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불쑥 무용 스승에게 물었다. 무용에도 기호학을 적용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고개를 갸우뚱하시던 스승은 무용기호학이라는 분야가 있는데, 소수의 연구자들만이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나로선 연극이나 미술, 광고나 언론에서 그토록 많은 연구를 축적하고 있는 기호학이 유독 무용에서만 덜 다루어지는 것이 의아할 따름이라는 말을 건넸다.

고전 발레의 움직임은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두 손을 가슴에 대면 간절함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고, 두 손을 포개어 볼에 대면 포근함이나 사랑스러움을 표현한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놀라움과 기쁨, 슬픔과 분노 등의 감정을 손동작이나 몸 움직임을 통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현대 발레나 현대 무용에서 보여주는 움직임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복되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고, 몇 개의 정지동작만을 비연속적으로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지금 표현하고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선명하게 파악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다 결국 무용의 취미를 잃어버리는 경우까지 생긴다.

이처럼 공연의 전체 이야기의 중요한 뼈대만 보여주는 현대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으로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골격만 보여주는 작품의 움직임에 살을 붙여 나름의 서사를 완성해가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움직임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고 표현하기 위해 열심히 훈련했던 안무가와 무용수의 과정과 심정을 읽어내는 방법이 있다. 마치 현대미술의 추상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압축되고 코드화된(Encoding) 작품을 역으로 풀어 펼치면서(Decoding) 본래 이미지를 완성해가면서 감상하거나, 작품에 숨겨 있는 작가의 열정과 마음을 작품에 나타난 붓 터치나 기운, 색의 배치와 구도를 통해 들여다보는 것과 유사하다. 그런 면에서 현대미술과 현대무용, 현대음악은 무척 닮았다.

기본적으로 기호학적 분석은 표현된 작품(표증구조)을 구조적으로 파악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작품을 분석해 파악하고서 그 아래 층위(서사구조)에 있는 이야기를 읽어낸다. 여기서 작품의 모티브와 스토리텔링을 파악한다. 그렇게 파악된 서사구조를 더욱 깊게 분석함으로써 문화원형과 코드(심층구조)를 찾아내는 일련의 과정이 기호학적 분석이다.

얼마 전에 본 작품이 생각났다. 거칠게 무대 안으로 들어온 무용수가 전기밥솥을 신경질적으로 열어젖히고 한 숟가락의 밥을 떠서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는다. 우선 무용수가 어떻게 들어와서 자신의 내면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어서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다. 홀로 집에 들어와 반항하듯 밥을 먹는 움직임을 통해 그의 내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야기를 파악하고 나서 그의 내면세계로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그의 직장의 고달픔과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왜곡된 가족구조를 파악해낼 수 있다. 그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홀로 밥을 먹으며 겨우 삶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관객들이 공감한다. 그의 행동기저에 감추어져 있는 일치된 코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작품을 안무가로부터 독립시켜 작품 내에서 움직임과 구조를 분석하려는 기호학적 분석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 때론 표현된 동작이 의미를 확장하거나 의도적으로 의미가 미끄러지도록 안무한 작품들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작품을 통해 안무가의 마음을 하나하나 읽어나가는 재미를 누구도 앗아 갈 수 없기에 오늘도 벅찬 기대로 공연장을 향한다.
 

이정배 (문화비평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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