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마실 - 동산면 봉명리] 반딧불이와 팔색조가 날아드는 원시림 속 마을
[열한 번째 마실 - 동산면 봉명리] 반딧불이와 팔색조가 날아드는 원시림 속 마을
  • 춘천사람들
  • 승인 2018.06.2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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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 같은 기암절벽이 장관인 구절산.


《춘주지(春州誌)》에는 봉명리와 조양리에 걸쳐있는 마을이 명암(鳴岩)인데, 그곳에 부엉이가 깃든다는 범바우(부헝바우)가 있어 봉명리라고 했다고 한다. 이름으로 봐선 봉황과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부엉이가 등장해 좀 의아하다. 춘천문화원 허준구 사무국장은 봉명리(鳳鳴里)라는 지명은 봉황과 관련된 인근 조양리(朝陽里)와 함께 살펴봐야 한다며, 아침 햇살에 잠이 깬 봉황이 운 곳이라고 해서 봉명리가 됐다고 설명했다.

5번 국도를 따라 원창리를 거쳐 동춘천산업단지가 있는 봉명1리와 강원대 학술림 봉명관리소가 있는 봉명2리를 둘러보았다. 자연환경연구공원 주변과 학술림 일부도 봉명 2리다. 자연환경연구 공원은 주소가 홍천으로 되어 있는데, 봉명2리 본 마을에서 가려면 홍천 부사원고개를 넘어 돌아가야 한다.

“이 골짜기로 시집오고는 어찌나 깊은 산골인지 산으로 콱 막혀서 나는 숨이 막혔어.”



봉명1리 마을회관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할머니(76)<사진>를 봉명2리 초입에서 만났다. 굽은 허리로 양 손에는 물건을 들고 햇볕에 달궈진 포장길을 힘겹게 걷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없어 높은 차체에 잘 오르지를 못했다. 부축해서 태워드리니 어찌나 고마워하는지 마음이 짠했다. 옆 골짜기에 있는 회관까지는 3km가 넘는다. 마을 일을 일주일에 세 시간씩 세 번 하고 한 달에 25만원을 받는데 혼자 사는 할머니는 걷는 방법 외엔 별 수가 없다.

“나는 호적에 나이가 네 살이나 줄어서 노령연금도 늦게 받았지. 돈 구경은 노령연금과 마을 일 하고 받는 게 다지. 농사라야 나랑 애들 먹을 논 조금에 밭도 700평밖에는 없는데, 그저 식구들 먹을 정도지. 애들도 겨우 고등학교나 마쳤으니 저희 사는 것도 힘들어. 시집와서도 너무 가난해서 땅 한 뙈기 없어 남의 집 품이나 팔고 일만 죽도록 했지. 광목옷을 잿물에 푹푹 삶아 냇가에 방망이로 팡팡 치대며 얼음을 깨고 빨래할 적엔 눈물이 났지.”

고향을 떠나 먼 산골로 갓 시집온 새색시는 어디다 맘을 풀었을까?

“어디 갈 데나 있어? 동무가 있기를 해. 힘들면 그냥 개울가 풀 섶에 앉아 울기나 했지. 밤이면 부엉이가 부엉부엉 울고 반딧불이가 엄청 많았지. 휴우, 사는 게 참 힘들어.”

봉명2리 당산나무 아래서 더위를 식히는 마을사람들.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마당에서 풀이나 뽑고 뜨는 달을 보며 적막하고 외로웠던 나의 산골 신혼시절이 생각났다. 고맙다며 주신 오미자 냉차 한 잔을 받아들고는 붉은 색 오미자차보다도 더 벌겋게 달아오른 할머니 얼굴 때문에 냉큼 마시지도 못했다.

