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모교에서 근무해보기를 희망한다. 내게도 몇 해 전 모교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예전에 비해 학생 수가 많이 줄어 분교가 되었지만,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학교시설이나 환경이 얼마나 변해 있을지 무척 궁금했다. 하지만 20년 전 내가 공부하던 그때의 칠판과 마룻바닥, 심지어 교단도 그대로였다. 언제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던 학교담장과 스탠드, 그리고 녹슨 미끄럼틀과 철봉. 시간이 멈춰 버린 것 같았다.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물건을 그대로 만날 수 있는 반가움이 아니라,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은 이유가 그 동안의 학교에 대한, 교육에 대한, 아이들에 대한 무관심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전교생 23명의 시골 분교에서 더 이상 열악한 환경만을 탓하고 있을 수 없었고 언제 폐교가 될지 걱정만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마을에서조차 학교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늦은 저녁 학교에서 학부모님, 마을 이장님, 부녀회장님 등을 모시고 협의회를 열고, 학교 동창회를 활성화시키는 일부터 시작했다. 분교라는 이유로 예산지원이 되지 않는 현실만 탓하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외부기관에서의 교육활동 지원사업을 직접 찾아내 아이들에게 다양한 교육활동 기회도 마련해 주었다. 학교는 다시 북적이기 시작했고, 분교임에도 교실을 증축하고 유치원과 특수학급까지 생기게 되었다. 학교는 마을을 살리는 구심점이 되었고, 온 마을이 아이들의 배움터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모든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을까? 20년 동안 멈춰 있던 시간을 깨우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 모두의 학교’라는 인식의 공유였다. 학교라는 공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을 연결해주는 모두에게 특별하고 소중한 곳이기 때문이다.

굳이 우리 사회가 교육자치, 궁극적으로 학교자치로 나아가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해서는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 동안 지속되어 왔던 학교자치에 대한 요청과 요구는 학교의 자율성을 기반으로 학교의 당면과제 해결과 지속적인 교육개혁을 통해 학교의 교육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교육부, 시도교육청, 교육지원청에서는 당연히 학교와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저해하는 요인을 줄이고 학교가 스스로 혁신해 갈 수 있는 환경과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정책들이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학교나 교사 역시 자율성과 전문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자율적으로 움직이거나 스스로 배양해야 한다. 학교의 자율운영과 민주주의 역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학교 구성원들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학교자치를 위한 제도적·구조적 차원에서의 정책들이 조금씩 견고해지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그리는 진정한 학교자치를 현장에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학교자치가 정책을 넘어 문화로’ 정착시키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럴 때 지속가능하며, ‘학생의 행복한 배움, 모두의 성장’이라는 학교교육 본래의 목표와 가치를 실현하는 데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정은숙 (홍천 남산초등학교 교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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