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 무렵, 참나리 덩이뿌리 하나를 얻어 고향집 마당과 잇닿은 작은 동산에 심었었다. 세월을 따라 번지고 번진 참나리는 동산의 상당부분을 뒤덮어 현재 2천 여 포기는 족히 될 듯하다. 이른 봄에 올라오는 새싹을 바라보면 그 모습이 장관이다.

주근깨가 점점이 박힌 듯 붉은 색 꽃이 온 동산을 뒤덮는 모습을 상상해보지만 결과는 늘 기대에 못 미친다. 꽃이 필 무렵이면 주변의 무성한 나무들로 인해 그 세력이 많이 위축되기 때문이다. 나무들을 제거할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저 자연에 맡기기로 했다.

‘참나리’는 진짜(眞) 나리라는 의미다. ‘나리’는 나비처럼 아름다운 꽃을 뜻하거나 먹는 나물을 뜻하는 우리말로 본다. 옛날에는 중국에서 도입해 키우던 나리 종류를 ‘百合(백합)’ 또는 ‘나리, 당개나리’라 하고, 야생에서 자라던 종을 ‘개나리’로 불렀다.

《향약구급방》(1236)에 ‘百合(백합)/犬伊那里(가히나리, 또는 개나리)/犬乃里花(가히나리곶 또는 개나리곳)’, 《향약집섭방》(1433)>에 ‘百合/介伊日伊(개날이)’ 등 차자(借字) 표기가 참나리를 나타내는 것이다. 한글이 보급되면서 《구급간이방언해》(1489)에는 ‘百合/개나리’, 《동의보감》(1613)에는 ‘百合/개나리불휘’라는 한글표기가 나타난다. 18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야생하는 나리를 ‘’로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물명접인 《조선식물향명집》(1937)에서도 이를 따라 초본식물을 ‘참나리’, 물푸레나무과의 목본식물을 ‘개나리’로 표기했고, 이는 현재 국가표준식물목록의 추천명이기도 하다. 참고로, ‘개나리’ 나무에 대한 《조선식물향명집》의 표기가 일본의 영향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1820년대에 발간된 《물명고》에 ‘개나리나모’라는 표기가 이미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명백한 잘못이다.

북한에서도 ‘참나리’라 부르고, 지방에 따라 아직도 ‘개나리’라 부르는 곳이 상당하다. ‘나리’나 ‘호랭이꽃’으로 부르는 곳도 있다. 중국명은 ‘卷丹(juǎndān)’으로 말리면서 피는 붉은 화피(花被)을 묘사한 것이고, 일본명 ‘オニユリ(鬼百合 오니유리)’는 검은 반점이 있는 붉은 꽃을 괴물에 빗댄 것이다. 속명 Lilium(릴리움)은 라틴어 이름이며, 흰색을 의미하는 켈트어의 li, 그리스어의 leirion에서 어원을 두고 백합속을 일컬으며, 종소명 lancifolium(란키폴리움)은 lancea(창)과 folium(잎)의 합성어로 ‘뾰족한 잎의’라는 의미다.

 

최동기 (식물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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