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켈레톤 금빛신화의 숨은 공로자 윤경구 교수

지난달 9일 시작된 평창동계올림픽이 25일 폐막식과 함께 막을 내렸다. “선수촌과 경기장 시설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평창올림픽에 크게 만족한다”(토마스 바흐 IOC위원장), “평창올림픽의 문제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브루스 아서 캐나다 스포츠 칼럼니스트)라는 찬사에서 보듯이 평창동계올림픽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었다. 애초 기대보다 걱정이 많았던 올림픽이었다.

그러나 외신기자들과 선수들은 경기운영과 경기장 시설에 가장 많은 점수를 주었다. 빙질에 대한 선수들의 호평을 증명하듯 올림픽 신기록이 쏟아져 나왔다. 남자 스켈레톤 경기에 출전한 윤성빈 선수(24·강원도청)가 압도적인 기량으로 1위를 기록하며, 한국은 물론 아시아 썰매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금빛 소식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숏크리트(Shotcrete)’ 첨단시공기술로 썰매종목인 봅슬레이, 스켈레톤, 루지 겸용 트랙을 성공적으로 완공한 윤경구(57·강원대 토목공학과) 교수다. 윤 교수는 일본과 올림픽 분산개최라는 IOC 권고가 무색하게 30개월이 소요됐던 기존의 트랙 공사기간을 12개월로 단축시키는 획기적 결과를 만들어냈다.

 

 

 

‘숏크리트(Shotcrete)’공법은 윤 교수가 개발한 우리나라 첨단시공기술로 압착공기에 의한 스프레이 시공에 쓰이는 콘크리트, 즉 분무기로 뿌려서 사용하는 콘크리트다. 썰매트랙이 얇은 15센티 두께의 단면이면서 1천800m 길이에 16개 커브구간을 설치해 역동적인 경기를 구현할 수 있도록 했다. 거푸집으로 모양을 만들고 시멘트를 비벼서 타설하는 형식은 평면의 일반적인 시공방법이다. 그러한 공법은 곡선을 시공하기 어렵다. 펌핑을 할 경우 거푸집이 없이 곡판 제작이 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해 일반 콘크리트처럼 흘러내리지 않고 원하는 곳에 잘 붙는 시공재료와 공법을 개발한 것이다.

동계스포츠 썰매종목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국내의 상황에서 수요도 없는 분야를 연구한다는 것은 무모할 수 있다. 그의 연구 계기와 과정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국내 연구도 전무하고 유럽에 비해 현저한 기술적 차이를 생각하면 트랙 제작을 선진기술에 용역을 주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았겠는가라는 우문에 윤 교수는 학자다운 현답으로 설명했다.


“모두가 하는 것을 따라하는 것은 연구가 아니죠. 숏크리트라는 것이 토목의 영역에서 중간위치적 성격을 띠어요. 재료의 구성성분에서 보면 콘크리트 전공자들의 연구영역이지만 실제 사용처는 경사면, 터널과 같은 지반이죠. 그래서 국내 연구가 전무한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2010년 국제컨퍼런스에서 벤쿠버 슬라이딩 트랙 제작에 대한 발표를 들었어요. 강원도에서 동계올림픽 유치에 도전해 2003년과 2007년 두 번의 실패를 거쳤지만 언젠가는 유치에 성공하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한국에서 누군가는 연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개인적으로 시공재료에 대해 연구한 부분을 더해 본격적인 연구를 결심했어요.

이 공법은 제가 지난 2004년부터 10년 넘게 시공재료에 대해 연구한 분야로 2007년 BK21사업(Brain Korea 21)을 통해 인프라 구축에 성공했고, 이번 올림픽 기간 중 썰매종목이 열리는 ‘올림픽 슬라이딩센터’에 적용한 거죠. 2012년에 재료개발이 종료되었어요. 2011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가 결정되었죠. 2013년 국토교통부 산하 강원권 국토교통기술지역거점센터를 유치하고 센터장을 맡게 되었어요. 센터를 유치하면서 연구사업으로 선행 연구결과를 반영한 시공법을 연구하고 평창동계올림픽에 적용할 것을 제안했어요. 제안이 채택되면서 연구를 진행했죠. 먼저 트랙의 단면 조사에 들어갔어요. 캐나다, 독일, 노르웨이 미국 등을 돌며 선진기술에 대해 벤치마킹도 하고 시공완료 된 트랙 사례조사도 마쳤습니다.”


