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흥우 편집국장
전흥우 편집국장

지난달 31일, 영화감독 권경훈의 다큐멘터리영화 <1991, 봄>이 개봉됐다. 이 영화는 우리의 시선을 27년 전으로 돌려놓는다.

1991년 봄, ‘한국판 드레퓌스사건’이라고 불리는 일이 발생했다. 재야단체에서 일하던 한 청년이 분신자살을 했고, 경찰은 유서를 대필해 주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를 씌어 강기훈 씨를 구속했다. 그는 3년의 실형을 살았다. 당시 4월 26일 명지대 강경대 학생이 시위 도중 전경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것을 계기로 5월 25일 성균관대 김귀정 학생까지 한 달 동안 무려 11명이 분신이나 투신 또는 공권력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이른바 ‘분신정국’에 당황한 당시 노태우 정권은 재야단체인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씨의 분신자살에 대해 강기훈 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를 씌어 구속했다. 당시 김지하 씨는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칼럼을 썼고, 박홍 서강대총장은 분신을 조장하는 세력이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론몰이였다. 강씨는 내내 결백을 주장했지만 검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엉터리 필적감정을 증거로 제출해 기소했고 법원은 강씨에게 3년의 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국과수에 김씨와 강씨의 필적을 재감정해 달라고 요구한다. 2007년 11월 국과수는 5명의 감정인이 참여해 재감정한 결과 두 사람의 필체가 다르다는 의견을 낸다. 이에 진실화해위는 법원에 이 사건의 재심을 요청했고, 2012년 재심을 개시한 대법원은 2015년 5월 강씨의 무죄를 확정한다. 원심판결 후 24년 만이었다.

3년의 형기를 모두 마치고 나온 강씨의 삶이 어땠을지 짐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한 번 찍힌 낙인, 세상의 시선은 수형생활보다 더 가혹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간암이라는 병마와 싸워야 했다. 강씨가 무죄를 선고받던 그해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온다. 소설가 안재성이 쓴 《거짓말잔치》(단비)가 그것이다.

강씨의 경우와 같은 조작된 마녀사냥은 최근까지도 계속됐다. 그 마녀사냥에서 언론은 늘 화려한 조연을 담당했다. 지난달 26일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의 간첩조작사건 재판에서는 당시 증거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전 국가정보원 국장이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자백했다.

황혼 무렵에 이르러서야 날개를 펴는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진실은 언제나 뒷북을 친다. 그것은 역사의 몫이고 또 문학이나 예술의 몫이기도 하다. 토인비가 일찍이 “역사는 창작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사실의 선택, 배열, 표현 그 자체가 창작의 영역에 속하는 기술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예술가가 아니고서는 위대한 역사가라고 할 수 없다”고 간파했듯이 역사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예술가의 시선으로 구현하는 진실의 힘이다.

그러나 역사에 앞서 진실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언론이다. 역사는 과거를 다루지만 언론은 현재를 다루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는 결백합니다”라며 절규하는 목소리가 도처에서 끊이지 않는다. 창간한 지 3주년이 됐다. 《춘천사람들》은 앞으로도 ‘진실’의 편에 서서 ‘결백’을 증명하는 일에 더욱 앞장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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