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겪으며 시민들의 정치의식 변화 확인할 수 있어
보여주기 식 행정·의정에 대한 시민질타 이어져

본 선거 13일, 예비선거 90일을 합쳐 103일 동안의 대장정이 끝났다.

6·13 지방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저마다 절치부심 혼신의 힘을 다했다. 춘천의 23만1천430명 유권자들은 새로운 도지사, 새로운 교육감, 새로운 시장을 선택했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당선자들은 시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지만, 민심을 제대로 파악해 자신들이 내세운 공약을 잘 이행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사전투표일인 지난 8일과 9일, 그리고 본 투표일인 13일 투표장을 찾은 시민들에게 이번 선거를 통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대체로 경제회생과 보육 및 교육정책 등 삶이 질이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이었다. 지지부진한 레고랜드 사업 때문에 투표했다는 유권자도 상당수 있어 이번 선거에서 레고랜드가 중요한 이슈였음을 알 수 있었다. 후보들은 저마다 거창한 슬로건 아래 정치권 인맥이나 정부예산 확보, 대통령과의 관계 등을 내세우며 유능함을 입증하려 했지만, 정작 시민들의 바람은 큰 것이 아니라 상식이 통하는 사회, 변화에 대한 희망이었다.

춘천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 실생활 관련 정책 제시

선거를 며칠 앞두고 진보적 성향의 시민단체 연대체인 춘천시민단체네트워크는 사전투표가 시작된 지난 8일 3명의 시장후보들에게 정책제안을 제시했다. 3대 정책 5대 정책과제에 대한 시민의 참여확대를 요구하며 후보들의 동의를 받아 발표했다.

시민단체네트워크가 요구한 3대 정책방향은 ▲시민의 참여확대를 위한 거버넌스 기능의 내실화 ▲공정하고 투명한 복지서비스 및 친환경적 패러다임 전환 ▲사람 중심의 지속발전이 가능한 소프트웨어 개발과 정책참여 보장 및 투명성 강화였다. 또, 5대 정책과제는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복지서비스 확대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지원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청소년이 행복한 도시 ▲도시 숲 확장, 친환경적인 교통시스템 개선 등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도시 ▲지역 중소상공인 지원, 사회적경제 활성화, 로컬푸드와 연계한 지역농업 지원, 자체 일자리 창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 지역경제 활성화였다.

“공약 꼭 지켰으면” 한목소리

사전투표를 마친 장애인 이갑순(64·석사동) 씨는 “선거일에 투표하면 복잡할 것 같아 사전투표를 했다”며 “국민이 편안하게 잘 살게 해줬으면 좋겠다. 국민을 위해 열심히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진보 교육감과 여당후보를 선택했음을 순순히 시인했다.

이병석(71·석사동) 씨는 “투표하는 날 여행을 하기로 해서 미리 왔다. 공약이 공약에 그치지 않고 꼭 하나라도 지켜졌으면 한다. 춘천은 관광도시다. 관광 인프라를 잘 살려 춘천에 많은 관광객이 와서 춘천경제가 활성화되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관외투표를 했다는 이경숙(여·65세) 씨는 “그날 볼 일이 있어서 나가는 길에 미리 투표하러 왔다. 사심 없이 일 해줬으면 좋겠다. 이것저것 많은 걸 내세우고 있는데, 그걸 책임감 있게 실천하고 시민을 위해 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후평1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장용길(51) 씨는 최근 “정부 기조에 맞춰서 사람 중심의 도시, 인간을 최대한 존중할 수 있는 춘천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며 “당선자들이 많을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일할지는 모르겠다. 실천을 잘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정농단·촛불 영향 컸다

