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북읍 지내리 3개 마을, ‘도촌동약’에 따라 수백 년 동안 대동계 전승
핵가족화·고령화로 위기 직면…계원 50여명 불과해

지내리 도촌동약. 400여년 전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규약집과 구성원들의 이력을 적은 좌목으로 구성돼 있다. 

춘천의 북쪽에 있는 신북읍은 원래 북중면이었으나 일제강점기 신북면을 거쳐 1995년 신북읍으로 승격된 지역이다. 신북읍에는 오래된 마을이 아주 많다. 2천년 전 맥국의 도읍지라고 했을 만큼 조상들이 살아온 오래된 흔적이 수없이 발견된다. 그 중에서도 500년이 넘은 은행나무와 조성된 지 200년이 넘은 저수지, 400여년을 이어오는 대동계 등 오랜 유산을 지닌 마을이 있다. 3개리의 행정리로 이루어진 지내리가 그 주인공이다.

지내리는 예로부터 질그릇이 많이 생산되는 마을이라고 해서 도촌(陶村)이라는 지명으로 불렸다. 또, 마을 입구에 200여년이 넘은 저수지가 있어 연못 안쪽 마을이라는 뜻으로 지내리라고 불렸다. 마을에는 아직도 맥국시대의 지명으로 알려진 성문안이란 지명이 남아 있다. 영서지역에서 드물게 400여년 전 만들어진 마을규약에 따라 지금도 3개 마을이 함께 도촌동계라는 대동계를 이어가고 있다.

3개 마을이 대동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는 바로 도촌동약(陶村洞約)이다. 도촌동약은 권선징악을 장려해 악을 벌하고 선을 포상하는 규범집으로 구성된 규약과 마을의 구성원들의 이력을 적은 좌목으로 구성돼 있다. 조선 중종대에 만들어진 향약의 규범에 따라 만들어져 400여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도촌동계는 각 마을에서 일정 부분의 분담금을 내어 동계를 열고, 한 해의 결산과 함께 촌장격인 계장이 주민들에게 마을의 역사와 유래를 설명하고 어른을 공경하고 이웃과 더불어 살 것을 권장한다. 계를 마치면 참여한 모든 주민들이 음식을 나누며 우애를 다진다.

그러나 핵가족화와 고령화로 인해 400여년을 이어온 도촌동계도 위기를 맞고 있다. 마을에 젊은이들은 없고 노인들만 남아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도촌동계가 열린 지난 23일에도 대동동계를 위해 모인 3개 마을의 계원들은 남녀를 합쳐 50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의식한 듯 김영대 대동계장은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도촌동계가 있는 마을, 춘천에서 제일가는 지내리가 현대에 들어 공동체에 대한 의식이 사라져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아쉬워하면서 “400여년이 넘는 중요한 문헌을 잃어버린 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자책하기도 했다. 김 계장이 말하는 중요한 문헌은 도촌동약의 원본으로 10여년 전 어느 대학의 교수가 가져간 후 돌려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동계에 참석한 류홍규 신북읍장은 “3개리가 모여 400여년째 대동계를 이어오는 특별한 마을이라는 자긍심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부탁했다.

대부분의 참석자가 고령자인 마을주민들은 얼마 전 벌어진 국립춘천박물관의 맥국논란에 대해 성토를 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마을의 중요 유산인 맥국의 정체성을 말살하는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귀농·귀촌이 늘어나 원주민들이 떠난 자리에 새로운 정착민들이 이주해오면서 마을의 오랜 전통이 사라져가고 공동체에 대한 의식도 점점 낮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400여년을 넘게 동계를 이어오며 마을의 자랑거리로 지켜나가려는 지내리 마을의 사례는 공동체 문화가 퇴색돼가는 현대에 묵직한 울림을 주고 있다.

 

 

 

오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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