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는 지금 직접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해보고자 하는 다양한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많은 지자체가 주민참여예산제도가 명실상부하게 기능하도록 노력하고 있는가 하면 제주지역 같은 경우에는 읍·면·동장 직선제 등을 포함한 자기결정권 강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시민정부’를 표방한 춘천에서도 지난달 31일에 춘천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하여 개최한 ‘사회혁신의 과제와 시민의 역할’이라는 행사가 열려 시민이 지방자치의 주도권을 잡아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함께 논의했다. 그리고 나흘 뒤인 지난 4일에는 춘천시정부가 출범시킨 ‘행복한 시민정부 준비위원회’에서 개최한 ‘행복한 시민포럼’이 열렸다. 포럼 이전에 다양한 시민들로부터 수집한 의제를 공개하면서 이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이날 모인 시민들이 분과를 나누어 함께 찾아 본 행사였다. 토론 끝에 모아진 다양한 제안은 행사를 주최한 준비위원회를 통해 춘천시장에 전달됐다.

시민이 주권자인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가 필수적이고 지방자치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위로부터의 명령하달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발의와 결정이 필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춘천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민발의 모임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이 생각하고 제안한 것을 자치정부가 받아 행정으로 실현한다면 시민을 위한 정치는 절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의 역사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나서 이듬해 실현되었으므로 그 역사는 이미 반백년을 훨씬 넘을 정도로 짧지 않지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민주주의가 꺾이는 시기에는 어김없이 지방자치도 수난을 겪었다. 군사정권 시절이었던 3·4·5공화국 시절에 주민자치라는 개념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군인정권의 말기라 할 수 있는 1991년 지방의회 의원 선거가 부활되고 1995년부터는 광역 및 기초단체장 선거도 다시 살아났다.

자치선거가 부활하기 했지만 지방자치는 지금까지 사실상 형식에 그쳤다고 평가해야 할 정도로 시민의 주도권 행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전의 관선시장이 새로 부활한 민선시장에 당선되는 것으로 시작한 춘천의 지방자치는 그 이후에도 모두 공무원 출신 후보가 시장이 됨으로써 관선의 분위기가 오래 지속되었다. 민선시장 제도가 부활되고 일곱 번 만에 처음으로 공무원 경험이 없는 사람이 시장에 당선됨으로써 전기를 마련했다.

사람만 바뀌고 문화나 의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지방자치는 형식만 있고 알맹이는 없는 공염불에 불과할 것인데, 지금 춘천에서는 이와 다른 분위기로 시작이 좋아 보인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처음으로 춘천시청에 백 명 가까운 시민이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시정부가 해주기를 바라는 정책을 제안했다. 시장이 테이블에 같이 앉아 이를 듣고 함께 논의도 했다. 관이 기획하고 결정하면 시민은 그저 따르거나 혜택을 입기만 하던 그간의 지방자치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좋은 조짐이 보이긴 하지만 우려도 있다. 기대가 크면 좌절도 큰 법이어서 정치 효능감을 맛보지 못하면 시민들은 시정부의 어떤 시도도 외면해버릴 수 있어서다.
시정부가 제안을 듣기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라도 더 실현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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