할머니 집 근처 당산나무 그늘에 섰다. 산들바람에 하염없이 앉아 있고 싶다. 개울 옆 140년 된 느티나무는 보호수로 가지가 길까지 내려와 그늘의 품은 넓었다. 울타리를 두르고 바닥은 정원석을 깔고 벤치를 놓았다. 그 옆에는 정자가 있어 운치를 더 했는데 버스정류장 역할도 했다. 마을주민들이라야 노인들이 대부분이고, 늘 그렇듯 그늘에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예전에는 여기서 제도 지냈어요. 새마을운동 하고부터는 그만 없어졌어요. 한여름에도 여기 가만 앉아 있으면 오싹해져요”

이곳을 ‘도화골’이라 하는데 느티나무 앞에는 복숭아밭이 있었다. 지난 추위에 동사한 나무도 더러 눈에 띄었다.

도화골 안쪽으로 더 올라가면 강원대 학술림 봉명관리소가 있다. 관리소 앞마당을 지나 숲이 시작하는 곳에 허필욱 이장이 산다. 그는 30년 넘게 곤충 연구에 몰두했다. 《춘천사람들》에도 곤충 이야기 기고를 했고 곤충뿐 아니라 식물 사진집도 냈다. 그의 서재에는 아직도 정리를 다 못한 사진들이 넘쳐났다. 앞마당에는 온갖 야생화와 희귀 나무들이 나를 흥분하게 했고, 뿔나비들이 수십 마리가 땅바닥에서 물을 마시거나 떼를 지어 날았다. 나비 애벌레는 팽나무 잎을 좋아한다. 팽나무 잎에 붙은 왕오색나비 애벌레는 튼실했다.

“이 숲에는 팔색조가 있어요. 나도 소리만 들었지 둥지는 찾지를 못했어요. 천연기념물인데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는 새지요. 주로 남쪽에 서식하는데 언젠가 광릉수목원에서도 서식지를 발견했대요. 그런데 이 숲에 있다니 놀라운 일이에요. 학술림으로 일반인 출입이 제한되어 서식환경이 좋았겠죠. 팔색조는 아주 예민한 새거든요.”

팔색조는 다양한 색의 깃털을 가진 아름다운 산새다. ‘숲의 요정’이라 불리는데, 학명과 영명 모두에 요정을 뜻하는 ‘nympha’와 ‘fairy’가 들어가기에 붙여진 별명일 것이란다. 여름 철새로 4~7월에 제주도와 남해안의 울창하고 습한 산림에서 번식하며, 대전, 창원, 포천, 오대산에서 관찰된 기록이 있지만 흔한 일이 아니라 뉴스거리가 될 정도다.

허 이장의 도움을 받아 홍천 부사원고개에 위치한 모형항공기박물관 무궁화동산을 지나 자연환경연구공원으로 향했다. 입소문으로만 듣던 구절산의 기암절벽이 보고 싶었다. 봉명리 마을에서는 평범한 산처럼 보였으나, 그 반대편은 병풍 같은 기암절벽이 장관이다. 봉명2리에 들머리가 있어 산에 오를 수는 있으나, 학술림 홍천관리소의 허락을 받고 자연환경연구공원을 지나 차량으로 임도에 들어섰다. 쭉쭉 뻗은 아름드리 잣나무 숲을 지나 울창한 소나무 숲, 떡갈나무, 밤나무, 고목의 돌배나무 등 다양한 수종의 거대 산림에서 구절산의 아홉 폭 절벽은 장관이었다. 형편없는 렌즈로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카메라 탓을 또 하게 되었다.

구절산을 한 바퀴 돌아 허 이장 집으로 내려오려고 했으나, 차단기 열쇠가 바뀌는 바람에 돌아 나와야 했다. 자연환경연구공원에서 천천히 둘러보았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나비 관찰장이나 반딧불이 관찰장은 문제점이 있어 보였다. 거기서 나비는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다양한 야생화와 희귀 수생식물을 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진입로 절벽의 기린초들이 노란꽃을 피우고 은꿩의 다리, 고삼이 반가웠지만 전체적으로 관리가 좀 소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 내 진입로에는 사유지가 있어 외지인이 거의 주말에만 들어와 펜션과 캠핑장을 운영한다고 했다.

