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무더위와 가뭄에 누구보다 가슴이 타들어가는 이들이 농부들일 것이다. 애호박 한 박스에 1~2천원 밖에 안 하니 산지 폐기할 수밖에 없는 그 심정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우리 별빛협업농장(바람꽃)도 감자를 수확한 1천5백평 밭에 들깨를 심었다. 내리쬐는 햇볕과 메마른 가뭄에 잎이 타들어가고 말라죽어가고 있다. 농작물 하나하나를 자식 키우는 심정으로 키우는 농부들의 마음도 타들어가는 매서운 여름이다.

일본이 한 산촌유학 학교 정문에 세워진 간판. ‘농(農)의 마음으로 아이(人)를 키운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얼마 전 일본의 산촌유학 현장 사례조사를 하러 다녀왔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는 일본의 산촌유학, 10여년 된 한국의 농촌유학.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따라가야 할까. 지방자치·교육자치의 체계, 지자체의 전폭적인 지원, 지속가능하게 다듬어진 시스템, 교육위원회와 학교의 태도….

우리와는 많이 다른 일본의 산촌유학 현장이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내 발걸음과 눈을 멈추게 한 것은 산촌유학생들이 다니는 학교 정문에 (사)소다테루카이 산촌유학센터에서 세워놓은 허름한 간판이었다. ‘농(農)의 마음으로 아이(人)를 키운다.’ 아! 탄식이 절로 나왔다. ‘이것이었구나!’ 일본은 우리보다 농촌이 훨씬 빨리 노령화되었고 시골의 작은학교 통폐합정책도 이미 예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그 속에서 산촌유학이 50여 년간 유지되어 올 수 있었던 것은 농(農)의 마음으로 아이를 키우겠다는, 그리고 그것을 잊지 않겠다는 결연한 선언이고 다짐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윤요왕 (별빛산골교육센터 대표)

농사와 아이를 키우는 일은 많이 닮아있다.

귀농해서 농사를 배우기 시작할 때 내가 처음으로 지은 농작물은 고추였다. 여전히 추운 겨울인 1월 말 고추씨를 사서 싹을 틔우고 90여 일간 애지중지 키워 밭에 옮겨 심는다. 그리고 좋은 퇴비를 뿌리고 밭갈이를 한 좋은 밭에 옮겨 심은 후에는 순을 치고 풀을 뽑아주고 쓰러지지 않도록 지주대와 줄을 매고, 고추가 빨갛게 되면 수확을 해서 햇볕에 말리고 시집을 보낸다. 정말 1년 고추농사가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과 닮아있다. 다 똑같아 보이지만 하나하나가 다 다르게 커간다. 또 농부의 손길만으로는 안 된다. 하늘과 땅, 바람과 작은 곤충들까지 고추가 튼실하게 열매 맺기까지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간섭도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지 않을까? 비료와 농약만으로 아이들을 키우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았다. 일본의 산촌유학이 농(農)의 마음이 아니라 단순 생산자, 도시 부모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교육서비스로 전락했다면 과연 50여년을 이어 내려올 수 없었을 것이다.

때론 사랑과 정성으로 살피고 보듬어주고 때론 무심한 듯 내버려두기도 하고 필요한 게 무엇인지 절박한 게 무엇인지 알아차려 제공해 주고…. 어느 날 밭에 가보면 쑥 커있고 또 어떤 때는 무엇이 부족해 힘들어 하고 있고. 내 맘대로만 커주지 않는 고추가 야속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튼실하게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걸 보며 감동 먹을 때도 있고. 모든 농부는 상품이 아니라 내 자식같은 생각으로 농사를 짓는다. 모든 부모 또한 돈 잘 벌고 출세하는 좋은 상품이 아니라 하나의 온전한 인격을 갖춘 건강한 사회인으로 커가길 바랄 것이다. 비록 농(農)의 마음이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을 생산하도록 강요받는 시대로 전락했을지라도 땀 흘리고 가꾸며 농사짓는 그 순간만큼은 부모의 마음이 된다. 오늘도 시골로 내려온 별빛의 아이들이 농부의 마음을 가진 마을 속에서 행복하게, 때론 힘겹지만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윤요왕 (별빛산골교육센터 대표)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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