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번째 마실 - 서면 당림리(塘林里)] 숲도 세월도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함께’하는 사람들
[스물여덟 번째 마실 - 서면 당림리(塘林里)] 숲도 세월도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함께’하는 사람들
  • 김예진 시민기자
  • 승인 2018.11.0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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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림 1리 노인회.
당림 1리 노인회.

당림리(塘林里)는 신당을 모신 숲이 있으므로 당숲 또는 당림이라 했다. 당림1리 입구에 당숲마을이라 알려주는 표지판과 마을 주민이 가꾸는 꽃길이 반갑게 맞이했다. 들깨를 베어 널어둔 밭과 빈 들, 멀리 붉어진 산들에게 눈길을 주다가 이내 당림초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에게 옮겨갔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일이 된 지 오래지만 이곳에서는 아이들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낙엽과 함께 뒹굴었다. 1935년에 개교한 당림초교는 마을 노인에게도 자랑이었다. 단 한 명의 입학생이라도 있다는 게 고맙다고 했다. 고향을 지키고 있는 노인회 할아버지들은 이 아이들과 동문이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당림초등학교 아이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당림초등학교 아이들.

“옛날에는 호랭이가 나온다는 석파령을 넘어 학교도 걸어 다녔지. 우리 어릴 적에는 강변으로 사람 하나 다닐 정도로 작은 소로였어. 그땐 강이 저리 높지를 않았어. 허연 모래랑 자갈이 다 드러났었어.”

당림1리를 둘러보던 날은 어르신들이 마을 청소하는 날이었다. 청소를 마치고 모여서 점심까지 들고는 회관 앞 게이트볼 장에서 담소를 나누거나 뿔뿔이 흩어지려던 참이었다. 단체 사진 찍어드린다 했더니 가던 길을 되돌아 와 모여 앉았다.

“아휴, 조금만 더 일찍 오면 맛난 밥을 같이 먹을 건데… 밥은 먹었수?” 이구동성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며 아쉬워했다. 어르신들은 3일에 한 번은 만나 점심을 함께하고 일도 같이 한다. 풍채 좋고 목소리가 걸걸한 노인회장(79)은 한쪽다리가 불편했다. 노인회장과 몇몇 할아버지가 비닐로 바람을 막아주어 햇살 따뜻한 게이트볼장 안에 있는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11살 때 한국전쟁을 겪은 이 회장은 미처 피란도 못가고 폭격에 집이 무너지고 한쪽 다리도 잃었다.

“내가 그때도 덩치가 컸다구. 어머니가 어른만한 애를 업고 걸어서 병원엘 다녔지. 이 석파령고개를 넘고 덕두원에서 배를 타면 송암동에 떨어져. 삼천동을 거쳐 중앙시장을 지나 도립병원을 다녀오면 하루 온종일 걸렸지. 우리 어머니가 고생이 많으셨지.”

이 회장은 농사일을 하다가 스무 살이 넘어서는 소 장사를 했다. 가평은 20리 거리이고 춘천은 50리로 길이 험하기도 해서 주로 가평장엘 다녔다.

“춘천장이 7일, 가평장은 8일이었어. 춘천에서 소를 못 팔면 가평에 내다 팔았지. 버스는 다녀도 소는 소몰이꾼이 걸어서 장엘 내왔지. 소를 잘 모는 이는 5마리까지도 몰아. 두당 품값을 받으니 많이 몰아야 돈이 되지. 내가 소를 못 팔면 되돌아 와야 하니 품값이 두 배로 들어 손해야. 품값을 아끼려고 갔다가 내 소를 도둑맞아서 낭패도 봤었지.”

훔친 소를 잘못 샀다가 두 마리 값이나 더 내놓고 가세가 기울어 울화가 치밀어 술만 먹다가 병으로 떠났다는 이웃 할아버지 얘기에서부터 동네 할아버지들의 과거사 얘기는 끊이질 않았다. 눈물이 날 만큼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래도 설 명절부터 보름까지는 집집마다 돌아가며 저녁 해서 먹고 윷을 던지며 놀았던 시절이 그립다고 했다.

당숲은 마을 어귀의 풀무원 공장자리였다. 두세 아름되는 커다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그곳에 제를 지냈었다. 상상만으로도 아름다운 마을숲이 그려졌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오랫동안 수많은 생명들의 터전이었던 숲이 마구 훼손되는 얄팍한 논리에 분노감마저 든다. 숲에 기대어 위로를 받고 품었던 희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권오영 서각예술가 집 대문 옆 ‘함께’.
권오영 서각예술가 집 대문 옆 ‘함께’.

