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는 하늘과 땅과 사람, 천지인 삼재의 조화!” 가끔 의도적으로 이런 케케묵은 표현들을 소환하기도 한다. 우리가 잊고 있거나 거부하고 있는 근본을 상기시키려는 의도다. 아무리 천지에 빌어본들 천지는 무심하고 몰인정할 뿐이다. 노자의 천지불인(天地不仁), 순자의 천인지분(天人之分)은 불가항력적인 인간 현실을 직시하는 것 위에다 뭘 세워도 세우라는 매우 인문적인 충고였다.

지난 더위와 가뭄과 태풍으로 우리는 아주 조금은 겸손해졌다. 하지만 인간은 거시적으로는 오만하고 미시적으로는 무모한 존재. 오로지 인간의 힘을 과학기술과 자본의 힘을 과신한다. 현대적 과신은 급기야 스마트팜 밸리 따위의 미신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농사의 결실을 얻는다면 그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조화’라는 소박한 마음을 너무 쉽게 잊는다. 우리는 당연한 듯 가을바람과 함께 유난했던 여름을 싹 잊게 될 것이다.

그나마 인간의 힘을 한껏 발휘해서 인간이 행복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온갖 기술과 자본이 투입되고 행정과 산업까지 그렇게 힘을 들였다면 농민이 행복해야 마땅한데 현실은 거꾸로다. 천지인의 조화도 실패하고 인간의 의지와 노력도 실패한 파산지경에 농민만 괴롭다.

강원도는 감자의 고장이니 감자에 관한 실증적 자료 하나를 전달한다. 2016년 국가통계에 의하면 3백평 감자농사 총수입이 딱 2백만원이었다. 수입이 그렇다는 것이고 평균 농업소득율로 따지면 소득은 7십만원 남짓이다. 도대체 감자농사를 하는 농민은 얼마나 많은 씨감자를 얼마나 넓은 땅에 심어야 최저임금 연 1천8백만원 근처에 닿을 수 있을까? 계산하면 7천7백평이니 드넓게 농사지으면 될까? 우울하게도 강원도 70% 농민이 연 소득 4백만원 소득 이하다.

중소농은 갈수록 살아남기 어렵다는 실증이고, 어렵다는 것은 지금 중소농의 호주머니가 텅 비어있다는 뜻이다. 중소농을 북돋우는 농정으로 가야만 들판에는 미래가 있다. 거기다 농정이란 뻔한 말만 하고 있으니 미칠 노릇. 그렇다면 당장 우리 스스로 미래를 열 수는 없을까? 키워드는 협동이고 나눔이고 감사다. 생협도 좋은 시스템이지만 마침 가을의 문턱이니 제안을 하나 해 본다.

가난하게 시작했고 지금도 풍족하지는 않지만 잘 뿌리내리고 있는 후배 농민에게 들었다. 예전에 직접 알지는 못하는 지인의 지인이 난데없이 30만원을 부쳐주었다 한다. 아이가 한참 어릴 때고 농사란 것이 월급제도 아니니 현금이 한참 궁할 때, 너무도 힘이 되었고 너무도 감사해서 아내와 함께 울었다고 했다. 가을 지나 겨울에 풍성하게 농산물로 되갚았고 그 관계는 지금도 지속된다는 이야기.

춘천사람들 독자님들은 미련한 농사를 우직하게 이어가는 강원도 농민 한둘은 알 것이다. 한 다리 건너면 대여섯은 알 수 있다. 청년이든 할머니든 귀농자든 토박이든 따지지는 말자. 무심한 천지를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은 인간들의 인간됨이다. 이렇게 문자를 보내 보면 어떨까?

“홍길동의 친구 전우치라고 합니다. 성실하게 농사를 지으신다고 들었습니다. 땅을 지키는 농민을 응원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전하고 싶습니다. 계좌번호를 부탁드립니다. 추석에 급하게는 마시고, 겨울이든 봄이든 아무 때고 농산물로 보내주시면 무엇이든 귀한 마음으로 먹겠습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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