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리는 ‘가족’은 ‘변함없이 늘 포근한 휴식처(sweet home)’인 듯싶다. 따라서 가족을 변화하는 실체로 받아들이기에는 아무래도 불편함이 앞선다. 가족복지론 수업은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을 안고 시작하는 수업이기도 하다. 그런데 올해 수업은 조금 특별하다. 이토록 무더운 여름을 일찍이 경험해 본 적도 없지만, 지금처럼 다양한 학생들을 만난 적도 드물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건강가정기본법의 취지에 동의하세요?” 이렇게 훅 들어오면 닳고 닳은 가족쟁이 선생도 몹시 곤란하다. 특히나 이 법안에 대해서는.

사실은 이렇다. 건강가정기본법의 배경은 가족의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제기되었던 2000년대 초반이다. 2002년 당시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합계 출산율 2002년 기준 1.17명), 이혼율 세계 2위(2002년 기준 결혼 대비 이혼율 47.4%)라는 국가 간 비교지표가 발표되면서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충격의 도가니에 휩싸이게 된다. 여기에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기다렸다는 듯이, 생계를 비관한 가족동반자살이나 가족 간 폭력갈등 같은 기사들을 연일 보도함으로써 가족의 총체적 위기를 기정사실화하기도 한다.

서구 선진 복지국가들은 이미 1960년대 가족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슈화한 경험이 있다. 이들 국가들의 공통점은 개별 가족에게 더 이상의 부담을 지울 수 없다는 선언의 의미를 갖는다. 특히 선진 복지국가에서 가족의 변화는 국가지원체계에 도전을 가져옴으로써 정치적 의제가 되었다. 가족이 정치적 의제가 된 영역은 일하는 부모, 저소득 가족, 한부모가족, 아동의 권리 등이었다(Gouthier, 1996).

우리나라의 건강가정기본법은 2000년대 가족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면서 국가가 가족의 부담을 분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접근방식에 있어 서구 복지국가와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돌봄의 사회화와 일=가족 양립이라는 가족문제에 집중한 반면, 우리나라는 ‘건강한’ 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서비스 제공의 법적기반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는 점이다. 이 법이 가족의 돌봄지원이나 가족 구성원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아닌 개별가족에 대한 서비스와 상담, 교육 등을 제공하는 시스템의 도입을 목적으로 삼았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이 법은 당연히 입안과정에서부터 사회적 비판에 직면하는 등 격렬한 찬반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법에서 논란의 핵심은 ‘건강가정’이라는 모호한 개념일 것이다. ‘무엇이 건강한 가정인가?’ ‘어떠한 가정이 건강한 가정인가?’ 그렇다면, ‘건강하지 않은 가정은 어떤 가정인가?’ 결국 이 법은 보호를 요하는 가정에 대한 복지지원 중심의 서비스 시스템을 핵심으로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법은 가족의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어쨌거나 종강이다. 못내 아쉬운 선생은 건강가정기본법 제7조를 학생들과 소리 내어 읽어본다. “가족 구성원 모두는 가족해체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라? 건강가족기본법의 주목적은 ‘가족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아니었던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양진운 (강원대 EPLC 사무처장/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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