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교동성당 앞 좁은 골목길 주택가. 그곳에서 무더위에도 아랑곳없이 할아버지를 모시고 어린 조카 셋을 거두며 사는 청년 김기석(36) 씨.

무더위 여름도 조카와 할아버지를 보면 힘이 난다는 김기석씨.

그는 부모가 이혼하면서 다섯 살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아야 했다. 중학교 때 전국체전에 참가하느라 집을 며칠 비운 사이 할머니가 지병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는데, 그것이 할머니의 마지막이 됐다. 부모 대신 키워준 할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은 내내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

“행복한 어린 시절을 만들어준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이 아직도 많이 안타까워요. 할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해요. 혼자 계신 할아버지를 볼 때도 마음 아프죠.”

그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초등학생인 조카가 공부방에 다녀왔다며 삼촌에게 반갑게 인사를 한다. 1년 전부터 누나의 사정으로 조카와 함께 살게 된 그는 일이 많아져 힘들기는 하지만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 때보다 활기가 넘쳐서 좋다. 올망졸망한 조카들이 차려준 밥을 잘 먹을 때는 정말 행복하다고. 중학교 때 자전거 사고로 머리를 다친 후 후유증이 생겨 지금도 병원을 다니고 있지만, 이틀에 한 번 정도 타일 공사장에서 일하며 평상시에는 파지도 모은다. 결혼에 대해 조심스레 물으니 몸도 아프고 할아버지와 조카들 때문에 엄두를 못 내지만 솔직히 왜 마음이 없겠냐며 수줍게 웃는다.

“한 동네에서 30년을 살다보니 가족같이 지내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텃밭에서 난 농산물 챙겨주시는 분들도 있고 어떻게 아셨는지 가끔 필요한 가재도구를 놓고 가시는 분도 있어요. 사는 집이 언덕 위 골목이라 다니기 수월한 것은 아니지만 정이 많이 든 이 동네를 떠나고 싶진 않아요. 소원이 있다면 할아버지가 좀 더 오래 사시는 것이랄까.”

정부에서 기초생활수급자에 지급하는 생활비를 받고 있지만 그것보다 일을 해서 직접 벌어 쓰는 것이 더 당당하고 좋다는 김씨. 동네사람들에게 항상 밝고 상냥하게 인사하는 사람으로 평판이 자자한 그다. 할아버지와 조카를 위해 더 열심히 살고 싶다는 그가 이 폭염을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

 

유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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