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적인 제목이다. 불쾌할 수도 있겠다. 부모가 아이에게 선(善)이냐고 묻다니! 너무나도 당연한 이 얘기를 던지고 나눠 보고자 하는 나도 참 요상타. 그러나 ‘항상’이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고민거리는 될 수 있지 않을까. 또 ‘모든 부모’라고 한다면 어떤가.

우리 마을 ‘별빛산골유학센터’에는 부모의 곁을 떠나 자연을, 시골을, 농촌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자 ‘유학’을 온 도시의 어린 초등학생 아이들이 있다. 2010년 네 명의 아이로 시작했으니 햇수로만 9년차에 접어들었다. 곁에 부모가 없지만 생각보다 잘 생활하고 있다. 부모에게 어리광 부리고 떼쓰며 투정부릴 나이에 낯선 사람들 틈에서 시골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아이고, 어쩌다가 저런 어린나이에!’ 하며 측은해하거나 ‘어떤 부모들이기에 아이를 버렸나’며 화를 내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농촌유학’이라는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도시의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 도망치듯 쫓겨 온 아이들일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시 묻는다. “부모는 아이에게 항상 선(善)인가?” 다시 내게 묻는다. “모든 부모는 아이에게 항상 선(善)인가?”

처음 농촌의 작은학교를 살려보려고 방법을 찾던 중 ‘농촌유학’, ‘산촌유학’이라는 것을 접하고 내가 나를 설득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 이유가 바로 이 질문 때문이었다. 사실 아직도 정답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모든 부모가 항상 아이에게 선(善)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아이의 성장에 일정 기간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이 제공될 수 있다면 매일 부모 곁에서, 가정 속에서 지내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모가 버리거나 부모가 너무 싫어 떠나온 아이는 없기 때문이다.

아동학대는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2017년 통계를 보면 학대 의심사례 2만857건, 학대 판정사례 1만6천796건이었고, 잠재 위험사례도 1만1천217건이었다. 학대로 판정된 사례 중 부모에 의한 학대가 80%라는 사실은 처음 던진 질문이 그리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난 일부 이런 가정의 부모들 때문에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진 것은 아니다. 다 알고 있는 이야기처럼 절로 유학을 떠난 ‘한석봉’ 얘기를 하자는 것도 아니다. 일반적이며 좋은 부모일 거라고 생각하는 바로 나, 우리를 돌아보자고 얘기하고 싶다.

우스갯소리로 얘기하는 것이겠지만 부모가 교사인 아이들이 힘들게 성장한다는 얘기가 있다. 교육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내가 짧은 지면을 통해 ‘부모의 역할론’이니 뭐 이런 학문적인 것을 논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정말 부모인 나는 항상 아이에게 선(善)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제대로 된 부모교육 한 번 받아본 적 없이 부모가 된다. 또 한두 명 키우면서 우리는 어느 순간 교육전문가, 육아전문가, 부모전문가가 되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물론 부모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조심스레 제안하고픈 것은 안전하고 커다란 ‘울타리’로서의 부모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앞에서 끌거나 뒤에서 윽박지르는 목동이 아니라, 아이들의 자유로운 성장을 지켜주고 돌봐주는 ‘울타리’. 그리고 울타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이들. 성장할수록 울타리는 넓혀주고 결국 울타리를 허물어주는 부모. 오늘 한 아이가 유학을 왔다가 다시 부모 곁으로 돌아갔다. 부디 이 시골보다 훨씬 더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뒤에서 걷지 마라. 난 그대를 이끌고 싶지 않다. 내 앞에서 걷지 마라. 난 그대를 따르고 싶지 않다. 다만 내 옆에서 걸어라.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 아메리카 인디언 유트족 속담 중에서.
 

윤요왕(별빛산골교육센터 대표)

윤요왕(별빛산골
교육센터 대표)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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