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벚꽃, 가을이면 단풍

서랍 속에 감춰 두고 몰래 꺼내보던 사진처럼, 단짝친구의 초록색 글씨 편지처럼 숨겨두고 싶은 길이 있다. 오래 전 한눈에 반해 틈만 나면 걷던 부귀리 숲길이다. 그래서 춘천을 찾는 이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는 마을이다.

배후령터널과 추곡터널을 지나 추곡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오항리를 지나면 벚꽃이 만발한 부귀리 초입에 이른다. 사진은 부귀리 전경.

춘천시내에서 구불구불 배후령 고개를 넘어 부귀리를 다니던 때는 이미 옛일이 되어버렸다. 이 길은 이제 산악자전거나 모터사이클이 즐기는 길로 차량통행은 드물다. 시내에서 양구 방향으로 46번 국도를 따라 약 5km의 배후령 터널을 지나면 편의점과 주유소가 있는 화천 오음리 간척사거리가 나온다. 좌회전을 하면 화천 간동면사무소로 가는 길이고, 우회전을 하면 청평사 주차장과 식당들을 지나 부귀리로 통하는 하우고개다. 호젓함을 즐기려면 이 길을 택해도 좋으나, 장마철에는 낙석이 위험해 피하는 것이 좋다.

대개는 간척사거리에서 양구 쪽으로 계속 직진해 추곡터널을 지나 추곡삼거리에서 북산면으로 들어가는 길을 택한다. 추곡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추곡초등학교를 거쳐 면소재지가 있는 오항리 농협 앞 삼거리에서 다시 우회전해 10여분 가량 지나면 오지마을로 접어드는 느낌이다. 밤나무 밭을 돌아 고개가 높다 싶은 생각이 들 때쯤 부귀리 방문을 환영하는 표지판과 벚나무 터널이 안도감을 준다. 표지판 옆 임도는 아직도 내겐 숙제로 남아있다.

부귀리 벚꽃길.

여기 고갯마루에서부터는 신부처럼 걸어보자. 봄 햇살에 눈부신 벚나무 꽃잎이 날리는 길은 마을까지 이어진다. 봄날만 좋으랴! 가을 단풍과 억새는 마을 초입부터 눈을 즐겁게 하고, 겨울 숲 눈길은 가슴마저 뜨겁게 시리게 한다. 부귀리는 걷고 걸어도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 없다.

부귀리 벚꽃은 춘천시내 벚꽃이 거의 질 무렵인 4월 중순이면 만개한다. 마을에서는 지난해부터 작은 마을축제가 열린다. 마을 초입에는 커다란 볼링핀에 ‘강석필농장’이라고 새겨져 있다. 부귀리 이장 댁으로, 춘천시내에서 살다 이곳에 정착한 지 20년이 넘었다. 혼자 황토집을 몇 채 뚝딱 지을 정도로 재주도 좋고, 서글서글한 인상이 사람을 편하게 해 마을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통한다.

“앗! 차가워~.” 너무 차가운 부귀리 계곡 물에 놀라는 아이의 표정이 압권이다.

부귀천이 부귀리 마을을 관통한다. 마을사람들은 부귀교 위쪽의 계곡을 지키고자 휴식년제를 요청해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했다. 부귀교 앞 ‘물안골펜션’이라는 작은 입간판이 보이는 집은 신수현 씨 집이다. 아내가 뇌수술을 세 번이나 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아 그 절박함으로 30대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그의 아내는 차츰 건강을 되찾았다. 그동안 청년 신씨는 15년 동안이나 이장 직을 맡아 부귀리를 귀촌마을과 산촌생태마을로 알려 소득을 올리는 일에 앞장섰다. 부귀리 숲길을 지키고, 벚꽃 길을 조성하고, 마을체험을 활성화시킨 장본인이다. 여름엔 주로 토마토 재배를 하고 체험도 한다. 가을에는 배추 농사를 지어 절인 배추를 팔고, 겨울엔 장을 담근다. 신씨 어머니의 막장 맛은 서울까지 소문이 나 양이 늘 부족한 형편이란다.

다랑이논.

부귀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오래 전 폐교돼 건물은 사라지고 터만 남아 체험활동 장소로 활용되고 있는 부귀분교가 나온다. 소양강댐이 생겨 화전민들이 이주하기 전만 해도 이 작은 학교에는 200여명의 학생이 있을 정도로 화전을 일구고 살던 사람들이 많았다. 화전민들은 귀틀집이나 너와집, 초가집을 짓고 살았다. 이들이 강제로 이주된 후 집터와 화전을 일구던 농토에는 잣나무가 심어졌다고 한다.

마을에서 잣을 따거나 지인의 허드렛일을 도와 생계를 잇던 만득 씨는 네팔에서 스물여섯 살이나 어린 처자를 데려와 살림을 꾸렸다. 나무를 하다 기계톱에 발을 다쳐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임신한 아내는 오항리까지 나가 토마토 밭에서 날품을 팔았다. 차가 없어 장을 보러 갈 수도 없는 처지라 임신 중에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아야 했다. 마을을 오가며 그녀에게 옷이며 유아용품을 전해주기도 했는데, 생선을 그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다. 마을에는 이주결혼 여성이 세 명인데, 대부분 형편이 어려워 마을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살았다. 아이를 낳고 생계는 더욱 어려워 시내로 이사를 나가 남편은 소를 키우는 일을 돕고, 어린 신부는 알바도 나간다는 얘길 풍문으로 들었다.

