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어린이와 함께 살고 있는 백승관 아동문학가

인터뷰를 하러 작가의 집을 방문했을 때에도 극구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자랑할 것도 없고 <<춘천사람들>>에게 알릴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있는 그대로 춘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기자의 말에 살아 온 이야기, 살고 있는 이야기, 살아낼 이야기를 풀어냈다.

백승관 아동문학가
백승관 아동문학가

살아 온 이야기

4살 때 6·25전쟁 겪고 제대로 학교도 못 다닐 정도로 나라와 마을 사정이 엉망이었다. 화천군 거례리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책을 너무나 좋아했는데 읽을 책이 없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암굴왕(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빌려 보았다. 책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너무 기뻤고 책 내용도 재미있었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처음 빌려 읽은 책 제목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여름 밤나무 밑에서, 참외·수박 밭 원두막에서 뒹굴며 읽었던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저 책 읽는 것이 너무 좋았다. 밭에서 일하는 아버지 옆에서 놀며 책도 보고 했던 것이 참 좋았단다.

시골 장에 가셨던 할머니께서 《장화홍련전》, 《심청전》 등 옛날이야기 책을 한가득 사오셨다. 한글을 몰랐던 할머니에게 등잔불 밑에서 읽어드리면 다 듣고 주무셨다. 장에서 사다주신 책값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동네 할머니들이 밤마실로 그의 집으로 모이면 그는 동화를 구연했다. 멍석을 깔고 삶은 옥수수·감자를 가운데에 두고 할머니들이 빙 둘러앉아 이야기를 들으며 울고 웃었다. 다 읽고 나면 시렁이나 광에 숨겨 놓았던 과줄도 꺼내 주고 참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마을에서 귀한 동화 구연 어린이였다. 시골에서 살아온 그 시간을 통해 책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는 춘천교육대학의 교수님을 통해서였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동심으로 돌아가야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 그 말씀에 공감하여 아이들과 함께 하며 제대로 가르치고 싶어서 고민한 방법이 동화책을 많이 읽는 거였다. 대학생 시절에 어렴풋이 동화 작가를 꿈꾸었던 것 같다고 한다. 동해 거진에 있는 거성초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고 동화 쓰는 연습을 하며 여러 곳의 신춘문예에 응모하기도 했다.

《현대문학》 문예지에 동화 “몽당연필”이 1회 당선됐으나 2회 추천이 불발돼 작가 등단으로 이어지지 못 했다. 안데르센 같은 동화작가가 되고 싶었기에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2009년 퇴직 후 춘천 남부노인복지관 문예반에 들어가 창작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그런 노력이 추천으로 이어졌고 《한국문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2015년 수필가로 등단하게 되었다. 2017년에는 《아동문학세상》에 그의 동화가 당선돼 꿈에 그리던 동화 작가 되었다.

살고 있는 이야기

글 쓰는 것 어렵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단호하게 두 번씩이나 반복한다. “어렵지!” 그런데 왜 쓰냐는 우문에 껄껄 웃으며 “좋으니까 쓰지! 좋으니 쓰고, 쓰고 싶어서 쓰지!” 한다. 살아 온 이야기를 들으니 추억으로 남겨진 풍경에 간절한 바람까지 더해져 먹먹해졌다. 요즘은 책이 어지러울 정도로 넘쳐난다. 읽을 거리도, 볼 거리도, 생각할 거리도 많아 귀하지 않은 세상이다. 요즘 동화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길까? 작가가 안데르센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란다. 《인어공주》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바다와 사람, 인어를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기에 작가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참 좋다고 한다. 동화는 아이들에게 상상과 꿈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린 적이 없다. 그래서 생활동화보다 과학동화처럼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있다. 물론 공부가 많이 필요하기에 힘들지만 흥미와 상상을 버무려 꿈을 찾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런 바람으로 나온 첫 작품이 《달을 따러 간 아이들》이다. 보름달을 따서 축구 시합을 하려고 플라즈마 우주 왕복선을 타는 아이들.

요즘 인문고등학교에 문학반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고교 동창에게 제의를 했다고 한다. 문학을 좋아하는 후배를 양성해 보는 것은 어떠냐고. 그래서 동문들인 소설가, 시인, 교수들이 모여 인문고등학교 문인회 창단을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 춘천을 문화특별시로 추진한다는 발표가 기사화 됐다. 문화·예술이 일자리가 되는 춘천으로 성장하고 춘천 이야기가 지역경제 에너지원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문학에 대한 관심이 너무 저조합니다. 그럴 환경도 기회도 없었던 거지요. 문학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의 꿈이 제대로 키워졌으면 합니다.”

‘달을 따러 간 아이들’과 함께 하고, 아직 장성하지 않았지만 문학을 꿈꾸는 미래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음이 느껴졌다. 어린 시절 책이 너무 좋아 어렵게 구해 읽었고 여러 번 등단에 실패하며 더욱 간절했을 그 소중한 꿈이 가슴에 있기에 자라고 있는 아이들까지 생각하는 마음이 가능했던 것 아닐까 싶다.

 

살아낼 이야기

글 쓰는 게 너무 좋아 계속 글을 쓰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그. 앞으로의 이야기에 상상과 꿈이 마음껏 그려졌으면 한다. 인터뷰하는 내내 동그란 눈을 반짝이며 맴도는 9살짜리 손주가 있었다. 인터뷰가 무엇인지, 왜 하는지, 할아버지는 왜 나랑 안 놀아주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잠깐 쉬는 짬에 손주에게 말을 걸었다. 책을 좋아한단다. 그런데 방학이라 책보다 TV 만화를 더 많이 봤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되돌아오는 답. “책은 멈춰있고, TV는 움직이니까요.” 신기하고 재미난 것이 작가의 어린 시절보다 더 많아졌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못하고 보는 것으로 끝나 버리는 것이 안타깝다는 작가의 말이 실감 났다. “책에 상상력을 더하면 책이 움직인다!” 우리는 지금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상상력이 제대로 발휘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작가와 손주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살아낼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달을 따러 간 아이들》에서 짧게 발췌한 아래 글을 읽으면서 독자들도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건 어떨까?
저, 보름달을 따다 축구 시합을 하면 좋겠다!”
아이들은 모두 바보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한다고 놀렸습니다.
“저렇게 큰 달을 어떻게 차면서 놀 수 있니?”
무슬이가 핀잔을 주었어요.
“봐, 축구공보다 훨씬 작잖아.”
창공이는 축구공으로 보름달을 살짝 가렸습니다.
“어, 정말 달이 축구공보다 작네!”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래, 달을 따러 가자.”
나라가 느닷없이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어요.
“초속 10만㎞로 달리는 플라즈마 우주 왕복선은 세 시간이면 달에 도착한대.”

백승관 작가의 주요 이력
- 2009년 남양주 송라초등학교 교장 퇴임
- 2015년 《한국문인》신인상 수필 등단
- 2017년 《아동문학세상》동화 당선으로 등단

백종례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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