국정농단에 따른 촛불의 영향으로 투표하게 됐다는 유권자들도 꽤 많았다. 국민으로서, 시민으로서 주어진 권한을 제대로 행사해야겠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
이영민(45·퇴계동) 씨는 “바라는 건 하나다. 각자 주어진 권한을 바르게 잘 사용하는 것, 그것밖에 안 바란다. 이번에는 당을 보고 찍었다. 정당 자체가 잘해줬으면 좋겠다. 촛불의 영향이 당연히 있었다. 촛불집회에 참석했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춘천교대에 재학 중인 박준규(21) 씨는 “지난 촛불집회의 영향이 많았다”며 “더 노력해서 살기 좋은 나라 됐으면 좋겠다. 특별히 기대하는 후보는 없고, 그냥 전부 다 열심히 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퇴계동의 한 가족은 일가족 3명이 단체로 투표하러 나오기도 했다. 박양윤(53)·유자빈(여·47)·박지수(23) 씨 가족이다. 아버지 박씨는 “아들이 스물세 살인데, 첫 투표를 했다. 변화를 기대하며 아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은 꿈과 희망을 갖고 왔다. 초심이 가장 중요하다. 그 다음은 약속의 실천, 그 다음은 내 가족을 위해 정치한다는 마음가짐이다. 이번에 지지하는 후보가 100% 바뀌었다. 이전 지도자는 국민을 힘들게 한 장본인이다. 그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뼈아픈 선택을 했다”며 국정농단 세력에 날을 세웠다.

레고랜드 문제도 표심에 영향

7년째 지지부진한 레고랜드 사업도 투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3일 오전 후평3동 제1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황현득(여·65) 씨는 “실제로 도민이나 시민이 원하는 일은 안 하고 보여주기 식 행정을 하는 모습을 보며 투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중도 같이 아름답고 유적이 많은 섬에 레고랜드를 짓겠다면서 정작 우리가 얻을 것이 무엇인지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더 이상 이런 보여주기 식 정치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일침을 날렸다.

김영민(46·후평동) 씨도 “정말 어렵게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고 있는데, 정부가 이런 기조를 잘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투표했다. 수년째 추진이 안 되고 있는 레고랜드 사업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잘 마무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여론조사 안 믿는다” “밥그릇 싸움 하지 않길”

최근 여론조사에 대한 강한 불심감도 확인됐다. 실명을 밝히기를 꺼린 퇴계동 58세 여성은 “어쨌든 우리 삶이 좀 나아지도록 중앙정부가 잘해야 한다. 이 정부가 언론을 장악해서 제대로 알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다. 외국방송을 들어야 할 지경이라고 말하더라. 나는 지지율을 믿지 않는다. 너무 인기에만 집중해 국민의 눈과 귀를 막았다고 생각한다. 너무 살기가 힘들다. 이 정부 믿지 않는다. 선거를 통해 정부를 심판했다고 믿는다”고 현 정부에 강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연인이 함께 투표장을 찾은 이승미(여·20)·최승규(24) 씨 커플은 “첫 투표인데 느낌을 잘 모르겠다. 후보도 잘 모르겠다. 공보물을 확인하기는 했는데 맘에 와 닿지 않았다. 정당만 보고 투표했다. 대통령을 뽑는 건 아니니까. 그냥 도지사와 시장이 따로 놀고 그러지 말고 하나가 됐으면 좋겠다. 하나가 돼 지방분권이 잘 실현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석사동의 사전투표장에서 만난 김정원(여·40대 후반) 씨는 “친구들과 미리 투표하러 왔다. 밥그릇 싸움 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자기 일처럼 신경 쓰고 또 너무 과하게 하지 않아도 되니까 한두 가지라도 꼼꼼하게 살펴보고 일했으면 좋겠다”고 소박한 마음을 전했다.

약사명동에서 만난 김아무개(32) 씨는 “예전과 다르진 않다. 항상 같은 모습을 바라는데, 공약 이행률을 높였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당선자들, 후보자 때의 마음 잊지 않아야

투표장에서 만난 시민들의 목소리는 역시나 소박했다. 눈에 띄는 것은 이번 선거에서도 국정농단에 이은 촛불혁명이 시민들의 표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체로 뭔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였다. 보여주기 식의 전시행정을 질책하며 할 수 있는 일을 잘 하라는 것이다.

후평3동 최아무개(여·44) 씨는 “기존에 지지하던 정당을 이번에도 지지했는데, 정치에 대해 특별히 바라는 것도 없고 기대도 없다. 그렇지만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요즘 사교육이 너무 심하다. 공교육이 모두 놀이 위주라 모든 걸 밖에서 해결해야 한다. 무조건 금지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 그래서 교육감 선거에 좀 더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이제 잔치는 끝났다. 정치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도 예전과는 상당히 달라진 느낌이다. 기존의 관행대로 행정을 펼치거나 의정활동을 한다면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 유권자들은 당선자들이 후보자로서 절박한 마음으로 내뱉은 말들을 똑똑히 기억할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김애경·오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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