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이 제2의 고향인 대구 청년 정주호

대구 출신 청년 정주호(27)는 춘천을 ‘제2의 고향’이라 말한다. 2011년 스무 살 되던 해 곤충이 좋아 강원대를 선택해 춘천에 왔다.

평창올림픽, 약사천과 석사천을 비롯해 춘천에서 만난 곤충, 춘천미술관 작품들, 춘천의 어르신과 아이들…. 춘천은 청년 정주호에게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담뿍 안겨주었다.

아직은 이름 앞에 붙일 직함이 없지만, 이제 그는 그의 인생에서 새로운 3막을 시작한다. 다음달 강원대를 졸업하고 CJ제일제당에 취업해 춘천을 떠나기 때문이다. 그에게 춘천은 어떤 곳이었을까? 그리고 그를 대신해 춘천에 새로 오게 될 청년 누군가에게 전할 메시지는 무엇일까?

춘천은 어떻게 오게 되었나? 첫 느낌은 어땠는지, 지금과는 어떻게 다른지?

어릴 때부터 곤충을 너무 좋아해서 장래희망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강원대학교 곤충학술동아리(생명과학과 ‘BEETLES’)를 우연히 알게 되었고 곤충사료를 공부해 보자는 생각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2011년 겨울 춘천에 처음 도착했을 때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와는 다르게 너무 추웠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춘베리아(춘천+시베리아)’라고까지 하니까요. 지금은 춘천의 추위를 8년간이나 이겨내서인지 동계스포츠를 즐기고 있습니다. 3개월 근무한 평창올림픽 현장에서도 끄떡없었습니다.(하하)

‘춘베리아’처럼 강한 이미지로 다가 온 춘천을 오히려 즐기게 되었다는 그에게 춘천에서의 경험들을 물었다. 춘천 곳곳에서의 경험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들은 풍부했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덕분에 춘천도 한 층 격상되는 느낌이었다.

저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학교를 다니면서 겪은 경험들이 대부분이겠지요.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지칠 때면 구봉산에서 커피를 마시던 기억이 너무나 그리울 것 같습니다. 또 봄에 벚꽃놀이를 하러 가던 기억이 생생해요. 제 고향 대구도 두류공원에 벚꽃이 아름답게 피지만, 춘천 소양강댐과 공지천에 화려하게 핀 벚꽃을 구경하러 갈 때에는 중간고사 스트레스도 날아가 버렸으니까요. 곤충동아리를 하면서 춘천의 자연을 많이 보러 다녔던 것 같아요. 방동리, 봉명리, 구곡폭포, 집다리골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한숨 자고나면 종점에 도착했어요. 버스를 타던 시내와는 달리 도착한 곳의 자연은 대단함 그 자체였어요. 그 자연들 속에서 어우러져 해가 지는지도 모르고 채집을 다녔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82번 버스! 특히 방동리가 인상적이예요. 박사마을과 자연의 어우러짐에 제가 좋아하는 곤충들이 많았던 곳이었거든요. 팔호광장에서 김밥 천 원짜리 2개 사서 다녔어요. 서면 종점에 도착해서는 몇 시에 차 나가냐고 기사님께 여쭙고 알람 맞추며 채집했어요. 저에게 ‘82’라는 숫자는 행복으로 가는 출발점, 그리고 아침부터 하루 종일 행복할 수 있는 의미예요. 춘천에서 만들어진 저만의 82번이 되겠네요.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자연이 있다는 것이 가장 좋았습니다. 자연이 많다고 해서 문화가 뒤쳐지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 강원도는 깡촌이 아니라는 것을 8년 간 살면서 배웠다고 할까요?(하하)

춘천에서 청년기를 거치며 배운 것은 바로 혼자 일어서는 법이었어요. 19년을 부모님 곁에서 지냈던 저에게 춘천은 처음으로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큰 무대였거든요. 힘든 일도 많았고,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때도 무수히 많았죠. 이곳에서 일어나지 못하면 다른 곳도 마찬가지라는 자기 설득으로 하루에 한 발자국만 성장해보자! 이러한 힘을 주었던 곳이 춘천 카페들이었습니다. 프랜차이즈 큰 기업의 카페가 아닌 동네의 아기자기한 곳에서 해가 지는 것도 구경하고 사장님과 이야기도 해보며(사투리 때문에 초창기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고 고백), 사람과 친해지는 법도 배웠어요. 춘천은 저에게 ‘새로움’의 선물도 주었답니다. 2011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대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데 눈이 오는 거예요. 5월에 오는 눈은 처음 봤거든요. 다른 나라로 온 듯한 그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네요. 춘천의 자연과 사람들 그리고 그 어울림이 참 좋아요!

