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일자리에 관련된 뉴스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사화돼 신문의 한 귀퉁이를 장식하고 있다. 청년 실업률이 어떻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를 어떻게 해야 하며, 주 52시간 근무제가 어떻고, 시간당 최저임금은 얼마여야 하며,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하는 이유와 인상했을 때의 부작용은 무엇인가 등 그 주제도 다양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와 같은 뉴스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진 적은 없는 듯하다. 이는 그만큼 일자리가 국민의 행복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대의 복지는 일을 통해 주어진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하고, 사람과의 관계가 이루어지기도 하며, 경제적 삶을 가능케 하고,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일과 관련한 영역에 장애인도 예외일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일과 직업의 문제는 장애인에게 더 절실한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능력우선주의, 최고만이 대접 받는 적자생존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장애인의 일자리 문제를 당연시하기 또한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복지사회로 나가고자 한다면 일과 직업에 있어 장애인을 빼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장애인에게는 장애 때문에 할 수 없고 될 수 없다고 하는 거대한 사회적 장벽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회라면 환경과 제도를 바꾸어서라도 장애인으로 하여금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어야 할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본다.

장애인 문제는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 문제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자기의 능력에 맞는 직업을 찾아 일을 하게 된다면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은 더 이상 장애인일 수 없다는 것이 평소의 생각이다.

그만큼 직업문제는 일반 국민에게 최대의 복지로 가는 길이기도 하지만 장애인에게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문제라고 본다.

나는 그 나라가 복지국가인지 아닌지는 복지시설이 충분한가, 또는 충분한 복지예산으로 복지혜택이 적절하게 주어지는가를 보기보다는 장애인이 얼마나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아 능력을 발휘하고 살 수 있는 사회인가를 복지사회의 척도로 삼는다.

특수학교에서 장애인 교사를 채용하기를 꺼려한다든지 장애인복지시설이나 복지단체, 복지관의 수십 수백 명 직원 중에서 장애인 직원을 찾아 볼 수 없다면 그 부조리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단지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건강한 이들과 그 가족만을 위한 복지인 것은 아닐까?

요즘 우리는 워라벨(Work-life balance)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고 있다. 이 사회가 일과 생활의 균형이 잡힐 때 행복하게 된다는 말일 것이다. 나는 여기에 더해 ‘장애인도 함께’라고 말하고 싶다. 장애인들이여, 꿋꿋하여라! 결코 꿈과 희망의 줄을 놓지 말라! 그리고 시민들이여, 장애인을 마음으로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따뜻한 이웃이 되어주시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김호경 (함께하는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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