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령 복싱 선수 이은장 씨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운동선수들의 87%가 20대에 은퇴한다고 한다. 골프나 승마 같이 비교적 움직임이 부드러운 분야에서는 그 기간이 연장되기도 하지만 평균적인 은퇴시기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여기, 스포츠 종목 중에서도 가장 몸싸움이 치열하다는 복싱에서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최고령 복싱선수 이은장(72) 씨다. 그는 58세 때 생활체육 복싱선수로 데뷔해 지금까지 현역으로 링 위에 오르고 있다. 비슷한 연령대의 선수들이 없어서 한동안 복싱을 쉬기도 했지만 지난 5월 다시 시합에 출전하게 되면서 현역기간을 연장할 수 있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뜨거운 에너지를 품고 있는 이은장 씨를 중앙로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고 왔다.

“제가 춘천에서는 좀 유명하나요?”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전화를 했을 때 그는 대뜸 그렇게 물었다. 사실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일흔이 넘은 복서라고만 알고 있었지 어떤 이력이 있는지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은장 씨는 최고령 복서라는 타이틀로 지역 방송에 이미 여러 번 출연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2013년에는 EBS 프로그램 ‘용서’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이 방송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고 한다. 1995년에는 춘천시의원에도 출마한 경험이 있고, 군복무 시절에는 베트남전에 참전한 용사이기도 하다. 지역사회에서는 20년 이상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고 최근에는 지역 일간지에 칼럼도 기고할 정도로 사회적 이슈에도 관심이 많다. 여러 가지 궁금증이 있었지만 일단 어떻게 늦은 나이에 복싱에 입문하게 됐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어떻게 복싱을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언제 시작하셨나요?

“58세 때 처음 복싱을 시작했습니다. 50대가 돼서 몸 관리를 안 하니까 금방 배가 나오더라고요. 술도 많이 마셨고. 또 당시에 당뇨도 좀 있었는데 운동을 통해 건강을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 복싱체육관 간판이 눈에 들어왔어요. 저기서 줄넘기라도 하면서 살을 좀 빼야겠다 싶어서 들어갔죠. 그렇게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운동하고 있는데, 관장님이 저를 보시더니 펀치가 좋다면서 대회에 한 번 나가보자는 거예요. 그래서 대회에 나갔고 지금까지 복싱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펀치가 좋아도 상대선수들에 비해서 나이가 많은 편인데 걱정은 안됐나요?

“원래 합기도를 오래 했었기 때문에 뭐 큰 걱정은 없었어요. 또 젊었을 때는 주먹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도전할 수 있었죠. 그런데 이게 정말 다르더라고요. 복싱글러브를 끼고 잘하는 펀치를 날리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내 펀치를 낼 수 있게 되니까 답답함도 사라지고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시합에 빨리 나가고 싶었죠.”

그래도 여전히 가족이나 주변 분들은 걱정하지 않나요?

“처음에는 걱정했죠. 오죽하면 집사람이 KBS프로그램 ‘안녕하세요’에 까지 사연을 냈어요.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죠. 딸이랑 아들도 모두 말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래, 우리 아빠가 누구한테 질까? 이길 거야’라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차분하게 꾸준히 가족들을 설득하면서 지금은 다들 안심하고 있는 분위기예요. 그런데 다른 걱정이 있기는 합니다. 제가 나이도 있는데 주먹 쓰는 운동을 한다면서 주변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때가 있어요. 실제로 저를 교양 없는 사람으로 보기도 하죠. 그럴 때는 참 안타깝습니다.”

사실 이은장 씨는 최고령 복서라는 타이틀보다 사회봉사에 적극적이고, 글을 좋아하는 칼럼니스트로 보이길 원했다. 복싱선수로 활동한 시간보다 사회봉사 활동을 한 기간이 더 오래됐기 때문이다. 월드비전 강원지부에서 17년 동안 해오고 있는 도시락배달도, 20년 이상 지속하고 있는 사회기부도 다 그런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이은장 씨는 2010년에는 한림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편입하는 등 만학의 꿈도 불태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장기기증과 시신기증도 약속하며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사회봉사활동을 참 오랫동안 하셨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특별한 계기는 없습니다. 천성이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참 힘들게 컸거든요. 6·25때 어머니와 저만 살아남아서 성장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고요. 제가 좀 풍족하지는 못해도 당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우면 그게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도와주고 그걸 알리는 순간 잔잔한 행복감이 덜하더라고요. 그래서 남들 몰래 도움을 주고 혼자 그걸 생각하다보면 나도 몰래 은근한 미소를 짓게 되더군요. 그래서 지금도 기자님한테 얘기 안하는 것도 있어요. 그걸 다 얘기하면 내 행복감이 사라져요. 그래서 혼자만 알고 있는 것도 있고 그래요.”

주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면서 또 같이 행복하고자 하는 뭐 그런 바람인가요?

“뭐 그런 거창한 이유보다도 요즘에는 인간사회에 웃음소리가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조금 가난하더라도 예전에는 사람들 사이에는 늘 웃음소리가 있었어요. 아이들은 서로 뒤엉켜 놀고 어른들은 그걸 야단치면서도 흐뭇하게 바라보는 그런 웃음소리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예전보다 경제적으로는 훨씬 더 풍족한데 서로 비교하고 질투하는 바람에 사람 사는 맛은 전혀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런 인간사회의 웃음소리가 참 그립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유가 많지 않아도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거죠. 좀 더 큰 웃음소리가 들리게.”

사회이슈에도 관심이 참 많으십니다. 요즘은 어디에 관심을 두고 계시나요?

“전반적으로 사회가 분노조절장애를 겪고 있다고 생각해요. 뭐든지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다 보니까 서로가 분노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적 교육이 아주 절실하다고 보고 있어요. 예전에는 40대나 50대에 분노조절장애를 느끼는 사람이 많은데, 지금은 20대나 30대에서도 그런 특징이 나타나요. 이거 참 문제가 있다고 봐요. 그래서 젊은 친구들이 어려워도 정신력을 갖고 잘 이겨냈으면 좋겠어요. 분노보다는 독기를 품고, 한 대 맞으면 두 대 때린다는 생각으로 어려움을 잘 극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복싱은 언제까지 하실 거죠?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 이대로 사는 겁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오늘이 내가 가장 젊고 건강한 날인 거예요. 그래서 내일이 오늘보다 덜 건강할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단순하게 생각하게 돼요.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살자. 그리고 남도 더 도우면서 살고. 복싱은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려고 합니다. 일단 내년 하반기까지는 내 몸이 버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계획하고 있는 사업이 있는데 그것도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최고령 복서 이은장 씨는 영국 가수 데 이비드 보위와 엘튼 존, 가수 송창식, 배우 윤여정 씨와 동갑이다. 이은장 씨는 최근 중앙로에 사무실을 열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바로 ‘정년 없는 회사’를 만드는 것. 빈곤, 장애, 소외를 겪는 분들을 고용하고 회사의 이익을 전부 그들에게 돌려준다는 것이다. 사각의 링이 아닌 사랑의 장을 펼치려는 이은장 씨의 인생 2라운드를 기대한다.

 

배정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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