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전교생이 함께 하는 독서동아리

인디언들은 3월을 일러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달(체로키족)’, ‘한결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달(아라파호족)’이라 한다.

지난해 이맘 때, 새 학년 새 학기를 맞는 설렘으로 춘천여중에 발령을 받았다. 그동안 독서교육의 근간이 되는 독서동아리 활동이 늘 일부 아이들과의 만남으로 그치는 것이 아쉬웠다. 학교를 옮겨 교과협의회를 열고 야심차게 전교생 독서동아리 구성을 제안했다. 작은 학교에서야 가능한 일이었지만 대도시 학교에서 가능할까 의심했었다.

국어교사들의 열정과 의지가 정말 고마웠다. 우선 교육과정 재구성부터 협의했다. 전교생이 매주 국어시간 1시간을 오롯이 독서활동 시간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분주한 3월의 만남이 얼추 정리되는 3주차에 접어들며 전 학년 국어교사와 희망교사들을 대상으로 독서동아리 활동의 중요성과 ‘함께 읽기’의 의미, 활동방법, 동아리 구성방안에 대해 공개수업을 열었다.

3월 말, 전교생 606명이 모두 4~5명씩 모둠을 이루어 독서동아리 150개(1학년 45개, 2학년 56개, 3학년 49개)가 조직되었다. 한 학기 단위로 지속될 동아리 구성원은 국어수업은 물론 가능하면 다른 교과시간에도 모둠활동으로 이어지도록 안내했다.

학교도서관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소장하고 있는 장서를 다시 점검해 4~5권의 복권 중심으로 동아리 활용도서를 별도 서가에 정리했다. 특히 1학년은 ‘책 읽는 입학식’과 연계해 입학식 때 받은 책 선물을 3월 한 달 자유롭게 읽은 후, 자발적 기증을 권장해 도서관에 모아 다시 동아리용 ‘함께 읽기’ 도서로 묶고, 부족한 책은 도서구입비를 활용해 근간 청소년 권장도서로 구비했다. 3월 말, 춘천여중에 학생 독서동아리 150개, 교직원 독서동아리 30명, 학부모 독서동아리 18명이 조직되었다.

얘들아, 한 달 한 권 함께 읽자
노랑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
숲이 통째로 필요하다
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다
지구는 통째로 제비꽃 화분이다


교실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시를 함께 낭송하며 인사를 나눈다. 도서관 수업을 예고한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아이들은 미리 모여 동아리원이 모두 동의하는 한 권의 책을 대출받아 자리에 앉는다. 1주차 독서시간은 동아리별 혼자 읽기의 시간이다. 아이들은 잔잔한 음악의 선율에 몸과 마음을 열고 각자 책읽기에 몰입한다.

2주차 독서시간은 간단한 활동지를 기록하며 함께 읽기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방과 후나 주말을 이용해 이미 완독한 아이들은 인상적인 구절이나 궁금한 점을 개인별 활동지에 메모하고, 개인적으로 읽고 싶은 책을 대출받아 읽는다.
3주차 독서시간은 동아리별로 함께 읽은 책의 활동지를 바탕으로 자유롭게 책대화를 나누며 책놀이로 즐겁게 이해를 돕는 시간이다. 4주차는 동아리별 독서발표회 시간이다. 각 동아리별 발표자가 함께 읽은 책과 인상적인 에피소드 등을 소개하며 소통과 나눔 공감의 시간이다. 아이들이 직접 읽은 책을 들고 나와 소개하고 경청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교사의 열 권 권장도서보다 또래 친구들의 독서경험으로 직접 소개하는 한 권의 책이 훨씬 감동으로 다가선다. 한 달 한 권 함께 읽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독서동아리 한마당, 책이랑 놀자

6월 중순, 동아리별로 진행이 빠른 모둠은 어언 3~4권의 책을 함께 읽었다. 활동이 다소 느슨해지는 시기에 독서동아리 중간활동 정리 겸 중간발표회 시간을 학년별로 가졌다. 1학년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체육관 마루에 모여 앉아 김은하 저자를 초청해 독서동아리 활동에 대한 특강과 워크숍을 실시하고 각 반별 대표동아리를 선정해 프리젠테이션 발표를 통해 소통과 나눔의 장을 열었다. 2·3학년 도서부 선배들이 특별히 언니들의 책읽기 활동에 대해서도 소개하며 후배들의 책읽기 활동을 격려하기도 했다. 독서교육 전문가인 김은하 저자 특강을 통해 아이들은 읽은 책에서 저마다 소중한 씨앗문장을 찾아 간직할 줄 알게 되었고, ‘함께 읽기’의 소중함을 느꼈다.

다양한 독서문화체험, 온몸으로 책읽기

매달 도서관의 이벤트 독서행사는 물론,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에 따라 책과 함께 펼친 다채로운 독서문화 체험활동은 아이들의 책읽기를 활기 넘치게 했다.

