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k칼럼] 무엇으로 ‘유신(維新)’을 도모할 것인가
[Desk칼럼] 무엇으로 ‘유신(維新)’을 도모할 것인가
  • 전흥우 편집국장
  • 승인 2018.11.01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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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흥우 (편집국장)
전흥우 (편집국장)

10월 26일, 역사적으로 중요한 두 번의 총성이 울렸다. 하나는 1909년 중국 하얼빈 역에서 있었고, 또 다른 하나는 1979년 서울 궁정동에서 있었다.

안중근은 당시 조선침략의 원흉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쏘아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으며, 그로부터 정확히 70년 뒤에 김재규는 박정희를 제거함으로써 유신독재를 끝내고자 했다. 이들의 의거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나 역사의 큰 흐름은 바꾸지 못했다. 1년 뒤 일본은 결국 조선을 삼켰고, 유신독재는 신군부의 정권장악으로 이어졌다. 일본으로부터 독립하는 데는 35년의 세월이 걸렸고, 군부정권에서 실질적인 문민정부로 교체되기까지는 13년이 걸렸다.

이토는 “술이 취하면 나는 미녀의 무릎을 베고 쉰다. 술이 깨면 나는 권력의 고삐를 힘차게 잡아 쥔다”고 큰 소리를 쳤다는데, 이런 점에서는 박정희도 이토를 많이 닮은 듯하다. 박정희는 궁정동 안가에서 술에 취하면 일본도를 차고 제국주의 일본의 군가를 힘차게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이토와 박정희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이토는 관료 출신으로서 타협을 중시한 정치인이었다. 초기에는 일본 내의 정한론(征韓論)에도 반대했다. 반면 박정희는 군인 출신으로 타협이란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박정희는 ‘유신(維新)’이라는 말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에서 따왔을 것이다. 1889년 반포된 ‘대일본제국헌법’은 이토의 작품이었다. 이토는 헌법을 제정해 일본 정당정치의 길을 열었으나, 박정희의 유신헌법은 정당정치를 철저히 가로막았다.

‘유신(維新)’이라는 말의 본래 출처는 《시경(詩經)》 〈대아(大雅)〉편 ‘문왕(文王)’ 조로 알려져 있다.

文王在上 於昭於天

周雖舊邦 其命維新

有周不顯 齊命不時

文王陟降 在帝左右

문왕(文王)께서 위에 계시는데 아아, 하늘에서 밝게 빛나도다

주(周)나라는 오래된 나라지만 그 명은 더욱 새롭기만 하다

주나라가 드러나지 않을까 상제의 명이 때에 맞지 않을까

문왕께서 하늘땅을 오르내리며 상제 곁에 계시도다

- 《시경(詩經) 대아(大雅)》 〈문왕(文王)〉

이 시는 주(周)의 문왕이 천명을 받아 주나라를 새롭게 이룩한 치적을 읊은 작품으로, ‘유신(維新)’은 ‘주나라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지만 문왕이 나와 나라를 혁신시켰다’는 데서 유래했다.

언어는 역사성과 사회성을 반영한다. 원래 좋은 의미지만 누가 쓰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유신’이라는 말도 이와 같다. 일찍이 마오쩌둥(毛澤東)이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말했지만, 마태복음서 26장 52절에서 예수는 자신을 위해 칼을 빼려는 한 지지자를 향해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며 그를 만류했다.

칼도 총도 아니라면 우리는 지금 무엇으로 ‘유신(維新)’을 도모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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