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길’ 최초 기획자 임병로 ‘춘천물레길’ 대표

7월 햇살의 기세가 여전히 등등한 오후 5시. 오늘의 인터뷰이와 마주 했다. 물위, 정확히 의암호에 떠있는 카누 안이었다. ‘춘천물레길’ 임병로(40·우두동) 대표를 만났기 때문이다. 마침 그가 송암동 선착장에서 사농동 고구마섬까지 카누체험팀을 직접 인솔했다. 두 시간의 여정이 물처럼 흘렀다. 세상과 단절된 듯 물 밖의 세상을 바라보며 간간히 무겁기도 했던 이야기들이 물소리와 함께 마음속에 고였다. 낭만적인 물위의 이야기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임 대표는 서울 출생이다. 경기도 안양에서 성장하고 전기전자 전공으로 강원대에서 LED조명연구를 하며 춘천과 인연이 됐다. 연구용역 사업과 대학원 과정을 동시에 진행하다 캐나다에서 카누제작을 배운 대학원 선배로부터 처음 카누를 접했다. 자연을 좋아하고 캠핑을 즐겼던 그에게 카누는 춘천의 호수와 함께 첫사랑처럼 다가왔다. 2009년 사업설계를 하고 2010년에 배를 한 대 제작하여 ‘춘천국제월드레저대회’ 기업관에 출품했다. 때를 맞춘 2011년 ‘춘천물레길개발 체험관광공모사업’에 응모했다. 기회를 잡고 2012년 춘천시와 첫 협약을 맺어 그해 7월부터 5명의 직원과 함께 물레길을 열었다. 카누제작 공장 설립과 인건비 등 연구용역사업 수익으로 3년간 12억을 물레길 운영에 투자했다. 투잡(Two job)이 아니라 일방적 투자였다. 2012년 한국관광공사 주최 ‘창조관광사업’에서 우수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공사 측의 전폭적인 홍보지원 효과로 관광객 유입이 늘어나면서 2014년부터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직원은 15명으로 늘어났다. 제주 올레길에서 착안하여 2009년 처음 ‘물레길’ 상표를 등록했다. 그가 ‘물레길’ 명명자인 셈이다. ‘올레길’, ‘둘레길’은 당시 전국적인 걷기 열품의 상징이었다.

“땅위만 걸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물길을 만들어 자유롭게 다니도록 하고 싶었어요. 호수는 모두의 자원이니까요. 누구나 ‘물레길’이란 말을 사용하게 공공재로 상표를 등록했죠.”

상업성보다 공공성을 우선하는 그의 의도가 참으로 마땅하면서도 진솔한 도리로 느껴졌다. 임 대표의 업체는 ‘춘천물레길’로 등록했다. 2004년 강남동에 둥지를 틀며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만 보기에는 아쉬움이 꿈틀거렸다. ‘보는 물’이 아니라 ‘노는 물’. ‘무서운 물’이 아니라 ‘친근하고 익숙한 물’로 되돌려주고 싶었다. 호수를 사랑한 그가 호수를 닮은 춘천사람이 되어가는 여정이었을 터다.

“물 밖과 물속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다르거든요. 물 밖의 세상이 사람들이 있는 세상이라면 물 위의 세상은 사람들이 없는 세상이잖아요. 그 지점이 사람들에게 치유의 기회를 주겠다 싶었어요. 2012년부터 에코힐링 바람이 불고 물이 주는 치유효과도 부각되면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죠. 운이 좋았어요”

시종일관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그다. 기회는 늘 준비하고 기다리는 자의 몫이란 걸, 운은 결국 각고의 준비와 기다림이란 것을 일찍이 알았던 것이다. 그는 건물임대와 사업권 인허가까지가 시의 역할 아니겠느냐며 천혜의 자원을 개발하고 마땅한 용도를 찾지 못하는 유휴공간을 재생시켜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은 사업자의 몫이라고 말한다. 경우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공익사업에 지원이 적어 무언가를 이루어 내기 힘들다는 투덜거림들에 따끔한 경종과 교훈이 될 만한 자세다.

공유재산 임대법에 따른 임대절차와 협약을 거치며 시는 사업성공 여부를 반신반의의 시선으로 임 대표를 지켜봤단다. 시 차원에서 레저산업 육성노력을 해왔지만 송암에는 여전히 인적이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 생명을 불어넣은 일등공신이 아니냐는 칭찬 반 질문 반의 도발에 그는 얼버무리듯 수줍게 인정하며 뿌듯한 자긍심을 내비쳤다.

“사업 시작 당시 월 관광객이 100명 남짓이었죠. 매출이라 말하기에 민망한 수입은 200~300만원도 안됐죠. 홍보팀을 꾸리고 직원들의 능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했어요. 자금줄이던 연구용역사업 직원들도 투입이 되었죠. 파워블로거나 SNS를 공격적으로 활용했어요. 직원이 늘고 그들의 세대가 바뀌는 동안까지 함께 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어요. 하지만 2015년 춘천시는 무동력 존 구성정책으로 업체들을 무분별하게 유입시켰어요. 건강한 경쟁구도가 아니다 싶었죠. 카누문화 융성과 상생은 제가 추구하는 바였어요. 협의를 통해 중도, 의암호물레길이 생겨났고 건강하게 상생하고 있어요.”

