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부근의 지도를 펼쳐놓고 의암댐 방향에서 옛 강촌역 방향으로 삼악산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삼악산주봉-청운봉-등선봉-삼악좌봉 등의 그 유래를 알 수 없는 이름들로 능선이 줄지어 있다. 북한강 건너편으로 삼악좌봉을 마주하고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진 기묘한 형상의 봉우리가 있는데, 이 봉우리가 강선봉(降仙峯)이다.

강선이란 신선이 내려온다는 뜻으로 옛 강촌역사 쪽에서 바라보면 깎아지른 바위 봉우리로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듯 우뚝 솟아 있어 신선이 구름을 잡아타고 내려올 만해 보인다. 강선봉은 높이 484m나 되는 그런대로 높은 봉우리로, 옛 강촌역의 명성만큼이나 강촌을 상징하는 자연물이다.

강선봉 곁에는 칼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검봉산(劍峯山)이 자리하고 있다. 봉우리 봉(峯)에 뫼 산(山)이 붙어 있어 의미중복이 있기는 하지만, 검봉산 능선을 따라 가면 백양리에 다다를 수 있다. 이 백양리에는 검봉산 줄기를 이어받은 굴봉산(屈峯山)이 있는데, 마치 검봉산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굽힐 굴(屈)자를 써 넣어 산 이름으로 삼았다.

검봉산은 강선봉과 굴봉산의 주봉으로 북한강 건너편 삼악산과 멀리 대척점을 이루며, 강촌과 창촌 일대를 품고 있는 모양새다. 1895년 을미의병 당시 춘천의병장을 지낸 습재(習齋) 이소응(李昭應)은 강선봉을 포함한 검봉산을 좌수봉(座首峯)이라 불렀다. 좌수(座首)는 지방 향리의 우두머리를 일컫는 말인데, 인근에서 이 봉우리가 가장 높은 봉우리였기 때문에 붙였던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습재 선생은 강선봉 아래에 이요정(二樂亭)이란 정자를 짓고 북한강과 좌수봉의 아름다움을 감상했다. 강촌에서는 옛 강촌역 부근을 좌수머리라고 부르고 있는데, 좌수봉과 밀접한 지명임을 알려준다.

습재 선생은 봄이 되면 이 좌수봉에 올라 이 일대를 감상하고 자연의 조화를 느끼고 가슴속의 묵은 때를 씻어내곤 하였다. 정축(丁丑:1877년)에 ‘좌수봉에 올라 봄을 감상하며(登座首峯賞春)’ 지은 시가 있어 전문을 소개한다.

花發木榮方好辰(화발목영방호진)
꽃과 나무 피어나는 아주 좋은 시절에,
冠童六七起吾人(관동육칠기오인)
관동(冠童) 예닐곱이 나를 일으키네.
遠登峯壑高明處(원등봉학고명처)
멀리 봉우리에 오르자 사방이 바라보이니,
聊在乾坤造化新(료재건곤조화신)
하늘과 땅에 조화가 새롭구나.
日煖風和宜月令(일난풍화의월령)
햇살은 따스하고 바람은 온화하여 농사짓기 딱 좋아,
野農山采亦天眞(야농산채역천진)
들판에 농사짓고 산에는 나물 뜯어 또한 천진(天眞)이라.
閒來無事不稱意(한래무사불칭의)
한가로우나 뜻에 걸맞지 않은 일이 없어,
蕩滌胸中多少塵(탕척흉중다소진)
가슴 속 묵은 먼지 말끔히 씻어내는구나.


꽃과 나무가 피어나는 아주 좋은 봄날에 관례를 치른 아이와 치르지 않은 아이 몇 명이 좌수봉에 오른다. 봉우리에 올라보니 사방이 시원스럽게 시야에 들어온다. 산에 올라 탁 트인 경치를 마주하며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조화로움을 새삼 느끼고 보게 된다. 눈 맛을 느낄 수 있는 조망 지점에 섰을 때의 가슴속 상쾌함은 산에 오른 수고로움을 보상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여기에 햇살은 따스하고 바람은 온화하여 농사짓기 딱 좋고, 들판에는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하며 산에는 온갖 나물들이 먹음직하게 자라 있다. 습재 선생은 여기에서 하늘의 참모습(天眞)을 보고, 그러한 상태를 ‘한가로우나 뜻에 걸맞지 않은 일이 없다’고 하였으니, 참 마음의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더 나아가 자연의 천진함을 통해 가슴 속 묵은 먼지를 말끔히 씻어내기에 이른다.

산에 올라 천지자연의 오묘한 조화를 느끼고 배우며, 그것을 통해 마음 속 찌든 때를 하나도 남김없이 말끔하게 씻어내어서, 우리 인간이 본래부터 지녔던 마음인 천진(天眞)을 회복할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인간의 참된 마음의 복원은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거늘 왜 이렇게 티격태격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멸시하고 싸우는 삶을 살고 있는지 한 번 되돌아볼 일이다.

 

 

 

 

허준구 (춘천문화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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