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FOCUS] 대한민국 리코더계 살아 있는 역사
[문화 FOCUS] 대한민국 리코더계 살아 있는 역사
  • 춘천사람들
  • 승인 2018.03.07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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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더 마이스터 조진희 교수



우리나라 최고의 리코더 연주자이자 최초의 리코더 제작자 조진희(58·사진) 교수가 오랜만에 춘천을 찾았다.

춘천에서 태어나고 자라 음악을 공부하고, 리코더를 배우기 위해 떠났다가 돌아와 한국 리코더 음악의 뿌리를 내린 춘천을 다시 떠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춘천에 리코더와 하프시코드를 중심으로 한 국제음악축제인 춘천고음악제를 안착시키고, 서면에 작업실을 열어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제작의 길을 걸어왔던 그였다. 최근 주요 활동무대가 중앙에서 더 확장되면서 자연스레 거처를 옮겨갔지만 그가 음악적 뿌리를 내린 기름진 토양은 언제나 춘천이었다.

관객 30명. 예약으로만 받겠다던 지난달 27일 카페 ‘느린시간’에서 열린 연주회는 미처 발을 디디지 못해 돌아간 사람이 있었을 정도로 그의 리코더 음악의 아름다움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다. 소프라노 리코더를 다 덮을 만큼 커다란 손으로 섬세하게 8개의 구멍을 쥐락펴락하면, 어느새 귀여운 새 한 마리가 날아오르고 시원한 바람이 머리칼을 쓰다듬는 기분이 든다.

태어난 지 가장 오래된 나무 악기. 초등학교에서 1인 1악기 보급으로 모두의 손에 쥐어주었던 리코더. 그 맑고 청아한 음색에 빠져든 한 남자. 그리고 아무도 걸어오지 않은 길에 화석처럼 발자국을 남기는 조진희 교수. 당시엔 리코더 악보를 구하지 못해 어설픈 실력으로 편지를 써 일본으로 날려 보냈다. 그렇게 구한 리코더와 리코더 악보들.

리코더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국내엔 리코더 학과가 없어서 플루트로 급히 전공을 바꿔 강원대 사범대학 음악교육과에 진학했다.

대학을 마치고 잠시 교편을 잡았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는 갈증. 그 작고 예쁜 악기의 맑고 청아한 음색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남들보다 한참 늦은 스물아홉에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을 떠난다. 5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전문 연주자의 길을 걷기 작했다. 그러다 1998년 춘천 리코더 페스티벌을 탄생시키고, 리코더 앙상블 캠프, 청소년 리코더 합주단 창단 등 리코더의 보급과 발전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2003년부터 2004년에는 춘천시립합창단의 상임지휘를 맡았다. 그 무렵 그는 돌발성 난청을 진단 받았다. 어느 날엔 귓속에서 파도가 치기고 했고, 또 어느 날엔 태풍이 불어오기도 했단다. 절망의 끝에서도 결국 그는 리코더를 포기할 수 없었고, 연주자의 길에서 한 발 물러나 제작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 그는 그 호된 시기를 거쳐 우리나라 최고의 리코더 연주자로 또 제작자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리코더 마이스터 조진희는 현재 한국종합예술학교 음악원과 백석대 콘서바토리에서 후학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한국리코더연주자협회장과 한국고음악협회장을 맡고 있으며, 조진희리코더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김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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