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와 경칩 사이 봄볕이 가볍더니 간밤의 폭설이 길을 막는다. 견고한 유리의 계략이다. 눈꽃을 받들고 있는 너, 그걸 바라보고 있는 나, 표정도 온기도 없는 유리벽이 너와 나 사이를 갈라놓는다. 애타게 찾고 두드리고 밀며 너에게 닿고자 했으나 꿈은 끝내 꿈일 뿐이었다, 유리벽 안의 ‘나를 꺼내 줘’ 그 울부짖음은 나의 것이고 너의 것이다. 인간성을 상실한 현대인들의 고독과 절망이 뼈에 사무친다. 십여 년 동안 앞집에 그가 살았어도 그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누가 떠나고 누가 새로 이사를 왔는지 현관문 하나 닫으면 그의 죽음마저 너무도 조용하다. 알 필요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소통 부재, 공감 부재, 흥분하거나 화내지 않으며 기다려주거나 머뭇거리지 않는다. 죽음처럼 껴입고 다니는 너와 나의 유리벽은 너무도 견고하고 냉정하다. 간혹, 누군가 먼저 내게 손을 내밀지만 나는 오히려 낯설고 불편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누군가에게 간섭 받는 것도 거부한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생을 즐길 것이고 수많은 그들 또한 그러할 것이다. 현대인들에겐 타인에게 가는 통로가 없다. ‘우리’라는 말이 머지않아 사전에서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오늘 지구의 그늘에선 ‘me too’를 부르짖는 목소리들이 자신의 유리캡슐에 돌을 던지고 있다. 스스로 피 흘리고 또, 누군가를 칠 것이다.

송병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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