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령성 관전현 방취구의 의암기비, 인적조차 끊긴 곳에 방치돼
여성의병장 윤희순의 노학당 기념비는 한인 2세 정정복 씨 관리로 양호

“현장을 보지도 않고 열사들의 행적을 평가하지 말라.”

선비 의병장으로 수많은 제자를 거느린 대학자가 인적조차 없는 깊숙한 산속에 조그만 비석으로만 남아있는 초라함, 관리조차 되지 않는 의암기비를 본 국외항일의병유적탐방단원들이 마음에 새긴 말이다.

구한말 국외 항일운동의 정신적 지주이며 거두였던 대한13도의군 도총재 의암 유인석의 국외 항일유적을 답사한 ‘2018 국외항일의병유적탐방단’ 단원들은 의암의 마지막 거주지였던 중국 요령성 관전현 방취구의 깊숙한 골짜기에 숨겨진 의암기비 앞에 고개를 숙였다. 고구려의 첫 도읍지로 알려진 집안의 환인현에서 버스로 두 시간 반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의암의 마지막 거주지는 혼강이 흐르는 마을 옆에 자리한 작은 농촌마을에서도 1.5km 이상 인적 없는 숲속을 헤쳐가야 찾을 수 있다.
방취구는 영월에서 거병했던 의암과 240여명의 의병들이 양구와 황해도 해주, 평안도를 거쳐 만주로 이동해 국외 항일의병활동을 도모했지만, 일제의 압박에 굴복한 청나라 군대에 의해 강제로 무장해제를 당했던 곳이다. 의암의 항일 독립운동 정신을 높이 산 요령성 관전현 지방정부에서 기념비를 세워 위치를 표시하고 있다. 현장을 돌아보면 일제에 의해 지명수배가 된 대학자이자 13도의군 도총재인 의암의 국외 항일의병운동이 얼마나 열악한 가운데서 계속 됐는지 알 수 있다.

비석이 있는 지역은 인적이 없는 산속으로, 목축을 하는 중국인들이 소먹이를 위해 찾을 뿐 사람의 흔적은 어디에도 발견되지 않는 오지다. 의암의 마지막 거주지는 비석이 세워진 곳에서도 산 능선을 따라 30여분 더 올라가야 하는 곳이라 길조차 흔적이 없다. 기비가 세워진 곳에서 500여m를 산속으로 더 올라가면 연자방아 하나가 남아 있어 이곳이 사람이 살았던 곳임을 알려줄 뿐이다. 13도의군 도총재라는 중책을 수임하면서도 일제의 눈을 피해 떠돌아야 했던 의암의 초라한 말년을 보여주는 현장이다. 의암은 이곳에서 74세에 죽음을 맞이해 빼앗긴 조국을 되찾겠다는 열망을 끝내 이루지 못했다.

“한민족이라 무료로 비석 관리”
한인 2세 정정복 씨 말에 숙연


의암과 여성의병장 윤희순의 유적은 서간도로 불리는 길림성과 요령성 일대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유적들을 찾아가려면 유적마다 버스로 대략 3시간 이상을 이동해야 하는 지역이다. 1896년과 1914년 두 차례에 걸친 서간도 망명 시 이동수단이 도보와 말이었음을 생각하면 너무나 먼 길이다.

의암의 묘지가 있던 길림성 신빈현 평정산의 의암기념공원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2003년 춘천시가 기념비를 세우고 공원을 조성했지만 관리조차 안 되고 있어 잡초가 무성하다. 국가 현충시설로 지정돼 있지만 사실상 우리 정부의 관리는 전무한 상황이다. 춘천문화원 류종수 원장이 500위안의 경비를 마련해 인근에 있는 주민에게 2년마다 방문해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조건으로 관리를 부탁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령성 환인형 보락보진에 건립된 윤희순 의병장의 노학당 기념비는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노학당 기념비의 관리도 중국정부나 우리 국가보훈처가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기념비 옆에 거주하는 한인 2세 정정복(78) 씨가 관리를 하고 있다.

“나도 한민족인데 여성의 몸으로 이역만리에서 독립운동을 위해 몸을 던진 훌륭한 분의 기념비가 방치돼서는 안 된다”며 “목숨이 붙어 있는 날까지는 관리하겠지만 그 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정정복 씨의 말에 일행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춘천문화원 류종수 원장은 정씨에게 격려금을 전달하고 관리를 계속 부탁했다. 단 한 번의 만세운동으로 국가 제일의 독립운동가로 추앙받는 유관순은 알지만 20여년의 긴 세월을 국외 항일운동에 전념하며 이국에서 유명을 달리한 의암 유인석과 여성의병장 윤희순을 알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이번 국외항일의병유적 탐방이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탐방단에 참여한 강원대학교 역사교육과 류승렬 교수는 “춘천에서의 선양사업만이 아니라 국외에 흩어져 있는 춘천의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이 후대들에게 교훈을 줄 수 있도록 관리와 답사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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