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길, 녹색 치마에 보라색 펑키머리의 아가씨가 바위에 걸터앉아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녹색 주름치마 펼치고 수북한 낙엽더미에 앉아 있는 더벅머리 여장 총각을 본 적이 있는가? 때로는 아가씨가, 때로는 더벅머리 총각이 떠오르는 이 꽃이 바로 처녀치마다.

처녀치마. 사진=임성빈

볼 때마다 수시로 이미지가 바뀌는 이 꽃은 그 이름 때문에 말이 많기도 하다. 여러 추론 속에 때론 격론이 오가기도 하는데, 어떤 이는 배타주의나 국수주의를 등에 업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처녀치마라는 이름이 최초로 기록된 것은 《조선식물향명집》(정태현 외 3인, 1937)이다. 다수의 잎들이 꽃대를 감싸며 방석처럼 퍼져 있는 모습을 처녀의 치마에 비유한 것이다. 이우철의 《한국식물명의 유래》(2005)와 이유미의 《한국의 야생화》(2010)도 이와 견해를 같이한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조선식물향명집》의 저자들이 이 꽃의 일본명인 ‘ショウジョウバカマ(猩々袴, 쇼-죠-바카마)’를 발음이 거의 같은 ‘ショジョバカマ(処女袴, 쇼죠바카마)’로 오인해서 붙였다고 보는 견해다. 하지만 당시의 ‘猩々(성성이)’의 일본어 표기는 ‘シヤウジヤウ(시야우지야우)’이니 설득력이 떨어진다. 현재의 표기법으로 고어를 해석한 결과다. 일본어에 능통했고 일제강점기 하에서 우리의 식물이름을 찾고자 고뇌했던 저자들의 노력을 폄훼하는 것이다. 민간에서 채록하거나 문헌에서 발견할 수 없는 식물의 이름을 붙일 때 힌트를 얻었을 수는 있겠으나 일본명을 그저 번역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어서 안타깝다.

처녀치마의 다른 이름으로는 《한국식물명감》(안학수 외 1인, 1963)의 ‘치맛자락풀’이 있고, 북한에선 ‘치마풀’이라 부른다. 속명 Heloniopsis(헬로니옵시스)는 Helonias(헬로니아스속)와 ‘비슷하다’(opsis)는 뜻이다. 종소명 koreana(코레아나)는 한국의 고유종임을 나타내는데, 한국과 일본에만 분포한다.

최동기 (식물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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