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산지에서는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걷는 오리떼 모양의 귀여운 ‘진범’의 꽃을 볼 수 있다. 특이한 이름 때문에 이맘때면 야생화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진범을 잡았느니 말았느니 언어유희(pun)가 벌어지기도 한다.

‘진범’은 현대 식물학의 거두 정태현이 참여한 《조선산야생약용식물》(1936)에는 ‘진교’로 기재되었다가 《조선식물향명집》(1937)에 ‘진범(오독도기)’로 바뀌어 기록된 이후로 현재 국가표준식물목록의 추천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는 《산림경제》 등의 18세기 농서(農書)나 어휘사전에서 원래 우리나라에는 없는 한약재인 ‘진교(秦艽)’를 ‘진봉(秦芃)’으로 오기(誤記)하고 이를 다시 ‘진범’으로 오독(誤讀)하면서 생겨난 이름이다.
‘진교’와 ‘진범’은 엄연히 다른 식물이지만 실물에 대한 고증 없이 책으로만 지식이 전달되면서 발생한 오류로 보인다.

《본초강목》, 《동의보감》 등의 의서(醫書)에서는 비슷한 약재인 ‘진교(秦艽, G. macrophylla, 용담과)’와 ‘낭독(狼毒, Euphorbia fischeriana, 대극과)’, ‘오두(烏頭, A. carmichaelii, 미나리아재비과)’를 다른 식물의 뿌리로 구분하였지만 중국과 식생이 다른 우리나라에서는 대체하거나 혼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참고로, 현재 중국식물지에서도 다른 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이를 ‘지느러미진교’라 부르며, 어떤 본초도감에서는 진교와 구분하여 ‘한진교(韓秦艽)’로 부르기도 한다. 중국명은 宁武乌头(ning wu wu tou)으로 산서성의 닝우(宁武) 지역에 분포하는 烏頭(오두; 투구꽃 종류)라는 뜻이며, 일본명은 レイジンサウ(伶人草, 레이진사우)로 꽃모양이 악공(伶人)이 쓰는 모자와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속명 Aconitum(아코니툼)은 그리스어 akoniton에서 온 것으로 표범이나 늑대를 사냥하기 위해 창끝에 바르는 독을 말하는데 이 식물의 독성과 연관된 이름이다. 또한, 종소명 pseudolaeve(슈도라에베)는 pseudo(가짜의)와 laevus(겁쟁이)의 합성어로 겁쟁이와 유사하다는 뜻이 된다.

최동기 (식물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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