학교를 지나면 산자락에 정겹게 내려앉은 다랑이논과 밭이 있는데, 하루도 빼지 않고 이 길을 오가며 논과 밭을 돌보던 할머니가 있다. 느리지만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묵묵히 농사를 지었다. 몇 년 후 걷기가 불편해지자 4륜 전동차를 타면서까지 밭을 정갈하게 가꿨다. 일제강점기, 열두 살의 소녀는 이곳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 부모가 만주로 돈 벌러 떠나 지인에게 맡겨진 딸은 이후 나이가 아주 많은 마을의 한 사내에게 시집을 갔다.

“이 집은 6·25 난리 때 불에 타서 남편이 뚝딱뚝딱 지은 집이에요. 학교 앞으로는 전차가 다니고 인공군도 얼마나 많았는지 몰라. 새 길이 나면서 이제 그 길은 막혔지. 그 후로도 쭉 여기서 살았어요.”

긴 세월의 무게가 굽이굽이 골 깊은 이 산골만큼이나 무거웠을 터인데, 할머니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얼굴로 말한다.

“어찌 살았나 생각도 안 나요. 그저 아들딸 많이 낳고 잘 살았어.”

이제는 딸과 사위가 할머니의 땅에 농사를 짓는다.

다랑이논과 밭이 끝나면 왼쪽으로 실개천이 흐르고 병꽃나무 꽃 소담스럽고 돌미나리 싱싱한 작은 다리가 있다. 숲길은 이 다리를 건너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꽃마리, 고마리, 쥐오줌풀, 홀아비꽃대, 방아풀…. 야생화를 하나씩 불러보며 계곡을 따라 걷는 재미가 좋다.

가끔 계곡의 바위 끝에 가만히 앉아 귀 기울이면 봄에는 고라니 짝짓는 소리도, 제 집의 낯선 자를 경계하는 쇳소리 같은 다람쥐 울음소리도, 쪽동백 꽃 터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동고비가 나무를 타고 오르내리는 모습과 작은 물고기 떼의 오락가락하는 모습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40여분 걸으면 왼쪽으로 작은 폭포와 선녀탕이 있다. 한여름에도 계곡물은 얼음장 같아 오래 머물기가 힘들다. 숲길은 더 이어지지만 부용산 자락에 막혀 되돌아 나와야 한다. 부귀천 아랫길은 마을 앞 논밭을 지나 산막골과 마을회관으로 가는 길이다. 마을에는 아직도 50년대 지은 흙집들이 여러 채 있는데, 그곳에 홀로 거주하는 노인도 여럿 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마을회관 못 미쳐 성황당이 있던 자리에는 보호수로 관리되는 근사한 솔밭이 있다. 소나무 화가로 알려진 우안 최영식 화백의 화실이 산막골에 있어 이 일대 소나무가 화가의 그림소재가 되었다. 18년 전쯤 되었을까? 우안 선생의 화실로 향하는 산막골 길은 이제 막 길을 닦으려고 큰 바위들이 깔려있는 상태였다. 지금은 부귀리에서 10여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한 시간쯤 걸려 찾아가 그림을 보고 돌아온 적이 있는데, 그때 부귀리와 산막골을 알게 되어 반했던 곳이다.

소나무밭 아래에는 마을회관이 있고 계곡 아래로는 작은 콧구멍다리가 보인다. 이 다리를 건너 계곡 하류 쪽으로 난 숲길의 끝은 부귀리 배터다. 지금은 물길을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 선착장은 사라지고 간혹 캠핑족이나 낚시꾼들을 볼 수 있다. 소양호를 만나는 계곡의 끝자락에서는 다슬기뿐만 아니라 쏘가리와 붕어도 꽤 잡힌다. 운이 좋다면 초여름 밤 반딧불이 요정을 만날 수도 있다.

마을회관에서 다리를 건너지 않고 산막골로 가는 차도를 따라가다 보면 소양호가 펼쳐지는 승호대에 이른다. 특히, 마을회관부터 승호대에 이르는 길은 인위적이고 과하지 않은 가을 단풍과 어우러지는 노란 들녘이 산촌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승호대는 밤하늘의 별을 관찰하고 촬영하는 사람들에게도 유명한 장소다. 맑은 날 밤 보름달을 피한다면 은하수를 육안으로도 볼 수 있다. 소양호를 비추는 보름날의 달빛은 또 얼마나 그윽한가?

골골마다 자욱한 운무가 걷히는 새벽, 호미질마다 파고드는 뻐꾸기 울음소리, 창 넘어 떼로 들어오는 개구리 소리, 달빛에 눈부신 옥색 긴꼬리나방과 달맞이꽃, 빈 밭에 깔린 붉은 개여뀌, 겨우내 발자국이 귀한 눈길…. 어느 산골에나 있는 흔하디흔한 일이지만 부귀리의 그것들은 내게 있어 특별하다.

김예진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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