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서쪽 외곽의 잔잔하고 넓은 호숫가에 자연과 집들이 운치 있게 어우러진 마을 클라도우(Kladow)가 있다. 대도시에 조금만 벗어나면 이토록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져 인기가 높다보니, 우리 춘천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베를린 '윤이상하우스' 첫 운영관장을 맡은 춘천 출신 정진헌 교수.

이곳에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현대음악의 5대 작곡가 중 하나인 윤이상의 자택이 있다. 독일 망명 후 집이 완공되고부터 세상을 떠나기까지인 1974년부터 1995년까지 살던 곳이면서 이른바 ‘동백림사건’ 이후 그의 걸출한 작품이 대부분 이 집에서 작곡되었으니 한 작곡가의 생애와 고뇌의 흔적이 많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윤이상이 생존해 있을 때는 이곳에서 많은 음악가들이 모여 작품구상을 하고 집 내부 공간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기도 했지만, 최근까지 이 집은 거의 방치되다시피 내버려진 상태였다. 이 집의 소유단체인 윤이상평화재단이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지원을 받지 못하는 등 어려움이 닥치자 국·내외를 넘나들며 소통해오던 사람들이 내부적 갈등과 진통을 겪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에 참석한 사이, 김정숙 여사는 윤이상의 고향인 통영 동백나무를 윤이상의 묘에 옮겨 심어 국내에서도 이슈가 되었다. 국민적 관심에 힘입어 십시일반 펀딩이 이루어졌고, 윤이상하우스는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집을 보수하며 다시금 ‘예술가 하우스’ 면모를 되찾고 있다.

한국인 친구들이 있어 한국에 대해 조금 안다는 클라도우의 한 주민은 “독일에 온 한국인들은 베토벤하우스와 모차르트하우스에는 꼭 방문할 정도로 예술과 문화에 관심이 많은데, 윤이상하우스가 이토록 내버려져 있었으니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이제라도 윤이상하우스로 예술인들이 발걸음을 많이 했으면 좋겠군요”라고 전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집은 난방도 채색도 가구도 앞마당도 어디 하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누군가는 이 집을 헌신적으로 살펴야 했고, 다시 음악인들이 열정을 피울 수 있도록 정성껏 가꿔야 했다.

올해부터 이 집에 살며 운영관장 직을 맡은 정진헌(48) 교수를 만났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 박사를 마치고 독일 괴팅엔 소재 막스플랑크 종교와 민족 다양성 연구원에서 박사후과정 및 선임연구원을 역임한 후, 현재는 베를린 자유대학교 한국학과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고향에서 온 인터뷰’라며 《춘천사람들》의 취재를 흔쾌히 응했다.

어떻게 윤이상하우스를 맡게 되었나?

우선 윤이상평화재단에서 낸 모집공고를 접했을 때 옛 기억이 되살아났어요. 문학청년이던 시절 혼자 상상하며 즐거워하던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강촌에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주거창작건물을 만드는 거였지요. 공사에 참가한 목수와 벽돌공들의 이름도 새기고, 후에 그의 자녀들도 자랑스럽게 방문하는 곳. 그곳에서 시인, 소설가, 화가, 작곡가들이 일정기간 돈 걱정 안 하고 머물면서 서로 교류하고 창작하는 그런 시설을 꿈꾼 적이 있었어요. 그렇게 스무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베를린의 윤이상하우스를 만나게 된 거죠. 춘천에서 한때 키웠던 구상을 베를린에서 작은 규모로 실행하게 된 셈입니다.

또 하나는 제가 현재 진행하는 연구주제가 ‘(탈)분단도시의 열망’이라고 서울, 베를린, 평양을 인류학적으로 비교연구하는 것입니다. 윤이상 선생님은 베를린이라는 분단 및 탈분단 국제도시에서 경계인이자 탈경계인으로 사시면서 그러한 철학과 감성을 음악이라는 예술장르로 구현한 거라 봅니다. 따라서 제 중장기 연구관심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저로서는 윤이상하우스에 들어가는 일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윤이상하우스의 비전은 어떻게?

