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터줏대감 김춘배 화가

 

지난해 《춘천사람들》 창립 2주년 기념 그림전시회 개막식을 앞두고 전시공간을 돌아보다 김춘배 화가의 갈대 그림 앞에서 발을 멈췄었다. 갈대는 흔히 외로움으로 상징되는 소재인데, 화가의 그림은 다른 느낌이었다. 강바람에 흩날리는 갈대의 갈기에서 작은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들리는 듯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님프인 시링크스(Syrinx)가 목신(牧神)인 판(Pan)에 쫓기다 갈대로 변신하자 판이 그녀를 그리워하며 이 갈대로 피리를 만들어 불었던 데서 갈대가 음악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됐다고 한다. 갈대에서 음악소리를 들었던 것이 우연은 아니었다. 그림이 참 따뜻했다. 다양한 색감과 강물에 반짝이던 물비늘의 파편 때문이었을까? 평상시 소년처럼 해맑던 작가가 생각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화가이자 시인인 김춘배(62) 씨는 춘천의 문화가 꽃피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찾아와 자리를 빛내주는 터줏대감이자, 흔히 있을 법한 소소한 이지러짐조차 천진한 웃음으로 녹여내는 기분 좋은 화해의 전령이기도 하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걸음도 불편하고 듣고 말하는 것도 불편한 화가가 이처럼 긍정적인 에너지로, 그림과 시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부분을 필답으로 주고받은 인터뷰지만, 따로 작가를 만나는 기쁨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흔히 빵떡모자라 불리는 모자에 나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맑은 피부. 처음 자리를 마주한 화가는 예의 그 친화력으로 자칫 어색하기 쉬운 인터뷰 자리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먼저 작가가 성장해온 과정과 미술에 입문하게 된 계기부터 듣지 않을 수 없었다.

태어난 지 3년 만에 생모가 가출해 조부모 손에서 양육되다시피 했는데, 그만 소아마비를 앓게 되었어요. 방안에서만 지내면서 집에 걸려있는 ‘모나리자’나 밀레 등의 복제그림과 그림에 소질이 좀 있었던 아버지의 심심파적 낙서그림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리는 일이 손과 몸애 밴 것 같아요. 취학하면서 자연스럽게 특활과목이 미술이 됐고, 중·고 미술부를 거쳐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전공하게 됐죠.

화가는 강원대 미술교육과에 응시해 수석으로 입학하게 됐다. 그러나 대학 측은 교사라는 임무를 수행하기에 현실적인 장애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 졸업 후 교사발령을 않겠다는 조건 하에 입학을 허락했다고 한다. 수석이 아니었으면 탈락시켰을 게 분명하다. 이런 화가의 성장기에는 뭔가 특별한 도움과 관심이 더욱 필요했을 것이다. 학창시절 화가에게 뚜렷하게 각인된 기억이 있다면 무엇일까?

고등학교에선 미술부에서 지금도 활동하고 계신 이길종 선생님이 학업실력과 그림실력을 높이 평가해 주었어요. 그러나 할머니가 약대에 진학하기를 바라셔서 미술과 멀어지게 됐습니다. 그러다 3학년 때 김승선 선생님의 도움으로 할머니를 설득해 미대진학을 준비했지요. 성적이 괜찮아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유학을 반대하는 바람에 실망이 컸습니다. 결국 강원대에 입학해 전공보다는 연극, 문학, 방송, 사진 등 다양한 서클활동으로 대학생활을 했어요. 성인이 된 후 예술과 예술가 집단을 만나면서 예술을 권력으로 이용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먼저 회의를 느꼈던 것 같아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황과 일탈도 있었지요.

대학 졸업 후 화가는 미술보다는 신학과 문학에 심취했다. 15여 년 동안 미술 입시지도를 하면서 세월을 보내다 그림에 대한 갈증으로 1997년에 첫 개인전을 열면서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풍경화부터 인물화까지, 실경에서 추상화까지 작품의 세계는 참 다양했다. 작가는 그 자신의 그림세계를 어떻게 설명할까?

아직 이렇다 할 경지라든가 내세울 만한 실적이 별로 없습니다. 다만, 인물화에 관심이 많아 그것을 중심으로 신앙의 내용을 담으려고 시도했어요. 우선 기본을 다지는 단계로서 풍경을 주로 그리고, 재료의 물성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추상화를 몇 번 시도하기도 했지요. 아직 작품세계라는 것을 제대로 정립하지는 못했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주제와 소재를 정하는 과정에서 갈대를 다양하게 변주하면서 나름의 아이템이라든가 작품세계를 만들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개최하거나 참여했던 많은 전시회 중에서 특별히 더 기억나는 전시회나 더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게 마련이다.

아직은 충분히 많은 활동을 했다고 할 수 없어서 이런 질문에 맞는 답하기가 참 곤란하네요. 그래도 지난해 강원아트페어에 출품했던 ‘reeds-調律’이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갈대밭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그림입니다. 세 번째인가 수채화 초대 개인전을 했을 때는 완판이 돼 특히 고마웠지요.

화가의 갈대그림은 여러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게 틀림없다. 화가는 갈대를 그리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지난해 느꼈던 따뜻함이 작가가 갈대를 그리면서 의도한 감정일까?