사업을 꾸려가는 한편 그는 처음 카누를 접하게 해 준 대학원 선배와 의기투합하여 봉사활동과 행복문화전파를 목적으로 비영리 ‘사단법인 물레길’을 설립했다. 2011년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사단법인설립과 동시에 체계적인 사회환원사업을 했다. 결손가정, GP근무장병, 지역아동센터, 외국인교환학생 등을 대상으로 무료카누체험행사를 진행했고 수익금의 일부를 (사)물레길 이름으로 굿네이버스와 지역공익단체에 기부해왔다. 2015년 하반기 (사)물레길에 새로운 이사진들이 영입되면서 ‘(사)물길로’로 법인명이 변경됐고 운영에 갈등이 생기며 부지불식간에 그는 신임이사진에 의해 해임결의 되었다. 근거자료를 제시하며 경위를 설명하는 그의 억양에는 억울함과 고단함이 짙었다. 2016년 춘천시가 새로운 물레길 운영업체로 (사)물길로를 허가하는 과정에서 인근 동종업체 동의와 하천법을 무시했고, 기존사업장과 동일주소에 사업을 허가하는 불법을 자행했다며 시에 이의를 제기했단다. 그러나 (사)물길로 측 신임이사진은 당시 시장·공무원 선후배 인맥을 공공연히 거론하며 허가를 자신했다. 시는 공익이 우선이라며 ‘작은 손해는 감수해야 한다’, ‘그간 돈 좀 벌었으니 경쟁을 붙여야겠다’는 등 납득할 수 없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는 어떤 형태로든 사회환원이 동반되도록 시도했다. 카누를 타면 천 원에 자전거를 대여해주고 천 원 상품권을 추가로 얹어 주어 춘천에서 소비를 유도했다. 그조차도 시 추진사업(자전거)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중단됐다. 1년 단위 임대계약이 진행되다 올 초에 맺은 6개월 계약마저 시로부터 기간만료를 사유로 사업정리 통보를 받았다. 도시공사로부터 지난 6월 30일자로 계약만료 사업중지 공문을 받은 것이다. 올해 레저대회에서 ‘(사)물길로’가 킹카누대회를 주최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고 한다. 그가 세운 사단법인의 새 이사진들이 그를 해임하고 추진한 일이라고 한다. 불모지였던 카누사업으로 지역 관광사업의 새 물꼬를 튼 공로자가 오히려 쫓겨나게 생긴 꼴이다.

“일방적인 통보에 시와의 협약은 무용지물인지 질문했죠. 이전 시장과의 협약에 대해 현 시장 체제는 책임이 없다고 말했어요. 노점상을 단속함에도 절차와 단계가 있잖아요. 직원과 그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업체를 폐업시키는 이유치고는 명분도 근거도 부족했어요. 부서를 바꿔가며 답변을 회피하더군요.”

기회와 과정과 결과 모두에 평등과 공정함과 정의로움의 문제가 느껴졌다. 지역기업 육성을 지원해야 할 지자체에서 폐업을 권고할 때는 사유가 더없이 정당하고 무거워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관행적으로 이루어졌던 연고주의의 폐해로 인한 것은 아닌지 투명하고 공정하게 가려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육성과 지원보다 견제와 제재를 더 많이 감당했구나 싶어 춘천을 떠나고 싶지 않느냐는 우문에 돌아온 솔직한 그의 속내가 심금을 울렸다.

“15년차 춘천살이에 저는 춘천사람인줄 알았어요.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보니 여전히 외지인이었더라구요.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시를 방문해도 사람을 만나는 일부터 인맥의 벽에 부딪혔어요. 왜 외지인에게 그런 사업권을 주느냐는 소리도 들었죠. 심지어 외지인이 춘천서 수십억씩 벌어 간다는 소리도 들리더군요. 사실무근이라 일일이 대응하지 않아요. 하지만 전 춘천에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거구요. 호수가 좋아 눌러앉은걸요. 행정과 정책과 제도가 자꾸 발목을 잡으며 직원이 줄었지만, 여전히 동고동락하는 춘천사람이 10여명이에요. 함께 나이들고, 호수를 지키고 있죠. 우리 직원들은 이 직장이 돈만 버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관광에 보탬이 되고 춘천을 알린다는 자긍심이 크죠. 그들은 이제 실직하면 전직이 애매한 나이가 됐어요. 제가 포기하지 않는 유일한 이유구요. 부당함에 뒷걸음치지 않을 겁니다.”

고단함을 내려놓지 못하는 임 대표의 눈은 여전히 꿈을 꾼다. 베네치아 벤치마킹을 통해 관광형 수상택시로 춘천관광 인프라 구축과 일자리 창출, 지역상품권 발행, 지역경제 활성 방안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인터뷰를 끝낼 무렵 그가 인솔했던 단체체험단에서 야간 캠프에 동참을 권하자 그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수줍게 말한다.

“얼마 전 둘째가 태어났어요. 밤엔 아내랑 아이들에게 가려구요.”

춘천에 인구가 또 한 명 늘었다. 그도, 그의 아들도 춘천사람이다.

 

 

 

임희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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