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 시대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는지에 대한 역사적 판단을 하기엔 이른 시점이다, 하지만 촛불을 든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화된 힘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임은 틀림없다. 시민들의 ‘직접 참여’가 만든 사건이었다. ‘열린 공간’에서 시민 참여는 자율적이었고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 이후 일상으로 돌아간 시민들은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시·공간에서 참여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또 다시 평범한 피동적 시민이 되어가는 듯하다.

6·13 지방선거가 곧 치러진다. 시민들은 선거를 통해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을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선거 이후 새로운 지방정부와 의회가 구성되고 나면, 투표를 통한 시민참여는 다음 선거 때까지 사라질 것이다. 그동안 반복돼온 익숙한 행태다. 이는 주어진 참정권을 행사했기에 시민의 책무를 다한 것이라는 관성적 생각 때문이다. 또한 일상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소시민의 책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선출된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시민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래서 선거 이후 그들의 행태는 예전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이런 반복된 행태가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참여의지를 넘어 지역의 문제해결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과 열린 공간의 부족’, ‘직접 참여’를 통해 지역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보지 못해 ‘참여의 효능감’을 직접적으로 체험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다.

지방자치는 적극적인 지역주민의 참여를 통해 완성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실제는 여전히 미숙하고 완성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강준만은 《지방은 식민지다》라는 책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딜레마는 직접적 이해관계를 추구하려는 사람들의 정치참여는 과잉인 반면, 민주시민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한 정치참여는 부재한 ‘참여의 양극화’, ‘엘리트’ 혹은 ‘마니아’ 참여에 의한 ‘참여의 불균형’, 참여의 전 단계인 ‘소통의 실패’, 자기편만 참여시키는 ‘참여의 왜곡’에 의해 기인한다고 진단한 바 있다. 여러 해 전의 진단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지역주민들의 ‘직접 참여’와 ‘열린 참여공간’을 통해 지역주민 스스로 지역문제를 해결하고 참여의 효능감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참여기제가 필요하다. ‘참여의 양극화와 불균형’, 그리고 ‘참여의 왜곡’이 발생하는 원인과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이 공적이고 공적인 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의 장, 지역주민의 참여를 통해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소통의 장, 모두가 지역의 주인임을 확인하고 깨어 있는 시민임을 확인하고 함께 모여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 서로의 공감대를 주고받는 공감의 장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 기제가 바로 의사소통적 권력이 발생하는 장소가 규범적으로 뒷받침되는 시민공론장(public sphere)이다.

《춘천사람들》 제125호 사설은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강제력과 집행력을 갖춘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의 작동은 시민들의 참여가 가능한 오프라인의 공론장에서 시작되고 마무리되어야 한다. 시민들과 괴리된 고립된 상태에서 이들 권력이 작동된다면 그 권력은 형식뿐이고 가치나 의의가 없어지는 형해화를 초래하고 시민과 괴리된 권력에 머문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인식할 필요가 있다.
 

김대건 (강원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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