오래 전부터 갈대의 일렁임에 마음도 일렁여서 어떻게 제대로 표현해 볼까 고민을 참 많이 했어요. 제 작품에서 그런 따뜻함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갈대는 많은 이들에게 존재의 근원과 다양함의 여러 변주를 보여주는 소재지요. 앞으로 더 노력해야겠어요. 지금 작업 중인 작품이 강물의 윤슬을 배경으로 하는 30호짜리인데, 공교롭게도 질문과 시기적으로 잘 맞네요. 제 아호가 ‘성위’인데, 깨달을 성(醒), 갈대 위(葦)를 씁니다. 약 20년도 전에 선물 받은 건데, 꼭 그때부터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무엇을 그려도 그런 일렁임의 손짓이 저를 지배해 왔어요.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됐죠. 갈대의 꽃말이 ‘신에 대한 믿음과 지혜’였던 것입니다. 그제야 본격적으로 갈대를 갈 때까지 그려야겠다고 작정하게 된 것 같아요.

“갈대를 갈 때까지 그려야겠다”는 화가의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와 닿는다. 평소 가진 삶에 대한 해학이자 스스로에 대한 각오였으리라. 이런 탁월한 언어의 조율에서 보듯 작가는 화가이자 시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난해 강원기독문학 발간작업을 맡아 일을 하면서 작가의 시를 읽은 적이 있었다.

햇빛의 기인 손이 바람을 활로 삼아
그리움의 스트라디바리 현(弦)들을
한 묶음씩 켜대고 있다
하얀 신열 엷게 피워 올리며 가을강이
몸을 고쳐 앉는 것이 보였다

이 시를 표현한 그림을 보면서 ‘자연의 감동을 이렇게도 전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와 그림의 상호보완 또는 같은 시각으로 시와 그림을 표현한 작업이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아! 시가 먼저인지, 그림이 먼저인지?

우선은 시가 먼저인 것이 맞습니다. 제가 시동인 ‘풀잎’ 활동 때 발표한 연작시 3편 중 하나인데 12년은 더 된 것 같습니다. 이 시는 아까 말씀드린 갈대밭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그림에 붙인 것인데, 지지난해 미협에서 기획한 ‘미술가 소리를 탐하다 展’에 출품할 때 그림에 대한 설명을 요구해서 그 시를 넣게 되었지요. 보니까 정말 안성맞춤이더군요.

화가로서의 삶, 시인으로서의 삶은 어떻게 다른 걸까? 또, 표현하는 도구로서의 그림과 시는 어떻게 다르게 활용될까?

처음에는 그림의 서정적인 내용을 위해 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시작(時作)에 몰두했죠. 그게 결국 동인활동으로 이어져 ‘풀잎’ 시동인에서 16년 동안 활동하고 지금은 ‘A4’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그런데 확실히 시와 그림은 각각 독립적 특성이 있어요. 시화라는 장르도 흔히 알고 있지만 그 창작의 구조적 특성은 엄연히 다른 메커니즘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사실 시적인 그림이 나오면 좋겠지만 작업의 특성상 그 한계가 있는 것이고 따라서 희망사항쯤 되겠네요. 시인으로서의 삶과 화가로서의 삶은 확실히 다르더군요.

박제영 시인의 블로그에서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춘배 옵빠’라는 시를 보았다. “춘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 그 사람 자체가 춘천”이라고 표현했다. 그렇게 춘천에서 오랜 시간을 살며 춘천을 사랑하는 작가가 느끼는 춘천과 춘천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이렇게 따뜻이 품어주고 보아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춘천만이 가진 천혜의 조건과 정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에서 얼마나 따뜻하고 순박한 춘천사람들의 싱그러운 내음이 나오는지요. 지금 많은 것을 상실해 가고 있어 안타깝지만, 춘천시민의 정서와 아름다움을 지키고자 하는 소중한 움직임들도 많아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또한, 몇 년 전부터 춘천지역 작가들의 활동이 굉장히 왕성하고 풍부해지면서 작가를 지원하는 환경도 10여년에 비해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은 작가들 입장에서는 충분치 못한 것 같으니 경제적으로 어려운 작가들을 발굴해서 집중 지원하는 방안으로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는 지난해 춘천미술인협회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춘천에서 예술의 한 영역을 굳건히 지켜오면서 후배나 동료들에게도 존경받는 예술인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사실 뜻밖의 수상이었습니다. 제 자신의 창작도 미미하고 춘천미술계에 별로 한 일도 없었는데, 아마도 그해 미술협회 행사에 약간의 힘을 보태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춘천시문화재단의 지원으로 가을에 개인전이 예정돼 있고요. 앞으로 좋은 전시와 더불어 신앙에 대한 경험과 사유를 정리해 책을 내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후회라는 것을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렇다고 ‘늘 최선을 다했다’, ‘잘했다’고 자부까지 할 수는 없습니다만 후회할 정도로 잘못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제 능력으로 지금까지 이른 것만 해도 참 고마운 은혜의 결과라 감사히 생각하고 있지요.

가을에 잎이 누렇게 변해 떨어지지 않고 나무에 붙어 있는 것을 낙엽이라 부르지 않는다. ‘가랑잎’이라거나 ‘갈잎’이라고 한다. 갈대나 참나무 종류는 새봄이 오기까지 갈잎을 씩씩하게도 달고 있다. 갈대 또한 ‘갈잎을 달고 있는 대’다. 화가 김춘배가 곧 갈대가 아닐까? 갈잎을 달고 새봄을 맞을 때까지 화가는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아이 같은 천진한 웃음으로 주위를 밝혀주고 종종 사람들의 위로가 될 것이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다시 보고, 다시 살고, 다시 사랑하는 것”이라는 화가의 말이 내내 긴 여운으로 마음에 남는다. 앞으로 다시 보고, 다시 살고, 다시 사랑하면서 그려진 화가의 그림 앞에서 우리 또한 다시 보고, 다시 살고, 다시 사랑하면서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을 것이다.

원미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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