윤 교수의 본격적인 연구로 인해 우리는 자체 첨단시공법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실제 트랙 단면과 동일한 구조로 6m 짜리 시험시공을 반복하며 수정·보완 과정을 거처 자체 외벽 성능시험도 끝냈다. 전 세계 썰매경기 트랙은 현재 16개인데, 트랙의 모양은 제각각이다. 그 이유는 산을 깎아 경기장을 건설하기 때문에 지역의 지형이 모두 다른 데 기인한다. 단, 1천800m 트랙 내 커브 개수, 최고속력, 중력가속도, 표고 등에 대한 공통 표준기준만 제시된다. 모양에 대한 별도 규정은 없다.

그러다 보니 까다로운 인증단계를 거친다. 1단계 기본설계 인증, 2단계 실시설계 인증, 3단계 시뮬레이션 과정으로 실물 모형 외벽성능시험(MOCK-UP TEST)을 최종 통과해야 비로소 실제 시공에 들어갈 수 있다. 마지막 외벽 성능시험(MOCK-UP TEST)은 상당히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2010년 캐나다에서 개최된 벤쿠버동계올림픽 때는 우리 보다 선진기술을 보유하고도 3회차 만에 현장검측을 통과했고, 2014년 러시아 소치올림픽에서는 7회에 걸친 현장검측에도 불구하고 합격에 실패했다. 유럽에서 기술자문을 받았지만 결국 군인들을 동원해 수작업으로 진행했다. 소치올림픽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고 준비과정에도 문제가 많았다고 회고하는 윤 교수. 우리나라의 심사과정을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자부심이 가득 담겼다.


“IOC위원들과 봅슬레이, 루지, 스켈레톤 연맹 관계자들에게 트랙 시공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구멍을 뚫어 단면을 확인시키고 점검단으로부터 합격여부를 판정 받는 겁니다. 빙질 관리를 위해서는 냉매의 전달이 중요한데,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내구성을 보장하기 위한 단면의 두께가 15cm인 거죠. 특수 콘크리트를 쏘아 붙이는 과정에서 생기는 에어포켓 발생을 최소화해야 냉매의 전달과 빙질관리 및 에너지 절감효과를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공법이었던 거죠. 우리는 2014년 6월에 3단계 시험을 받았고 한 번에 통과되었어요. 이번에 완성된 트랙은 국제경기연맹(IBSF, FIL)의 열 차례가 넘는 세밀한 현장검측을 통해 완벽하다는 평가와 함께 IOC위원회도 놀랄 만큼 뛰어난 기술력을 인정받았죠.”

하지만 우리도 모든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시공재료와 공법개발을 완료하고 최종 성능시험까지 통과한 후 실제 시공이 시작된다. 실제 경기장 시공에는 최소 2년 6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2014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2015년에는 트랙 건설이 대부분 진행되었어야 했다. 이후 냉매시설 확인 등의 작업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경영향평가나 토지매입과 같은 행정적 절차의 지연으로 2014년에 전혀 공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2015년 IOC위원들이 사전 답사를 왔을 때도 산만 깎아놓은 상태였다. 당시 IOC에서는 기한 내 경기장 준공과 보수까지가 불가하다고 판단했고 결국 일본 나가노 트랙을 이용해 올림픽 분산개최를 제의했다. 강원도를 비롯해 청와대까지 발칵 뒤집히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긴박함을 전하는 윤 교수는 준비된 자의 모습이었다.


