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k칼럼] 얼마나 더 버티고 아파야 할까
[Desk칼럼] 얼마나 더 버티고 아파야 할까
  • 춘천사람들
  • 승인 2018.08.08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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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큰 아이를 군에 입대시키고 왔다. “이왕 맞을 매라면 빨리 맞는 게 낫다”든지 “더 늦게 가면 개마고원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며 농을 주고받았지만, 막상 입영식을 지켜보고 헤어지려니 짠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자식을 군에 보내는 부모들의 심정이야 다 비슷하지 않겠는가?

군복무를 하는 당사자나 군에 자식을 보내는 부모들의 마음이 흔쾌하지 않은 것은 ‘나라를 지킨다’는 그 당위성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간 저질러졌던 수많은 ‘의문사’와 인권유린을 목도하고, 국가와 국민이 아니라 정권유지를 위해 군이 이용됐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의 ‘계엄령 문건’ 논란을 보면 한편으로는 믿기지 않고 한편으로는 분노감과 함께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군부독재시절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이 시대에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 그 엄청난 무모성과 시대착오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박근혜·최순실 정권이니까 가능했을 것이다. 박근혜의 청와대가 마지막까지 탄핵소추안이 기각될 것이라고 믿었다니 그런 음모의 실체는 수사와 재판이 아니더라도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는 명백한 친위쿠데타 모의요, 내란음모다. 음모의 핵심은 당연하게도 청와대와 국방부, 그리고 기무사로 이어졌을 것이다. 자유한국당 몇몇 ‘진박’ 의원들의 관련성도 충분히 의심해볼 여지가 있다. 밝혀진다면 정당해산 요건을 충족하고도 남음이 있다.

지난 6일, 국방부는 기무사 해체를 선언하고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창설준비단을 발족시켰다. 이로써 1991년 보안사에서 기무사로 이름이 바뀐 지 27년 만에 기무사는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게 됐다. 이름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중립 의무’와 ‘민간인 사찰권한 오남용 금지’ 조항을 담은 ‘직무수행 기본원칙’을 신설한다는 방침이다. 또, 부당한 지시에 이의를 제기하고 거부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키로 했다고 한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름을 바꾸고, 이런저런 법령을 고치고, 인적 청산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기에 이번 기무사 ‘해편(解編)’ 또한 그리 미덥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정치군인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고, 그것은 또 군의 권력이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제에 기무사 해체와 계엄령 문건 책임자 처벌의 수준을 넘어 근본적인 국방개혁과 군대의 체질개선을 이뤄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시인 이산하는 그의 산사기행 《피었으므로, 진다》에서 “새로운 것이 오지 않는 것, 그게 진짜 위기다…세상은 턱걸이처럼 버티는 것이다. 버텨야 새로운 것이 온다. 떨어지는 것은 결론이고 버티는 것은 과정이다. 그래서 결론은 슬픈 것이고 과정은 아픈 것이다. 아파야 낡은 것이 가고, 한 번 더 아파야 새로운 것이 온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새로운 것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얼마만큼 더 버티고 얼마만큼 더 아파야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

“귀하가 구하려는 나라에는 누가 사는 거요? 백정은 살 수 있소? 노비는 살 수 있소?”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최유진으로 분한 이병헌의 대사다. 이 말이 지금 이 시점에서도 그리 이상하게 들리지 않으니 그저 참담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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