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58개 지자체 2년간 홀로여행, 박미희씨

푸른 하늘을 새털구름으로 돌다가 어느 작은 시냇물이 되어 풀꽃 이야기를 들려주며 강에 이른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늘 여행 중이다. 일상의 모든 것이 여행이 되었다는 박미희(54) 씨와 이야기를 나누며 삶의 여행을 함께 떠났다.

그녀의 우아한 여행은 2016년 3월 31일 대구와 고령에서 시작되었다. 전국 지자체 158개 지역에서 3일 동안 살며 거제 여행을 끝으로 올해 2월에 춘천으로 돌아왔다. 최소한으로 짐을 꾸린 배낭을 짊어지고 버스를 갈아타고 걸으며 현재의 풍경 속에서 과거를 만나고, 그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자연환경을 둘러보며 사람들과 나누는 정감어린 대화는 그녀의 내면을 충만하게 했다. 그리고 중년여자의 홀로여행에 용기를 주고자 도서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처음에는 혼자 여행한다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어요. 어느 날 근교를 걷기로 한 지인이 약속을 갑자기 취소하는 바람에 석사동에서 원창고개를 넘어가는 먼 거리를 하루 종일 혼자 걷게 되었죠. 그때 홀로 걷는 즐거움을 알았어요. 마음 가는 곳에서 저의 속도로 자연과 저만의 교감이 오롯이 존재하는 순간이었죠.”

그녀는 경희대 약대를 졸업하고 약사인 남편과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았다. 그녀는 약사로 일하기보다 남편의 그늘에서 가족과 직원들을 돌보며 지냈다. 남편은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으로 건강했던 사람이다. 일과 자기계발에도 의욕적이었다. 남편은 직원이 6명이나 되는 약국을 운영하면서 공부를 위해서라면 지방으로 돌아다니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봉사활동에도 열심이어서 일주일에 서너 번은 자정을 넘겨 두세 시에 귀가하곤 했다. 허벅지에 생긴 멍이 점점 심해지고 몸이 피곤해서 병원을 찾았던 남편에게 백혈병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내려졌고 손을 쓸 기회도 없이 두 달 만에 부부는 가장 큰 이별을 맞았다. 그때 아이들은 중학생, 초등학생이었다.

1년 후, 그녀는 춘천에서 제2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당시 큰 딸은 춘천에 있는 전인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2004년 10월 남편을 보내고 다음해 겨울에 서울 집에서 춘천으로 가는 딸에게 보내는 글을 그녀의 블로그에서 볼 수 있었다.

“이안님 잘 지내고 있나요? 설에 이안님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혼자서 춘천으로 가는 모습을 보며 이안님이 대견스러워 보였어요. 그 나이에 엄마는 포천을 벗어나지 못했었는데 혼자서 여행을 다하고. 엄마가 그 동안 너무 여유가 없었나 봐요. 우리 이안님이 더욱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게 많이 도와주었어야 했는데…그리고 이안님은 항상 잊지 말아요

엄마는 항상 이안을 믿고 있고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것은 아빠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사랑해요. 이제 조금만 있으면 춘천에서 함께 살게 되겠죠. 그때까지 도와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기쁘게 보람되게 잘 지내길 바래요. 사랑해요. 이안님!”


인터뷰 하는 중간에도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 높임말을 섞어 사용하며 마지막 인사는 ‘사랑한다’로 마무리했다.

남편이 떠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인가?’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그동안은 부모님의 울타리에서 어려움 없이 공부하고 성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하고 약사가 되었고 결혼 후에는 남편이 만들어준 사회적 환경에서 안락하게 지내왔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내가 행복할지에 대해 처음으로 깊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거죠.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교사가 필요했어요. 그 학교는 아이들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주체적인 삶을 배우는 곳이었어요. 저도 제 삶을 찾아가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마음에 교사생활을 5년간 했어요. 그때 자연이 눈에 들어왔어요. 학교는 시골마을에 있었는데 비밀스러운 속마음을 내가 사랑하는 식물들을 보며 털어놓기도 하며 대화하기 시작했어요. 수업과정에 야생화사전 만들기 수업과 진로 탐색 수업을 하며, 계절수업 프로그램으로 역동적인 체험활동을 지도하며 교사가 아니라 학생처럼 모든 활동을 함께 체험하며, 아이들이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저도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5년간의 학교생활에서 아이도 그녀도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충분히 한 셈이었다. 그래서 퇴직 후, 삶의 목표는 뚜렷했다. 숲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고, 춘천생명의숲에서 숲 해설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숲 해설도 하고 야생화 강사로도 활동했다. 그리고 이제는 고인이 된 구춘서 선생을 만나 생태공예에 관심을 갖게 되어 선생의 뒤를 이어 생태공예연구소를 만들었다.