당림초교 바로 옆, ‘함께’라는 노란 글씨가 걸린 집이 생각났다. 서각예술가 권오영 씨의 작품이다. 연락이 닿지 않아 지나는 길에 집 앞에서 대문 사이로 마당을 훔쳐보며 기웃거렸다. ‘춘천시민언론협동조합’ 현판을 새겨 걸어준 인연도 있고 해서 만나고 싶었지만 두 번째 방문에도 기웃거리기만 했다. 타 매체의 인터뷰 기사를 보며 ‘집 앞을 지나는 이 누구라도 문을 두드리면 반갑게 대접하고 싶은 마음으로 집을 짓고 매만지며 살아간다’라는 대목에서 ‘함께’라는 글자를 대문에 건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을에는 봄내3길과 석파령 옛길의 안내판과 이정표가 있었다. 예현병원 뒤로 어린 은행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노랗게 눈부신 이곳에서 석파령 옛길과 수레너미 임도가 시작된다. 이 길은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길이다. 한양과 춘천을 이어주는 도보 길로 옛사람들의 애환과 역사가 서려있다. 험한 고갯길인 석파령을 넘어 신임과 전임 춘천부사가 좁은 길에서 자리를 잘라서 나누어 앉을 만큼 험한 길이었지만 춘천의 절경에 감탄하거나 떠남을 아쉬워했다고 한다. 임도는 호젓한 오솔길로 잣나무와 낙엽송이 장관이다. 석파령 갈림길에서는 왼쪽 방향은 평지 같은 능선이 구불거리고, 10km 정도 가면 계관산, 삼악산 등산로 이정표가 보인다. 시원스럽게 터진 시야로 온 산이 울긋불긋 들어온다. 당림리의 가을숲을 놓치지 말자.

경춘국도 강촌교를 지나 주유소와 편의점 바로 앞길이 당림2리 입구다. 삼악산성길이란 도로명 이정표에 관심이 갔다. 삼악산성은 삼악산 등산로에 있는데 등선폭포 계곡을 올라 흥국사 대웅전의 뒤쪽으로도 길이 있다. 이 산성은 삼한시대 맥국의 성이라고도 전해지는데, 918년 태봉국을 세운 궁예가 철원에서 왕건에게 패하고 이곳에 성을 쌓아 피난처로 이용했다는 전설도 있다. 성 주변에서는 옛 그릇의 조각과 와편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당림2리 초입의 느티나무와 벚나무, 은행나무 단풍에 사로잡혀 한참을 나무 아래에 머물렀다.

이른 봄, 당림2리 골짜기 끝에 다녀온 적이 있다. 너도바람꽃이 무리지어 꽃샘추위에 얼굴을 하얗게 떨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왔었다. 그리고 80대 노부부의 아름다운 미소도 담아왔었다. 노부부가 사는 집은 70년이 되었다. 정재갑 할아버지가 군대 가던 해에 장남에게 시집 온 새색시는 시할머니, 시부모님, 시동생, 시누까지 층층시하에서 집안일이며 밭일도 버거운데 겨울에 땔감까지 져야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집과 흙을 지키는 80대 노부부.
부모님이 물려주신 집과 흙을 지키는 80대 노부부.

“이 사람이 고생이 많았지, 나야 군대 갔으니 자세히는 몰랐지만 나이가 젊을 때니 그런 맘을 알지 못했지요.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땅이니 이걸 못 버리지요. 지금껏 농사만 지었어요.”

지난해 당림리에 정착한 박영철 씨.
지난해 당림리에 정착한 박영철 씨.

당림초등학교와 창촌중학교을 거쳐 농업고등학교까지 졸업한 할아버지는 당시로는 고학력이었다. 겨우 초등학교만 마치는 게 대부분이어서 주변에서 공무원을 해보라고 권하기도 했지만 부모님이 물려주신 농토를 버려둘 수는 없었다고 한다. 두 동생들은 교장으로 퇴임해서 연금 받으며 편히 살지만 할아버지는 그날도 비가 온다는 말에 들깨를 다 털어야 한다며 마음이 바빴다. 노부부와 세월을 함께한 집은 처마와 벽에서 주름살처럼 흙이 흘러내렸지만 부부는 이집을 떠날 생각이 없다. 마루에는 가을걷이를 널어두고 흙마당 한쪽 구석엔 파란 이끼가 시절처럼 남아 졸고 있었다. 정화조가 없이 맨 땅에 볼일을 보고 재를 덮어 거름으로 쓰는 뒷간도 아직 그대였다. 노부부가 떠나도 옛집은 사라지지 않으면 좋겠다. 무엇이든 새 맛을 좋아하는 시대라지만 쉽게 부숴버린 옛 정은 어디서 함께 할까?

당림1리 초입의 가을단풍.
당림2리 초입의 가을단풍.

당림1리 골짜기 끝, 도시생활이 어려워 막연한 꿈만 가지고 3년 전 귀농한 배용진(67) 씨가 산다. 경험과 자산의 부족은 삶을 더욱 괴롭혔다. 고육지책으로 마을에 있는 목재소에 취직했지만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농사는 올해 포기하고 아내가 생활비를 벌러 시내에 일을 하러 나간다. 박명철(49) 씨는 은행에서 차장으로 근무하다 도시의 각박함이 싫어서 10년 전 귀농을 결심했다. 시골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지난해 이곳에 홀로 정착한 박씨는 비록 임대 농지이기는 하나 자신감을 보였다. 어렵게 정착한 새로운 주민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당숲은 사라졌지만 마을사람들이 당숲이 되어 기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김예진 시민기자

※ 그동안 ‘구석구석 춘천마실’을 사랑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기회에 ‘시즌2’로 찾아뵙겠습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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