘미·라·도’입니다. ‘미’에서 작게 떨고, ‘레’에서 ‘도’로 흘러내리며 ‘미’와 ‘라’로 끝나지요. 메나리토리의 대표적인 노동요로 <메나리>·<산유화가>·<어산요>·<아라리>·<목도소리>·<노 젓는 소리> 등이 있으며, 판소리로는 <심청가>에서 심봉사가 맹인잔치에 가면서 부른 ‘길소리’와 심청 어머니의 상여가 나갈 때 부르는 ‘상여소리’ 등이 있고, <쾌지나칭칭나네>·<강원도아리랑>·<정선아리랑>·<한오백년> 등이 있습니다.

민요에 대해 잘 몰라 동부민요에 대해 먼저 여쭈었는데, 선생님은 언제부터 민요를 시작하셨는지요? 민요를 공부하는 과정도 그리 쉽지만은 않으셨을 텐데요.

운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홍천이 고향인데 어렸을 때 집안 선반에 증조부님의 거문고가 있었어요. 서당 훈장님이셨던 조부는 아침마다 퉁소를 불어주시고 시조를 읊어주시곤 했습니다. 민요나 시조는 생활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서울 이모님 댁에서 다니면서 근처 파고다공원에서 종종 열리는 국악인 지화자 선생님의 공연을 보며 고향을 그리워하곤 했습니다. 당시 사회가 국악을 천시하던 풍토여서 저도 대학에서는 국악보다 서양음악을 전공하고 싶어 서울대 안형일 교수와 이정희 교수 등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레슨을 받아야 하는 등 여러 여건이 맞지 않아 부모님의 권유로 서울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하고 집에 와서 이유 없는 병으로 시름시름 앓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때 우연히 TV에서 시조 명창이 출현해 시조를 하면서 병이 나았다는 방송을 보고 걷기도 힘든 몸을 이끌고 당시 방송통신대학 근처에 있던 국악원을 찾아갔습니다. 시간만 나면 국악원에 가서 시간을 보내던 중 어느 날 내 몸이 나아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호흡을 통해 자연적으로 치유가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그것이 민요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되고, 그곳을 통해서 선생님의 성장이 이루어졌던 것일까요?

아니요. 그것이 계기가 된 것이고, 어릴 적부터 듣던 소리와는 거리가 있어 어느 순간 그만두게 되었지요. 그때 27년 만에 우연히 찾아온 초등학교 동창생을 통해 서울에서 경기민요 인간문화재 고 묵계월 선생님을 만나게 되고, 제 소리를 듣고 무조건 짐을 싸서 오라는 말씀을 들었어요. 그때부터 13년 동안 꾸준히 일주일에 두 번씩 서울을 오르내렸고, 17~18년 만에 선생님께 경기민요를 사사하고 이수자가 되었습니다.

기민요 이수자가 된 것인데, 그렇다면 동부민요를 만나게 된 것은 어떤 계기였을까요? 그리고 동부민요 공부는 어떻게 하셨는지요?

경기민요 이수자가 되었는데도 소리에 대한 갈증은 끝이 없었습니다. 내가 듣던 소리, 부르고 싶은 소리와는 다르다는 생각 때문에 만족이 되질 않았습니다. 하고 싶은 소리가 아니었던 것이지요. 2008년쯤 ‘상여소리’를 듣고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소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렸을 때 들었던 ‘소 몰던 소리’가 같은 맥락이고 메나리조 민요인 동부민요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미 경기민요 이수자여서 초·중·고교나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음에도 아이들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 최초의 동부민요 전공으로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맘껏 동부민요를 공부할 수 있으리라는 부푼 기대와 달리 동부민요 과목은 개설은 되어 있으나 막상 실기공부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함경도·강원도·경상도 지역의 동부민요를 부른다는 소리꾼을 직접 찾아다니며 실기를 배우고 자료도 수집하게 되었습니다.

경기민요 이수자로 이미 일가를 이루었음에도 적지 않은 나이에 다시 동부민요를 공부하고 최초의 전공자가 되었는데요. 동부민요의 어떤 매력이 선생님이 평생을 두고 몰두하게 했을까요?