 

 

 

 

 

 

다양한 경험들 속에서 만난 사람과 자연, 그것들의 어울림, 그리고 배움을 이야기했다. 그가 보낸 8년이 춘천 사랑을 통한 성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1학년 수업을 들어갔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외로움과 새로움이 내성적인 저에게 독이 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무작정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경포대로 향했습니다. 맥주 1캔과 과자 한 봉을 사서 바다를 보며 고민했어요. 좋아하는 곤충과 전공으로 선택한 사료를 두고 진로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돌아온 후 곤충동아리 창업팀 사회적기업(Beetles)에 참여했습니다. 동아리에서 개최하는 전시회에서 어린 아이들부터 노년까지 작품 설명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농촌 어르신이 오시면 논에서 볼 수 있는 곤충 얘기를 해 드렸고, 과수원 경작하시는 분께는 사과에 달라붙는 벌레들을, 어린이들에게는 화려하고 큰 나비를 보여주고 체험부스를 추천해 주었어요. 이렇게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사람들 눈높이에 맞춰 얘기할 수 있는 세일즈와 마케팅 분야에 강점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곤충을 매개체로 아이들 그리고 어르신들과 어울릴 수 있었죠. 제가 좋아하는 것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운 거죠.

일과 사람이 어우러진 배움도 있습니다. 2018년 1월에서 3월까지 평창올림픽에서 근무할 때였어요. ‘go 평창 어플리케이션’ 유지 및 관리팀에서 근무를 했거든요. 개발자와 사용자 간 연결 역할을 담당했는데 다들 공무원이고 저만 대학생이었어요. 전문가들 집단에서 혼자만 학생이었기 때문에 위축되어서인지 일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과장님께서 나이는 어리지만 같은 직급이라며 자신감을 가지고 근무해 보라고 하셨어요. 나이만이 아닌 경험과 직급으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일로 KT에서도 근무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아! 과장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 중 기억에 새기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나만의 자료를 혼자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없어도 그 조직이 돌아갈 수 있게 동료들과 공유해야 한다.’ CJ 면접관이 제 단점에 대해 질문했을 때 이 조언을 답변으로 말씀드렸습니다. 경험으로 얻어 낸 살아있는 자기평가가 되어서인지 합격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특별한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그 누군가가 있다면?

우선 부모님께 춘천에서의 모습을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쓰러지지 않는 풀이 되려면 선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아버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 주신 어머니셨어요. 저의 인생 1막을 잘 키워주셨지요. 춘천에서 저를 알아봐 주신 교수님들은 제 인생의 2막을 열어주셨지요. 정주호라는 원석을 보석으로 만들어 주신 거죠. 학생들이 무언가를 해오게끔 칭찬해 주시고 아직 정해지지 않은 대학 생활에서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라고 조언해 주셨어요. 결국 제가 춘천에서 경험한 모든 것들을 저만의 이야기로 CJ에서 3막을 시작하게 해 주신 분들이시죠.

어려운 시기에 대기업에 취직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지?

춘천에서의 다양한 경험들이 사고하는 힘을 길러줬어요. 그 경험들을 혼자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도 배웠고요. 대구에서 자랐지만 춘천에서의 성장이 CJ 입사를 통해 전국으로 확대될 겁니다. 또한 바이오사업부에 근무하면서 해외사업을 통해 전 세계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다 큰 나무는 더 클 수 없지만 묘목은 클 미래만 있다고 합니다. “2018년 7월 ‘人터View ‘에 나온 그 ‘정주호’ 어떻게 됐나요”라고 독자가 물어왔을 때, 멈추지 않고 저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었으면 합니다.

그는 춘천 시민들, 특히 어르신들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시골에 갈 때 느꼈던 것인데 자연을 깨끗하게 보존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또 곤충채집하러 갈 때 전해 준 물 한 잔, 수영하고 가라는 말 한마디에 담긴 그 말씀! 손주처럼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춘천의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도 있었다. 그가 생활하고 사랑했던 춘천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과 춘천은 낭만의 도시니까 그 낭만을 꼭 찾아보라는 것.

“춘천에서 살게 될 그 어떤 이에게도 이곳에서 살게 된다면 정말 좋은 선택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곳곳에 너무나도 많은 보물들이 숨어 있거든요. 그 보물들을 찾아냈을 때 나만 간직하고 싶은 그 소중함과 남에게 공유해 주었을 때 그 뿌듯함을 느껴 본다면 ‘춘천에 잘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 겁니다. 저에게 그 보물들은 산, 들, 강, 곤충, 사람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이야기였습니다. 춘천이 좋고, 춘천 사람들이 참 좋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후 곰탕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2011년 겨울 부모님과 춘천에 처음 왔을 때 먹었다던 식당을 찾아 갔다. 점심시간이 지난 한적한 시간에 곰탕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아직은 이름 앞에 붙일 직함이 없는 그였지만, 춘천에서의 시작과 끝을 같은 곳에서 마무리 짓는 그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기대해 본다.

 

백종례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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