신록이 피어나는 5월엔 인제군 자작나무숲과 만해마을 한국시집박물관, 여초서예관을 탐방해 사제동행 ‘독서문화생태 체험활동’을 함께 하며 돈독한 정담을 나누었다. 교정의 등나무 넝쿨 숲이 초록으로 치닫는 7월의 여름엔 ‘음악으로 떠나는 책 속 세계여행’을 주제로 스피릿앙상블 연주단을 초청공연해 책과 함께 하는 격조 높은 음악회를 갖기도 했다. 가을햇살이 도서관에 번지는 오후엔 ‘책, 세상을 열다 - 낭독이 있는 오후’ 행사를 학생·교사·학부모 독서동아리가 함께 교육공동체 행사로 추진하며 아이들의 목소리로, 더러는 선생님이나 아빠·엄마의 목소리로 한 권의 책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함께 읽으며 먹먹한 감동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11월의 늦가을 무렵,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기리며 추진한 ‘교내 시낭송콘서트’는 아이들의 숨은 끼와 재량이 마음껏 발휘되는 장이었다. 윤동주 시인과 시 작품을 주제로 학급별로 제출한 다양한 UCC 동영상을 감상하며 모든 이들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플루트와 첼로 연주로, 시 낭송으로, 윤동주 시인의 삶을 시 한 편을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하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책읽기를 다소 힘들어하는 아이들과는 영주 부석사의 단풍과 노란 은행나무숲, 순흥의 위리안치지, 소수서원을 걸으며 동아리 친구들과 손을 맞잡았고, 함박눈 내리는 겨울엔 서울의 한글박물관과 별마당도서관을 함께 탐방했다.

매달 책의 저자를 학교로 초청하여 ‘작가와의 만남, 그 아름다운 소통과 향기’의 시간을 열기도 했다. 박경희, 김도연 소설가, 김정수 시인, 한수정 생태그림 작업가, 김성호 저자, 김장성 그림책 작가, 한영수 시인 등을 초청하여 따사롭고 밀도 있는 시간이 이어지기도 했다. 독서활동이 단순한 책읽기로 그치지 않고, 작가를 직접 만나고 각자 읽은 책에 작가의 격려가 담긴 한 줄 사인을 받고, 작품의 배경지를 찾아 답사하고 동행한 친구와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던 시간들은 오롯이 아이들의 가슴속에 남아 먼 훗날 소중한 삶의 힘으로 솟구치리라 믿는다.

 

 

 

 

 

학년 말 독서동아리 프리젠테이션 발표회

학년말, 학교축제로 들떴던 분위기가 독서토론 동아리 프리젠테이션 발표회를 가지며 비로소 차분하게 가라앉는 시간이 되었다. ‘산책, 초록창, 열네 살 인생, 도란도란, 꼬꼬닭, 스케치북, 섹시퀸, 말랄라, 중등래퍼…’ 등 1~3학년 전교생 22학급의 각 반 대표 동아리가 한 해 동안 함께 읽기를 한 책과 활동내용, 에피소드, 동아리가 뽑은 최고의 책, 소감 등을 프리젠테이션 발표로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선후배를 막론하고 아낌없는 격려와 칭찬의 박수가 두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중학교를 떠나는 3학년들은 고등학교 독서활동의 기반이 될 것이고, 1·2학년은 새 학년을 맞아 시행착오를 극복하며 지속적인 독서활동의 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었다. 각 반의 4~5명 동아리 친구들이 한 해 동안 함께 읽은 책이 10권, 개인별로 읽은 책이 5~10권, 적어도 아이들은 1년 동안 대략 15~20권의 책을 꾸준히 읽어온 셈이었다. 발표 동아리원 모두에게 책 선물을 주었을 때 아이들의 환호를 들으며 가슴 벅찼다. 함께 읽기를 통해 생각을 나누고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책읽기의 습관이 아이들의 평생독서로 이어지는 디딤돌이 되길 바랐다.

 

함께 읽기의 위대한 힘

더디지만 ‘함께 읽기’를 통해 책으로 맺어진 아이들이 책 밖으로 걸어나와 더 큰 세상을 보고 다른 이와 소통하고 공감하며, 이웃의 아픔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갈 때 가슴에 밀려오는 뜨거움이 있다. 교육현장에서 우리 아이들이 희망을 느낄 때는 오로지 교사나 부모의 삶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때뿐이다.

아무리 현실이 어렵더라도 지금의 현실 조건에서 교사가, 부모가 반 발짝이라도 앞서서 살아가며 보여주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경험한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삶에 대한 자신감을 잃지 않고 헤쳐 나갈 것이다.
어른들이 책읽기를 통해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은 물론, 여럿이 함께 책 대화를 통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그려가는 모습은 그 자체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열어가는 희망이다.

책읽기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진정한 공감의 힘을 키우고,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삶의 주제들을 탐구하고 소통하는 힘을 키워가는 그 길에 어른들의 함께 읽기가 희망을 열어 가리라. “혼자서 꿈을 꾸면 그건 한갓 꿈일 뿐이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새로운 현실의 출발”이 됨을 믿는다.

 

 

 

 

한명숙 (춘천여중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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