“시공사 측은 모든 시공 준비가 완료된 상태였어요. 정부와 IOC의 질의에 행정적 절차가 마무리되어 바로 시공에 들어갈 수 있다면 기한 내 완공을 장담했죠. 공사가 시작되었고 3개 시공팀이 동시에 투입되어 2015년 6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시공이 마무리 되었어요. 뜻밖의 행운도 있었죠. 대부분 겨울에는 추위로 공사 진행이 어려운데 2015년 12월이 상당히 따뜻했어요. 덕분에 겨울에도 공정이 빨리 진행되었죠. 2016년 2월에 냉매시설을 작동시켜 봤어요. 처음에 냉기가 80%만 전달되었죠. 문제를 확인하고 보완해서 최종 2017년 2월에는 시험행사를 진행했어요. 국내·외 일부 선수들이 완공된 트랙에서 경기를 해보는 거죠. 경기는 모든 상황이 성공적이었어요. 윤성빈 선수가 가장 유력한 경쟁자였던 마르틴스 두쿠르스(Martins Dukurs·라트비아) 선수와 접전을 벌려 0.01초 차이로 2위를 했었죠.”

 

 

 

윤 교수는 완벽한 시험행사 결과를 전하며 알려지지 않은 경기 후문까지 덤으로 전해주었다. 오랜 시간을 거친 연구성과가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음과 동시에 실용적 수요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연구자가 누릴 수 있는 큰 특전이 아닐까 싶다. 숏크리트 시공기술이 썰매트랙 시공 외 어떤 분야에서 쓰일지에 대한 질문에 윤 교수는 기다렸다는 듯 사진자료까지 제시하며 상세한 설명을 이어간다. 역시 준비된 사람이다.

“숏크리트 시공은 일반 타설 콘크리트처럼 거푸집이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죠. 쏘아서 붙이는 공법이라 터널굴착 후 돌이 떨어지지 않게 안정화 시키는데 이 공법이 아주 좋아요. 또 경사지에 흘러내리는 낙석이나 암반 붕괴위험이 있는 곳의 안정화와 기존건물의 외벽 유지·보수 및 내진보강에 유용하죠. 미국 숏크리트 협회지에 소개된 코끼리랜드, 돔형식 건물, 수영장, 모양이 복잡하지만 거푸집을 많이 쓸 수 없는 시공에 적절해요. 경관옹벽 제작에 신공법을 활용해 인공 폭포나 자연스러운 암반 모형을 재연하기도 했어요. 신재료를 산성착색제와 화학반응으로 발색을 유도하기도 했죠. 이 경우 세월이 흘러도 변색 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어요. 춘천 만천리 경관옹벽 제작을 비롯해 내수활용도 늘려가고 있습니다.”

2015년 산업통상자원부 기술이전 사업화 유공자 선정. 다수의 특허와 연구력을 인정받고 있는 윤교수의 ‘2018 PyeongChang Winter Olympics Sliding Track’은 지난해 열린 “2017 미국 라스베이거스 세계 콘크리트건설기계석재박람회에서 ‘우수작품상(2016 Outstanding Shotcrete Project of the Year, Honorable Mention)’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올해로 교육과 연구 인생 19년차를 맞이하는 그는 17명의 박사와 50여명의 석사를 배출했다. 제자의 기업에 산학연 공동개발을 통해 기술을 이전하고 활용하는 사례를 넓혀 제자들을 이끄는 데도 소홀하지 않는다.

“항상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가 온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는 사람은 기회가 와도 잡지 못하죠. 모든 좋은 기회나 결과는 노력을 통해 준비된 사람에게 끊임없이 다가옵니다.”

준비하는 노력을 거듭 강조하는 윤경구 교수. 큰 성과 뒤에 잠시 쉬어갈 법도 하건만 차기 연구계획을 묻자 역시나 이야기가 줄줄 새어나온다. 해양구조물에서 해수로 인한 침식, 부식이 생기는 부분의 보수를 위한 공법 연구를 시작했단다. 준비된 그의 열정이 그 많은 아이디어를 기회로 부여하는 것 같다. 참으로 오랜만에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차이를 더듬어 보는 만남이었다.

 

 

 

임희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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