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말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기자들을 본 것도 처음이고, 춘천의 어떤 이슈가 전국적으로 보도되는 것을 본 것도 처음”이라고. 지난달 31일 낮. 시청 브리핑 룸에서 ‘춘천방사능생활감시단’이 기자회견을 열고 춘천지역에서 측정한 225곳의 방사능 지도를 공개하던 날.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발표가 예정된 강의실 안에 자리가 없어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은 사람들도, 그러다 결국 강의실 문을 열어놓고 밖에 서서라도 발표를 경청하는 사람들을 본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사람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생업에 쫓기는 생활인으로서 바쁘고 힘들어도 지난 4년간 매달 한 번씩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모여 매체의 침묵과 시민들의 무관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결국 권고수치의 3배를 웃도는 ‘춘천의 높은 방사능 실태’를 알리고야 만 사람들. ‘춘천방사능생활감시단’ 회원들. 이 모임을 하기 전까지 나는 이런 ‘시민’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제 선거철이다. 사거리에서 매연을 마시며 굽실 인사를 하는 입후보자들을 마주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분들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왔을까? 선거운동기간 동안, 그리고 그 몇 개월 전부터 밤낮으로 뛰어다니는 저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예비후보자 등록을 시작으로 120일 동안 자신의 생업을 모두 접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춘천을 변화시키겠다고 말하는 저 에너지의 출처는 어디인가?

나는 상상해본다. 만약 저들의 에너지가 단체의 장으로 선출되고 시정의 결정권을 갖는 권력쟁취의 선거판이 아니라 다른 곳에 쓰였더라면 어땠을까? 선거 때만 바짝 하는 게 아니라 일상적으로, 시의원으로 선출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네에 필요한 일을 위해 모임을 만들고 춘천을 변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서 활동하는 일에 저 에너지가 쓰였더라면 이미 춘천은 수백 번도 더 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가 어디 쉬운가. 멀리 갈 것도 없이 나도 못한 일이다.

나쁜 정치인이 선출되는 것 못지않게 선거의 좋지 않은 효과는 시민들이 정치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되는 것이다. 투표는 이곳에 살면서 발생하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이 ‘내’가 아니라 ‘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강제한다. 내게 ‘시민정치’란 허위의 구호일 뿐이었다. 그런 시민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선거라는 권력게임이 아니고서는 자신이 지역을 바꾸겠다고 나서는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싶었다. 선거 때라도 하는 게 어디야? 자신만이 할 수 있다고, 자신이 시장이 되고, 자신이 시의원이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는 게 멋쩍기는 해도 ‘그래도 그거라도 어디야?’ 했다.

하지만 ‘춘천방사능생활감시단’ 회원들을 겪으며 다른 가능성을 본다. 가가호호 방문하며 땀 흘려 받은 백만 원을 활동비 지원을 위해 쾌척하고, 독수공방하는 아내를 두고 집에도 못 들어가며 발표자료를 준비하고, 새벽까지 기자회견을 준비하며 밤잠을 설치고, 돌도 안 된 아이를 안고 강의실을 찾아오고, 발표 들으러 온 사람들에게 건넬 간식거리를 남편과 함께 준비해오고…. 일일이 다 열거할 수도 없는 많은 마음들이 모여 이 일을 이루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시민’이 지역을 바꿀 수도 있겠구나’, ‘정말 ‘시민’이 정치를 해도 되겠구나’ 싶은.
 

양창모 (춘천방사능생활감시단 회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