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정치는 없다.” 동네정치가 있어야 할 자리에 거대정당의 정치논리가 끼어드는 통에 지역을 위해 일할 정말 괜찮은 후보가 낙선하고, 시정질의나 조례제정 한 번 없는 무능한 후보들이 정당 브랜드 덕에 당선됐다는 것이다. 그러니 최소한 기초의회 수준에서는 정당공천을 하지 말자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는 하나만 생각한 단순논리다. 춘천의 비교적 잘 교육받은 유권자가 왜 후보의 자질을 면밀하게 파악하지 않고 정당명에 투표하는지, 소수정당 후보인 그를 왜 외면했는지, 무엇보다 정당공천을 하지 않으면 그런 문제가 없어질 것인지 등 그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면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유권자가 후보자 정보 없이 투표하는 이유는 그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의식 있고, 사회활동에 직접 앞장서고, 그래서 그 후보와 직접 대면한 경험까지 가진 유권자로 가득 찬 춘천이라면 걱정 없다. 하지만 그 후보가 출마한 선거구의 수천 유권자 중 그런 사람은 기껏해야 수백 명이다. 나머지 유권자들은 심각한 정보부족에 시달린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정보부족이 아니라 ‘낮은 정보획득 의욕’이다. 후보자 정보를 얻을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유권자가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다. 왜냐하면 시의원 후보자까지 관심을 가질 만큼 시간과 마음을 쓸 여유가 없는 것이다.

소수정당의 후보로 나온 죄 아닌 죄(?)를 지은 그가 외면당한 이유는 소수와 정당이라는 두 단어를 분해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은 정당문제인데, 그 괜찮은 후보가 그 정당에 속한 것은 그 역시 동네정치에서조차 정당이 중요하다고 믿어서가 아닐까? 그가 했다는 활동은 그가 그 정당에 걸맞은 이념과 철학을 가지고 참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정당은 동네정치에서도 쉽게 배제하면 안 된다. 바로 그처럼 좋은 후보를 키워내는 기제이기 때문이다.

소수의 문제는 소위 사표방지라는 측면과 보수적 유권자가 진보에 대해 갖는 편견 두 가지가 모두 관련된다. 유권자들이 사표를 방지하기 위해 표를 전략적으로 던지는 것은 이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게다가 보수적 성향이 강한 춘천에서 진보정당의 후보가 되는 것은 아마 적지 않은 편견과 맞닥뜨리는 일일 것이다.

이처럼 그가 낙선한 핵심 원인들은 정당공천과 연관은 있으되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보기 어렵다. 정당공천을 없애도 유권자들은 여전히 후보자들에 대해 무지한 채 투표할 것이다. 보수적 지역에서 출마한 진보후보들은 아무리 훌륭해도 낙선 가능성이 높을 것이며, 거대정당의 횡포는 줄어들지 몰라도 지역 토호세력의 발호로 대체될 수 있다. 그것이 지방의회 의원들을 뒤늦게 정당공천하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입시제도를 아무리 바꿔도 입시지옥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지역의원의 정당공천은 하든 안하든 부작용이 불가피하다. 근본원인을 개선할 획기적 방안이 없다면 정당공천은 불가피한 차선이다. 동네정치의 소멸, 필자도 안타깝다. 하지만 과잉 동네정치, 그건 더 큰 재앙일지 모른다.
 

김기석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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