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6일 춘천시청 홈페이지 한 구석에 공고가 올라왔다. ‘춘천시 석사동 976-1’에 준 대규모 점포가 3월 28일 문을 연다는 내용이었다. ‘준 대규모 점포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시민들은 몰랐고, 주목하는 이도 거의 없었다. 그 후 20여일이 지나고서야 시에서는 법에서 강제하고 있는 ‘유통상생발전협의회’를 개최했다. 하나마나한 말만 계속하다 결국 두 차례에 걸친 협의회는 결렬되었다. 불과 일주일 뒤면 춘천의 최대 골목상권에 요리조리 눈치 보며 틈만 노리던 국내 최대 대형마트 슈퍼 슈퍼마켓(SSM)이 문을 연다. 이미 계약은 마쳤고 판매대가 들어섰다.

이제서야 다급하게 현수막이 나붙고 언론이 나섰다. 동네주민들도 모여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SSM 진출이 지역경제와 영세 중소상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논의하고, 문제가 있을 때 도지사가 입점을 3년간 연기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을 가진 ‘강원도 사업조정 회의’가 상인들의 요청으로 지난 4월 3일 개최되었다.
회의가 개최됨으로써 이 기간 입점은 중지되었고 3자가 모여 두 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춘천시가 개최한 회의 때와 마찬가지로 석사동 일원에 문을 열겠다는 국내 최대 대형마트 측의 주장은 완강하다. 이제 권한을 가진 도지사의 결정이 초읽기에 돌입했다. 입점허가냐, 3년 연기냐?

이번에 들어서는 ‘석사동 976-1번지’는 춘천에서 그야말로 골목상권 중 최대 지역이다. 퇴계 주공1·2·3·4차 아파트와 초등학교가 들어서 있고, 지역의 대규모 마트 두 곳이 이미 2km 반경에 입점해 있다. 학원가, 음식점, 병원, 새마을금고 등 각종 중소상가가 밀집해 있다.

지역에 대형마트와 SSM 진출로 인한 지역경기 침체와 중소상인의 몰락, 지역경제 위기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춘천에는 이미 대형마트가 여섯 곳이나 입점해 있으며 SSM이 네 곳이나 자리 잡고 있다. 강릉에는 대형마트가 한 곳뿐인데 비해 춘천에는 여섯 곳이나 된다는 것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의 입점으로 인해 제품과 서비스의 질이 나아지고 편리성이 좋아졌다는 주장도 옛말이다. 이제 동네방네 대형마트뿐만 아니라 농협하나로마트가 들어서 있기 때문에 차를 타고 5분, 걸어서는 10분이면 어디든 갈 수 있다. 도내 3대 대형마트들은 지난해 한 해만 무려 1조345억이라는 엄청난 판매액을 올렸다.

춘천의 1년 예산 90% 해당하는 막대한 액수다. 그러나 지난 기간, 한 대형마트의 지역 기부금은 연간 100만원에 지나지 않았고, 68%가 비정규직인 대형마트도 존재한다.

이번 일을 겪으며 춘천시의 행정과 의회의 역할을 보면서 참으로 씁쓸했다. 입만 열면 지역 경제 위기를 말하면서 지역상권을 살리겠다고 연일 상가의 문이 닳도록 쫓아다니는 이들은 정작 현장에는 없었다. 대형마트들의 판매자료 제출마저 거부당하면서도 보고서는커녕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으면서 실태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춘천시! 이 지경이 되어서도 어느 의원 하나, 아니 동네 의원 한 명도 따지고 나서지 않는 시의회!

한 달 후면 선거다. 잘 뽑자! 지역경제를 살리는 것도 결국 ‘현명한’ 우리의 몫일 뿐이다.
 

나철성(강원평화경제연구소 소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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