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대학로 마리안느에서 당나귀 그림으로 개인전을 했습니다. 왜 갑자기 당나귀를 그렸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도 잘 몰라 버벅대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동물을 그렸다. 개, 소, 말, 고양이, 호랑이, 코끼리, 낙타…. 한데 당나귀를 한 번도 안 그렸다는 사실을 문득 자각하게 됐다. 당나귀에게 갑자기 미안했다. 어느 전생엔가 내가 당나귀였다는 사실을 까먹고 있었던 거다.”

당나귀 그림 팔아 당나귀를 사겠습니다. 백석 시인의 시처럼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에 애인을 태우고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라고 흰소리 치며 산골로 가겠습니다.

정현우(시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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