우리나라 종교가 샤머니즘이었다가 불교가 들어오면서 스님들이 범패를 많이 불렀습니다. 범패는 불교의 재의식에서 부르던 음악이죠. 예전에 어려웠던 시기에 사찰에 의존해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내려와서 범패의 가락에 자기 생활의 이야기를 얹어서 노동현장에서 부르던 음악이 주로 동부민요가 되었지요. 그래서 동부민요는 한스럽고 애잔합니다. 동시에 치유의 능력이 있어요. 요즘 음악이 빠르고 감정을 선동시키는 반면 민요는 정화의 능력도 있습니다. 부르고 나면 가슴 속 넋두리를 풀어놓는 듯한 느낌, 그것이 치유고 정화입니다.

선생은 민요가 전승되는 현장을 방문해 직접 그 지방의 민요를 배우고 그런 민요와 관련된 자료를 모으며 악보를 만들고 비교연구를 통해 하나하나의 특징을 밝히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남한 쪽은 어디든 맘대로 다녔으나 함경도 민요는 북한을 갈 수가 없어 애태우던 중 다행히 중국 연변에 사는 《중국 조선족민간음악전집》 편저자 김봉관 씨를 찾아가 음원과 가사를 구할 수가 있었고 중국에서 구입한 북한민요 《조선민족음악전집》을 참고해 민요, 북한민요, 연변민요를 비교·연구해 동부민요 석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50이 넘은 나이에 경주생활 7년 반 만에 이룬 결과였다. 그렇다면 이렇게 연구했던 동부민요의 전승과 보급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2012년부터 홍천에서 ‘동부민요 경창대회’를 4년간 개최했고, 문광부에서 지원하는 인생나눔 프로그램에 선정돼 군인부대나 학교를 찾아가 민요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KBS 문화아카데미나 강원대 평생교육원에서 교육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국을 다니며 수백 회의 공연을 이어가고 있고, 호주나 미국에서 한 공연은 곧바로 교육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시드니나 멜버른에서는 동부민요보존회 지부를 요청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지난해 11월 KBS춘천방송국에서 ‘제1회 동부민요·아리랑 경연대회’를 개최해 참가자 98명을 심사하고 수상자를 선정했습니다.

그동안 홍천에서 4회에 걸쳐 ‘홍천전국동부민요경창대회’를 개최해 왔는데, 춘천에서 ‘동부민요·아리랑 경연대회’를 개최하게 된 계기와 의미는 무엇일까요?

태백산맥 준령을 중심으로 강원도, 함경도, 경상도 지역에서 내려오는 민요를 동부민요라고 하지요. ‘강원도아리랑’은 동부민요의 대표적인 노래이기도 합니다. 저는 강원도가 동부민요의 전승과 보급에 중심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침 도에서 지원이 이루어지고, 춘천KBS총국의 협조가 이루어져서 좀 더 포괄적으로 아리랑과 동부민요를 아우르는 대회를 기획하게 되었고, 강원도의 중심인 도청소재지가 있는 춘천으로 장소도 옮기게 되었습니다.

변기영 회장을 인터뷰하는 과정은 막연하게 알고 있던 민요에 대해 구체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직도 변기영 회장의 마지막 당부의 말이 귀에 남는 것은 그만큼 공감이 되는 바가 크기 때문이리라.

마음이 감흥을 느껴 입 밖으로 나오는 게 감탄사고, 감탄사에 선율을 더하는 게 음악이고, 그 음악을 느끼는 대로 하는 몸짓이 춤입니다.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요. 정치와 음악은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이 바로 서면 나라도 바로 선다고 생각해요. 유교에서 예(禮)와 음악(樂)을 결합시켜 예악이라 부르는데, 예와 음악을 결합해 인간 도덕성 제고나 도덕적 인격의 도야에 활용하는 것이 유가철학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행정이 교육을 통해 민요를 보급하는 데 앞장서 줬으면 좋겠습니다. 의전이나 행사에서도 서양음악보다는 우리 음악을 사용했으면 하는 것이 일선에서 민요를 보급하면서 느끼는 바람입니다.

원미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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