“혼자되었을 때 누군가에게 가까이 가는 것이 부담스러웠어요. 독신이라는 사회적 편견도 신경 쓰였지요. 식물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매번 새로워요. 제가 몰랐던 풀꽃 하나를 만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이렇게 제 안의 사랑을 식물들에게 흠뻑 주고 식물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우아한 홀로여행을 계획했다. 숲 해설사나 공예가의 수입으로는 생활유지가 어려워 일주일에 이틀정도 약사로 일을 했다.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오랫동안 적금을 붓고, 타던 자동차를 팔아 목돈을 만들었다. 2016년부터 시작한 여행이 길어지는 바람에 나중에는 자산을 줄이기도 했다.

2013년에는 스페인 산티아고 800km 순례 길을 걷는 여행을 다녀왔다. 걸으며 본 풍경들과 거쳐 간 마을의 이야기, 오래된 작은 마을의 독특한 생활양식이나 역사, 예술품들에 대해 마을 사람들과도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 지역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맛이 있잖아요? 간단한 대화지만 마을의 역사와 지역의 문화, 사람들에 대해 알게 되니까 여행하는 맛이 깊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한계가 있더군요. 언어 사용에 있어서 깊이 있는 대화가 안 되는 겁니다. 여행하는 지역에 대해 좀 더 깊이 느끼고 싶고, 사람들과 감성적이고 인간적인 대화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국내여행을 계획하게 되었어요.”

버스터미널 주변에 숙소를 정하고 작은 배낭에 필기도구, 사진촬영용 구형 폰, 비상용 볶은 곡식 등을 챙겨 마치 동네 오일장 구경 가듯이 바로 길을 나선다. 그리고 시(군)청 관광과에 들러 정보를 얻고 그 지역의 문화재와 역사 등을 탐색한 다음 읍내를 어슬렁거린다. 느긋한 여유를 가지고 때로는 이방인으로 설레는 객창감도 즐긴다. 혼자 훌쩍 떠나지 못하는 지인이나 그녀와 같은 방법으로 여행하고자 하는 이가 연락을 주어 때로는 동행하기도 했다. 여행하며 고마운 사람들을 만나면 직접 만든 핸드메이드 나뭇가지 연필을 선물로 주기도 하며 그곳에서 인상 깊었던 사람에게는 보자기에 사인을 받았다.

그녀에게는 가장 소중한 보물이다. 저녁에는 카페에 두어 시간 머물며 그날 다녀온 곳에 대한 감상을 정리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고 시간이 다소 걸리는 일이지만 조용히 하루를 정리한다는 것은 다음날 여행 계획을 세울 수도 있는 중요한 일과이기도 하다.

“여자가 홀로 여행한다는 것에 대한 꿈도 있지만 두려움도 많을 줄 알아요. 저를 통해 용기를 얻기 바랍니다. 살고 있는 지역에서조차 조금 먼 거리를 혼자 걷는 일에도 걱정스러울 만큼 소심했어요. 처음이 어려울 뿐이지 그 다음은 쉬워요. 이제 어디를 가든 저에게는 일상 같은 여행이고 일상도 여행입니다.”

그녀는 결코 가볍지 않은 자신의 삶 앞에 펼쳐진 세상을 받아들였다. 안락함보다는 불편함을 선택했고 덜어낸 삶도 그녀의 배낭만큼 가벼워졌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산박하 같은 향기로 남기고자 한다.

 

김예진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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