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이달충(李達衷; 1309-1384)은 강직하고 불의를 보면 견디지 못했다. 그는 애오잠병서(愛惡箴幷序)에서 “남이 날보고 사람답다고 칭찬해도 내가 기뻐할 일은 없다 … 만일 사람다운 사람이 나를 사람답다고 한다면 나는 기뻐할 일이다.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 나를 사람답지 않다고 한다면 이 또한 기뻐할 일이다 … ‘오직 어진 사람이어야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며,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나를 사람답다고 하는 사람 혹은 사람답지 않다고 평가하는 그 사람이 어진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이 글은 이달충의 성품을 잘 드러내주는 글이라 할 수 있다.

이달충은 봄날의 소양강에 대해 “소양강 풀은 연기처럼 푸르고(昭陽江草綠如煙) 소양강 물은 하늘보다 푸르네(昭陽江水碧於天)”라고 해 소양강 물이 하늘보다 푸른 옥빛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정취와 흥치를 담기에 이 우주가 비좁은데(情興難容宇宙內) 시를 읊조리니 벌써 희황씨 시대로 들어가네(吟哦已入羲皇前)”라며 마음에서 일어나는 흥취를 담기에 우주도 좁다고 하며 대범한 풍취를 보인다.

춘천의 우두벌판은 바둑판 같고, 멀리 춘천을 두르고 있는 푸른 산봉우리가 시야에 들어오고, 그 사이에 소양강물이 흘러간다. 겨우내 얼었던 강물이 봄날이 되어 한 순간도 끊임없이 흘러가는데, 강물은 무궁하나 변함없는 자연의 법칙을 담고 있으며 봄기운 또한 가득 담아내고 있다.

강물이 풀리니 이별이 강나루를 통해 일어난다. 회자정리(會者定離)의 법칙을 얼었던 소양강물이 다시 끊임없이 흘러감을 통해 깨닫는 순간이다. “정이 많아서 젊은 날이라 스스로 생각했는데(多情自謂少壯日) 손꼽으니 놀랍게도 어느덧 노성한 나이로다(屈指還驚老成年)”라며, 세월은 쉬지 않고 흘러 자신의 모습이 어느덧 노성한 늙은이가 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젊음은 흘러가고 이제 나이가 들어 노년이 되어 있다. 그래서 마음속 갈증도 맑은 강물을 통해 풀어낼 줄 아는 단계에 이르렀다.

江淸安用心渴梅
강물이 맑으니 어찌 마음속 갈증을 매실로 풀랴!
江流可以寄余懷
강물이 흐르니 내 회포를 맡길 만하네

酤酒何論十千斗
술을 사면서 어찌 그 양을 따지랴
逢人輒釂三百盃
사람 만나면 곧 삼백 잔을 들리라.
從此徜徉山水窟
이로부터 산수 간을 거닐면서
灑然脫落原衢埃
거리에서 묻은 먼지 말끔히 털어 내리라
行險須知世道惡
험한 길을 갈 땐 세상살이가 험악한 것 알아야 하고
多荒要去心田萊
황폐한 땅이 많을 땐 마음 밭의 잡초를 뽑아야 하네.


술을 사면서 함께 먹을 양을 따져가면서 사지 않는다. 이백은 ‘장진주(將進酒)’에서 삼백 잔의 순을 마셔야 하고, 공자도 술은 ‘유주무량불급란(有酒無量不及亂)’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산가지 꺾으며 삼백 잔을 먹겠다고 호언하고 있다. 이후 춘천의 산수 사이를 거닐면서 세상에서 묻은 더러운 먼지를 말끔하게 털어낸다.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세상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와 인간의 욕망을 모두 씻어낸다. 이러한 깨달음과 카타르시스 후에야 “험한 길을 갈 땐 세상살이가 험악한 것 알아야 하고, 황폐한 땅이 많을 땐 마음 밭의 잡초를 뽑아야 하네”라고 노래한다.

인생은 거친 광야를 홀로 가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다. 이 험난한 여정을 무사히 완주하기 위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의 덕을 길러갈 때 만족할 줄 알게 되고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소양강은 춘천사람에게 마음의 밭을 가꾸어나가는 데에 필요한 생명수라 할 수 있겠다. 봄빛이 조금씩 짙어지는 요즈음 소양강 가를 거닐어 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허준구 (춘천문화원 사무국장)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