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과정의 어려움을 가장 잘 대변하는 말로 외교가에서 널리 쓰이는 “악마는 디테일(detail)에 있다”는 말이 있다. 협상은 쉽게 합의되는 큰 줄기가 아니라 종종 아주 작은 방법론에 관한 견해차이 때문에 깨진다는 뜻을 담고 있는 문구다. 최근 한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북한 비핵화를 두고 국내외 언론매체에서 자주 쓰고 있다.

외교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사에서도 종종 경험할 수 있는 이 말은 곧 다가올 지방선거의 판단 기준으로도 채택해볼 만한 중요한 내용이 아닐까 생각한다. 춘천을 최고의 도시로, 춘천시민의 삶을 최상으로 만들겠다는 구호는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내용이라 누구나 찬성할 공약이다. 그러나 공약을 실현할 방법론으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해갈등이 있어 수없는 조정과 합의과정이 필요하고 돈을 조달해야 하는 등 어려움을 해결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종종 공약에는 방법론이라는 디테일이 빠진 채 장밋빛 구호만 난무하게 된다.

이번 6·13 지방선거에 나서는 세 명의 춘천시장 후보가 내건 공약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선거관리위원회가 만들어 유권자에게 배포하는 공식적인 홍보물에는 더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선거사무소 개소식이나 정책발표회와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밝힌 공약만 보자면 그렇다.

지난 26일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이재수 후보는 자신의 공약을 5개로 간단히 정리해 발표했지만, 그 실현방안을 자세히 들을 기회는 아직 없었다. ‘문화예술로 수천만을 불러들이는 문화특별시’, ‘농업과 안전안심 먹거리 산업 육성’, ‘평화통일 시대 동북아 물류교통의 중심’, ‘우리 안의 자원으로 행복을 만드는 도시’, ‘지역과 대학이 상생하는 대학도시’를 실현할 구체적 방안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최동용 후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달 30일 가진 정책발표회에서 공약의 큰 줄기로 ‘의암호 순환 관광벨트’를 통한 ‘3천개의 젊은 일자리 창출’, ‘지역상권의 부활’, ‘향토기업의 발전’을 내걸었으나 방법론으로 들어가면 막연한 구석이 많다. 변지량 후보 역시 지난 21일 첫 번째 공약발표 자리에서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창의도시 춘천’이라는 화려한 구호를 내세웠지만 달성방안의 타당성을 구체적으로 따져볼 만한 내용은 볼 수 없었다.

춘천시장 후보의 공약을 디테일하게 따질 경우 아직은 메워야 할 구멍이 많다는 사실은 지난 28일 녹화한 강원일보와 CJ헬로비전 강원방송, 강원CBS 주최의 춘천시장 선거 후보 토론회에서도 잘 드러났다. ‘그렇게 되길 기대한다’, ‘잘 하겠다’, ‘시장이 되면 정확한 정보를 파악해 실패하지 않겠다’와 같은 표현을 주고받은 토론회의 분위기가 그 근거다.

공약이 정말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정책의 결과로 종종 제시되는 수치가 달라지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시민들의 현실적인 삶이 구체적으로 바뀌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춘천시가 최악으로 평가받고 있는 보행자 안전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먼저 답해야 한다.

‘2016 전국 기초자치단체별 교통안전지수’에서 춘천은 보행자 영역에서 E등급이라는 최악의 평가를 받았다. 2016년 한 해 동안 춘천에서는 인도가 없는 길 가장자리에서 44건의 사고가 발생했고, 그 중 무려 50%가 사망했다. 6·13 지방선거에 나선 춘천시장 후보들은 지금부터라도 거창한 개발구호 대신 안전하게 걸을 권리라는 작지만 생활에 직결된 문제부터 해결할 방안을 내놓길 바란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인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사람들이 죽어가는 문제는 정말 부끄러운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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