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가을에 피지만 춘천 서면 일대에 메밀꽃이 활짝 피었다는 기사를 며칠 전 본지에서 접했다. 메밀은 기상조건이 나쁘더라도 상당한 수확을 얻을 수 있어 흉년 때 굶주린 배를 채워주는 대표적인 구황작물(救荒作物) 중 하나였다. 메밀밭에 대한 우리의 감성이 기근 때의 먹거리에서 요즘처럼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오게 된 것은 이효석의 소설 때문이 아닌가 싶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 이효석은 밤길에 마주친 봉평의 메밀밭을 마치 한편의 시처럼 표현했다.

나도 언젠가는 소금을 흩뿌린 듯 한 메밀꽃 밭의 풍경을 흐븟한 달빛 아래에서 느껴보고 싶다.

메밀은 뫼(山)와 밀(小麥)의 합성어가 어원 변화를 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중세국어에 나타나는 형태가 ‘모밀’인 점을 보면 모져 있는 열매에서 유래한 ‘모밀’이 어형 변화를 거쳐 ‘메밀’로 굳어졌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메밀에 대한 옛 기록들을 살펴보면 13세기에 처음 집필된 《향약구급방》에서 ‘蕎麥/木麥’(교맥/모밀)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木麥’은 ‘蕎麥’에 대한 ‘모밀’의 차자(借字)표기이다. 이후로 《훈몽자회》, 《산림경제》,

《물명고》 등 여러 서적에 한자어 ‘蕎麥’과 한글 ’모밀’이 병기되어 온다. 19세기 초에 집필된 정약용의 《아언각비》에는 ‘毛密’(모밀)이라는 또 다른 차자표기가 발견되기도 한다. 비슷한 시기에 간행된 일본인들의 조선어 회화 학습서인 《交隣須知(교린수지)》에 ‘메밀/蕎’, 1880년 프랑스 선교사들이 편찬한 《한불자전》에 ‘매밀/蕎麥’과 ‘모밀/蕎’이 함께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쯤에 ‘메밀, 매밀’이 ‘모밀’과 혼용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최초의 식물명집인 《조선식물향명집(1937)》에도 ‘모밀’로 기록되었으나, 《한국식물명감(1963)》에서 ‘메밀’로 등재된 이후 현재 국가표준식물목록의 국명의 추천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북한에서도 ‘메밀’이라 부르고 지방에 따라 ‘메물’, ‘뫼밀’, ‘미밀’, ‘모멀’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명은 荞麦(qiáomài, 교맥), 일본명은 ソバ(소바)이다. 속명 Fagopyrum(파고피룸)은 라틴명 Fagus(너도밤나무)와 그리스명 pyros(밀, 곡물)의 합성어로 3능선(稜線)이 있는 모난 열매가 너도밤나무 열매와 비슷한 것에서 유래하였고, 종소명 esculentum(에스쿨렌툼)은 ‘식용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최동기 (식물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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