아직은 시작단계에 불과하기에 온갖 꿈을 구상하며 좌충우돌 실험을 통해 점차 그 위상을 잡아갈 생각입니다. 핵심 프로그램으로는 거주 장학생(레지던스 펠로우) 또는 거주예술인 프로그램입니다. 석사과정 이상 수학 중인 음악 및 예술전공 젊은 분들은 장기 장학생이 될 수 있고, 기성 음악예술인들은 3개월 이내의 단기 펠로우로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우스콘서트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윤이상 선생님은 현대음악계의 거장으로서 당신의 거의 모든 작품을 자택에서 창작하셨다고 합니다. 윤이상하우스는 선생님의 예술혼이 담긴 장소입니다. 이 하우스에는 약 10년 전에 한국정부의 지원금으로 개보수를 하면서 콘서트홀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이곳에서 윤이상 선생님 작품에 대한 감상과 연구, 나아가 차세대 음악인들의 작품이 연주됨으로써 현대음악의 산실로 거듭나도록 할 예정입니다.

또 다른 프로그램은 인문사회학분야 강연과 세미나 등입니다. 작곡은 사상과 감성의 음악적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윤이상 선생님께서는 동양의 철학과 미를 서양음악에 접합시킴으로써 문화간 대화(transcultural dialogue)를 정점에 올리신 분입니다. 나아가 남북한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넘어 더 원대한 민족적 기상을 웅장한 음악으로 승화시키신 분입니다. 좋은 강사와 주제를 가지고 다시금 인간과 우주, 자연을 논하는 배움터가 되고자 합니다.

상당히 원대한 꿈일 수도 있겠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은 없는가?

어떠한 구상도 물질적 토대가 빈약하면 실현성이 떨어지고, 반대로 실질자본이든 상징적 권력이든 물질이 많아지는 듯싶으면 이전투구가 생기기 마련이지요. 개인적으로 제일 우려하며 염두에 두는 것은 바로 지속성입니다. 지난 시기 보수를 마치고도 운영되지 못한 채 마치 폐가처럼 버려졌던 과오를 거울삼아서라도 고국의 정세와 무관하게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하는 게 가장 큰 과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과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윤이상하우스가 베를린, 나아가 독일과 전 세계를 무대로 한 국제적 공공기관이라는 위상을 확보하는 거라 봅니다. 이를 위해 한국의 재단 관계자들과 이곳 현지 전문가들과 구체적인 논의와 협상을 해나가려 합니다.

춘천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춘천은 많은 이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고 실제로 많은 예술인들이 배출된 곳이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가족, 그리고 옛 벗들과 스승님이 계신 고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학시절부터는 아주 가끔씩만 춘천을 찾았고, 스무 해 가까이 되는 외국생활 동안에는 1년에 하루이틀 정도만 들르니 사실 마음의 빚이 있기도 합니다.

남북으로 나뉜 강원도의 도청소재지로서 그 역사적 공간의 의미를 탈분단의 열망으로 승화시키는 예술적 시도들이 춘천에서 나왔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윤이상 선생님의 작품을 배경으로 춘천의 대표 예술장르인 인형극을 만들어 탈분단 예술감수성이 다양하게 구현되면 좋겠습니다.

베를린 윤이상하우스는 이 달 20일에 개관식을 앞두고 있다. 개관식은 정통 윤이상 음악을 연주해 찬사를 받은 윤이상 음악 스페셜리스트들을 초대한 ‘윤이상 클래식’과 앞으로 윤이상 음악을 더욱 발전시키고 이끌어나갈 촉망받는 차세대 음악인들을 초대한 ‘龍, 飛上’을 1·2부로 엮어 진행될 예정이다.

 

정은비 시민기자(프랑크푸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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