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수순이었다. 미국발 히어로는 극장을 점령했고, 관람료가 인상됐음에도 볼 사람들은 다 보는 듯하다. 무서운 줄 모르고 갱신되는 기록의 연속. 개봉 날, 궁금함을 참지 못해 극장에 달려가 영화를 본 97만명 중 한 명, 바로 나다.

상업영화와 독립예술영화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영화가 예술이냐 산업이냐를 따지는 것도 이제는 공허한 울림처럼 보인다. 관객 입장에서 보자면 누군가에게는 화려한 그래픽과 흡입력 있는 스토리를 가진 히어로 무비가 인생 영화일 수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이상한(?) 영화가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판단은 관객의 몫이자 권리다. 문제는 관객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중간자 역할인 극장이 관객의 시야를 가린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원한다는 명목 하에 선택의 고민을 덜어주는 극장 예매 시스템. 절대 다수의 무리 속에서 안식을 갈망하는 현대인들에게는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다만, 생태계가 획일화되고 다양성이 결여되는 흐름 속에서 영화가 관객들에게 긍정적인 매체, 혹은 예술로 작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히어로 무비의 흥행에 일조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럼에도 왜 독립예술영화를 봐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것은 간단한 논리다. 편식하지 말고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자는 것. 다양성을 존중하며 접하는 문화들은 시야와 사고를 확장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독립예술영화도 마찬가지다. 히어로 무비는 재미있고 독립예술영화는 어렵기만 할까.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조금만 걷어내 보면 감독이 창조한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소통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히어로 무비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시리즈의 순서, 캐릭터들의 인과관계, 꼭꼭 숨겨놓은 감독의 이스터에그를 파헤쳐가며 재미를 느낀다. 심지어 엔딩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지키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잘 만든 독립예술영화 한 편은 히어로 무비보다 무수히 많은 궁금증과 해석을 만들어 내는데 말이다. 물론, 인터넷 어디에도 답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초인적 힘을 가지고 정의를 구현하는 히어로 무비는 과연 우리의 삶과 닿아 있을까? 그렇진 않아 보인다. 초인은 실재하지 않으며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다. 극장에 앉아 빠져들었던 화려하고 희망적인 영화 속 모습들은 2시간 남짓의 시간 뒤로 사라져 버린다.

반면, 독립예술영화는 보다 우리의 삶 속 깊숙한 모습들을 끄집어낸다. 최근 개봉작인 <수성못>은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청년들의 지치고 힘든 삶이 현실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영화는 많은 여지를 남기며 불명확한 결말을 맺는다. 실제 우리 삶도 답이 없지 않은가! 독립영화는 나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공감, 그리고 관객 개개인의 경험과 판단이 작용하게 하는 ‘나름의 배려’를 느끼게 한다. 1천만명 중 한 명이 아닌, 오롯한 나 개인으로 소통하는 느낌. 일방적인 답을 내리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독립예술영화는 따뜻하기도, 따끔하기도 하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물음이다. 독립예술영화를 소개하는 사람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독립예술영화를 볼까’ 하는 질문에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관객이 왜 독립예술영화를 봐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여느 독립예술영화가 그러하듯 답은 잘 내리지 못하겠지만, 상업영화 중 볼 영화가 없다면 한 번 관람해보자. 한 번 접해본다면 당신도 빠져들 것이라고 믿는다.
 

유재균 (일시정지시네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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