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봉사 위해 무대로 복귀
춘천동부노인복지관 김광희 씨

거문고를 곧잘 연주하던 여고생은 동생들의 앞길을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이른 결혼을 했다. 공무원 남자를 만나 부유하진 않지만 안정된 삶을 꾸려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자연스레 꿈도 포기했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 헌신한 지 40여년 만에 우연치 않은 기회에 다시 나온 세상.

지난 17일 남원에서 열린 제3회 전국 시니어 춘향 선발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한 김광희(69, 사진) 어르신의 이야기다.

노인복지관에 나가기엔 조금 이른 나이 쉰다섯. 우연히 방송자막에서 본 실버예술단 모집공고를 보고 이거다 싶은 생각에 그날로 등록한 지 어느새 15년이 됐다.

거문고를 탔던 기억 때문일까? 한국음악과 한국무용은 그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다. 뼈도 굳고 몸도 둔했지만, 우리 가락에 몸을 맡기는 그 순간이 황홀했다. 춘천동부노인복지관에서 한국무용단 단무장을 맡으며, 엄마로 살아오며 감춰두었던 꿈을 무대에서 펼쳤다. 그 자체가 행복했다. 어느새 삶의 1순위는 ‘춤’이 됐다.

대회를 1주일 앞둔 지난 2016년 3월.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가족과 아침을 먹고, 체력운동과 체중조절 겸 등산을 하고 내려오던 길이었다. 반대편 차선에서 충돌사고를 낸 차량이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인도에 서 있던 그를 덮쳤다. 두 다리가 부서지고 공중으로 붕 떴던 몸이 떨어지며 목과 어깨, 머리에 큰 부상을 남겼다. 다시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에 걷지 못하는 것보다 ‘춤’을 다시 출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더 두려웠다는 그다. 1년 3개월의 길고 긴 재활. 걷지 못 할 것이라는 처음 진단과 달리 그는 빠르게 회복했다. 오로지 무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다시 춤을 춰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병원의 환경은 열악했다. 노인 병실에서 긴 시간을 보내며 절망에 빠진 환자들을 보면서 무언가 희망이 되고 싶었다. 가족도 없이 혼자 쓸쓸하게 보내는 어르신들을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품바공연을 하며 병실을 돌았다. 고통으로 가득한 병실에 웃음이 돌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에는 더욱 쓸쓸한 병원이 안타까웠던 그녀는 함께 활동하고 봉사했던 친구들을 불러 농악과 무용 공연을 선보였다.

“그때 눈동자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60대 루게릭 환자가 있었어요. 농악이 울려 퍼지는 순간 그가 미세하게 팔을 움직이며 장단을 맞추는 겁니다. 병원 안은 울음바다가 됐죠. 그때 생각했어요. 단 한 사람에게라도 기적을 줄 수 있다면 어디든 찾아가 공연을 하겠다고요.”

긴 재활을 마치고 지팡이를 짚고 다시 노인복지관으로 돌아오던 날. 연습장 뒤에 앉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순간이었다. 아직은 ‘춤’을 선보일 수 없지만, 동료들이 공연할 때 무대 위에 올라 진행을 하면서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매일 밤 수면제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지만, 홀로 살아가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그 순간만이라도 고통을 잊을 수 있도록 곳곳을 찾아다니며 봉사를 하고 싶다고 다짐하는 그다.

김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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