봉명리 반딧불이. 사진=허필욱


이튿날, 다시 찾은 봉명2리. 전날 운문산 반딧불이 이야기가 생각나서 허 이장에게 반딧불이 사진을 부탁하려고 과일을 사들고 방문했다. 흔쾌히 허락하고는 한참 만에 야간에 촬영한 운문산 반딧불이 사진을 찾아주었다. 호방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허씨도 친절했지만 그의 아내도 무척 편안하게 대해주었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마을 초입의 소나무 거리제는 기사로 꼭 쓰라며 9대째 이 마을에 사는 박은배(83)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넣어 솔밭에서 만나게 주선해 주었다.

“1·4후퇴 때 삼마치고개에서 8사단이 홀랑 망했잖아. 삼마치계곡에 핏물이 몇 날 며칠 흘렀을 정도로 사람이 많이 죽어 나갔다고. 아주 피바다였대. 대부분이 피난 가던 부녀자, 애들, 노인들 그랬지. 그때 후퇴하며 탱트며 포, 트럭 이런 군용시설을 여기 솔밭에 은폐했는데, 그 정도로 여기가 소나무 숲이 울창했어.”

국군과 미군이 삼마치와 성지산 부근에서 중공군 6개 사단의 대대적인 반격에 포위돼 중화기와 중장비를 모두 버리고 후퇴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전사자를 냈다. 양민들도 희생이 컸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전쟁 때 총탄을 맞아 팔뚝에 상처를 입고 오른쪽 손가락 세 개가 불편하다. 고등학교까지 다녔던 할아버지는 공무원이 되려고 군 입대를 여러 번 지원했지만 갈 수가 없었다.

9대째 봉명리에 사는 할아버지로부터 거리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때는 군대를 안 갔다 오면 사람구실을 못했어. 공무원이 되려고 해도 아무것도 안 돼. 그래, 이렇게 평생 농사꾼으로 살았지. 이 솔밭은 전쟁 때 폭격을 맞아 망가지고, 그 이후에는 논 한 평이 귀할 때니 나무를 전부 베고 논을 만들었지. 우리 할아버지 말씀이 옛날엔 이곳에 호랑이가 자주 나타났대. 실제로 맞닥뜨린 적도 있었는데, 마을사람들이 호랑이를 위한 제를 지내게 된 거야. 마을이 안전하고 풍년이 되기를 바라며 좋은 날을 받고 제주는 몸도 마음도 바르게 해야 했지. 아침저녁으로 두 번 제를 지냈는데 새벽에는 정화수를 올리고 저녁에는 호랑이가 좋아한다는 개를 잡고 떡이며 과일을 올렸어. 마을사람들은 횃불을 만들어 밝히고 제가 끝나면 모닥불을 피워 음식을 나누어 먹었어. 거리제는 3월 삼짇날 지금도 지내지.”

거리제를 지내는 봉명리 소나무 숲.


200년도 넘었다는 소나무는 잘 생기고 근엄해 보였지만 몇 그루 안 되어 아쉬웠다. 솔밭 벤치에서 동네사람들과 할아버지 얘기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듣다가 저녁이 다 되었다.
솔밭 옆으로 흐르는 하천에는 달뿌리풀이 점령해버렸다. 마을사람들은 비가 많이 오면 이 풀 때문에 걱정이라고 했다. 걱정은 이뿐만이 아니다. 동춘천산업단지 내 열병합발전소로 인한 대기오염도, 마을길 한가운데 들어온다는 태양광발전시설도 걱정이다. 구절산, 연엽산 자락의 청정지역 봉명리가 개발의 바람에도 멍들지 않고 반딧불이와 팔색조가 날아들기를 바란다.

김예진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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