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투 열풍이 한창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미투가 바라고 있는 지향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은 없지만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단, 10년을 넘는 시간 동안 아픔을 갖고 있는 많은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미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지난 시간의 아픈 상처를 꺼내 치유하고자 노력하고 있고, 우리 사회도 이에 부응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미투운동 초기에 여성과 특정 집단에 국한되어 있었던 대상 또한 다소간의 부작용이 없진 않지만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구성원 중 하나인 아이들의 권리는 어디에서 누가 찾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크게 궁금해 하지 않는 눈치다.

인권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다. 그리고 아동은 아직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보호하고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동의 인권에 포함되어 있다.

아동인권이란 것 자체가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아이들을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는 등 주로 생존과 관련된 아동인권과 더불어 더 많은 것들이 폭넓게 요구되는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다양한 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성장시킬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아이들의 생명과 안전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 모든 과정에 어른들의 결정이 아니라 아이들의 의사가 충분히 포함돼야 한다. 이것이 바로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아동의 네 가지 권리, 즉 생존권, 보호권, 발달권, 참여권이다. 다시 우리 어른들의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집에서, 혹은 직장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아동인권을 충분히 보장해주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네!”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나 또한 고백하건대 부족한 게 많다는 생각이다. 인권에 대한 인식은 순간이다. 누구에게나 아동인권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면 아주 괜찮은 답변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가족들과 여행지와 외식메뉴를 고르는 순간, 바빠 죽겠는데 아이들이 놀아달라고 하는 순간, 마트에서 매 맞는 아이의 모습을 목격한 순간 불편함 없이 아이들의 인권을 생각하고 있을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당신은 직장에서 오늘 점심식사의 메뉴와 다음 달에 있을 워크숍의 장소를 혼자 결정하는가? 그러고도 직장에서 괜찮은가? 바빠 죽겠는데 동료가 말을 걸어 말 시키지 말라고 화를 내면 과연 당신의 동료는 “죄송해요. 힘드신데 제가 괜히 말 걸었네요”라고 하는가? 뒤통수가 따갑지 않은가?

또,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사무실에서 오늘 식사메뉴와 다음 달 워크숍 장소를 당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결정된다면? 직장동료에게 물어볼 게 있었는데 다짜고짜 당신에게 화를 낸다면?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누가 당신에게 시비를 걸며 당신을 때리려고 한다면?

참 쉽지 않은가? 이렇게 쉬운 답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적용된다면 아주 쉽게 아이들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다. 한때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을 만나면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 아이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다소 비관적인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렇게 쉬운 답을 두고도. 우리 한 번 고등학교 때 배웠던 그 어려운 미적분보다 비교도 안 될 만큼 쉬운 문제를 한 번 풀어봄이 어떨까?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권태훈(강원도아동보호전문기관 현장조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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