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희곡읽기모임

나라가 온통 ‘미투(Me too)’로 흉흉하다. 그러지 않아도 열악한 환경인데, 연극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그럼에도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꿈을 위해 한 발 한 발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때는 지난해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극배우 전은주 씨와 몇몇 지인들이 음모(?)를 꾸민 것이다. 연극인인데도 불구하고 희곡 읽기를 게을리 하고 있지는 않았나 싶은 자성과 함께 배우들이 혼자 희곡을 공부하는 고충을 토로하다가 함께 해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춘천희곡읽기모임’(춘희모)이다. 순식간에 회원이 늘어 지금은 40여명을 헤아린다. 이렇게 남녀노소, 소속단체를 불문하고 춘천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연극인들이 한자리에 뒤섞여 희곡을 공부한다는 것은 춘천 연극사상 초유의 일이자 신선한 혁명이었다.

 

 

 

‘서툰책방’의 젊은 주인장 한주석 씨가 공간을 흔쾌히 내어주어 회원들은 반갑고 고마운 마음으로 지난 1월 첫 모임을 가졌다. 첫 작품 낭독은 지난해 몬트리올영화제에서 금상을 수상했던 선욱현 씨의 ‘돌아온다’였다. 희곡을 실감나게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듣고 상상하며 배우는 공부와 낭독이 끝난 후의 토론은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해준다.

지난달에는 함세덕 작의 ‘동승’을 읽었다. 열네 살 사미승 ‘도념’ 역을 실감나게 읽어줄 배우를 초빙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지금은 열세 살이지만 공연 당시 아홉 살이었던 어린 배우 김동겸은 강원도립극단에서 초연한 ‘허난설헌’의 ‘어린 허균’이었다. 더욱이 선욱현 감독이 상대역인 주지스님 역을 훌륭하게 낭독해주니 회원들의 열기는 뜨거울 수밖에…. 얘기를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상상이 돼 그 자리에 참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강원공연예술연습공간에서 오는 22일로 예정된 세 번째 모임에서는 이만희 작 ‘불 좀 꺼 주세요’를 낭독한다. 이달까지는 대중적인 작품을 낭독하고, 4~6월은 서울에서 좋은 본보기로 활성화 된 ‘좋은 희곡읽기 모임’의 추천작을, 하반기에는 동서양 고전작품을 선정하기로 했다.

회원들이 내는 한 달 회비 5천원으로 공간 대여료, 희곡 제본 등 실비로 쓰자니 어려움도 있다. 한주석 씨는 숨은 조력자다. ‘춘희모’의 아지트를 자처했다. 모임에 앞에 미리 읽고 예습하기 위해 대본을 제본해 ‘서툰책방’에 비치하고 회원들에게 배포한다.

‘춘희모’는 거의 배우들 중심으로 시작됐지만, 언젠가는 일반인들로 확대하고 싶다고 한다. 지역 안에서 다양한 계층이 모여 희곡을 공부하고 의견을 나눈다는 일만으로도 상생과 진보의 기회임이 틀림없다. ‘춘천희곡읽기모임’이 춘천 연극계에 꿈의 산실이 되기를 바란다.

 

 

 

김예진 시민기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