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전북도의회 정책토론회에 발제자로 전주를 다녀왔다. 주제는 ‘스마트팜밸리사업의 타당성 검토’. 이 지면을 통해 타당성 없다고 말씀드린 바로 그 사업이다. 겉으로는 청년농업인 육성과 미래농업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결국 수백억 농업예산을 건설·개발에 퍼붓는 무책임한 사업이다. 김제시가 계획한 부지는 유서 깊은 저수지였던 농촌 습지라서 또 문제다. 독미나리 같은 멸종위기종이 있건 말건, 주민들에게 둘러대며 습지부터 메우겠다고 한다. 하기야 우리 춘천이 선정되었더라면 동면 솔숲을 베고 유리온실단지를 지었으리라.

작은 봉변을 당했다. 나는 반대론자이며 사업계획을 보편성에 입각해서 지적하겠다고 전제했으나, 일부 찬성론을 펴는 사람들의 대꾸는 이런 식이었다. “당신이 스마트팜을 알아? 강원도에서 온 당신이 김제를 알아?” 아주 틀린 지적은 아니다. 시간이 없어서 김제 농민들에게 상황만 전해 들었으며, 스마트팜 하우스도 종류가 많은데 최첨단 스마트팜은 직접 본 적이 없다.

이렇듯 나를 당황하게 만든 사람들도 있었지만, “멀리서 여기까지 일부러 와 준 손님한테 예의도 없소?” 라며 나무라는 농민들 덕분에 웃으며 넘어갔다. 그러나 돌아오는 내내 씁쓸했다.

나는 스마트팜 하우스농사를 짓는 농민에게 1%의 유감도 없다. 수만 평의 농지에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농사짓는 농민도 유감없이 존중한다. 마찬가지로, 꼬부랑 할머니 농민도, 일머리 몰라 헤매는 갓 귀농한 농민도, 농민을 거들고 농촌마을을 지켜내는 사람들과 나아가 도시농부들도 존중한다. 흙을 만지는 모든 농(農)의 사람들은 대접받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농민은 한 사람, 한 사람 다 특별하고 귀한 존재다.

내가 견딜 수 없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정치·정책 그중에서도 농정의 폐단이다. 모름지기 정책은 보편성과 특수성을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왜 그 수많은 정치인·공무원·연구자들은 특수함만 추구하는가? 어째서 특용작물·고소득 작물·신규작물만 추천하는가? 어째서 수억원씩 들어가는 고투자·고위험 농사만 추천하는가? 어째서 벼농사 포기하면 장려금을 주는가? 어째서 6차산업이니, 경쟁력이니, 되지도 않을 특수한 사례만 떠벌리는가? 어째서 강원도와 춘천만 특별히 잘 살 길이 있다고 사기 치는가? 특수성은 부분적·일시적이고 극소수의 농민들에게 해당할 뿐이다. 이럴수록 본말이 전도된다.

보편은 모두의 이로움을 추구한다. 그래서 가장 기초적이고 가장 평범한 것에 먼저 주목한다. 기초농산물 몇 가지만이라도 생산과 가격을 국가가 제발 관리 좀 하라는 농민들의 요구는 10년이 되어도 제자리걸음이다. 쌀·감자·고추·사과 같은 우리의 문화와 식생활에 밀접한 농사만큼은 정부가 제발 꼼꼼히 챙기면 안 되는가? 널뛰기하는 농산물가격 때문에 농민들도, 소비자들도 시시때때 가슴 졸이는 반복이 지겹지도 않는가? 기초·보편·상식이 허물어진 농업·농촌은 지방소멸을 극복할 도리가 없다. 그러나 정치는 이 말을 끝끝내 못 알아듣는다. 무슨 돌림병인지 정치인들은 선거만 지나면 약속을 싹 까먹는다.

나를 비난했던 사람도 대신 사과했던 사람도 농민이다. 저 농민들을 서로 반목하게 만든 것은 정치요 적폐농정이다. 책임질 일 생길까봐 유권자 눈치보고, 청와대에서 내려온 사업이니 당 윗선 눈치보다, 기공식 할 때는 기꺼이 가위질하며 사진 찍을 족속들. 마음의 상처와 물질적인 피해 그리고 부끄러움은 농민들, 주민들의 몫이다.

옛 노자의 말씀을 의역하며 마친다. “너희 정치하는 것들아! 기본적인 것을 잘 세워서 시민들을 순하고 선하게 이끌어야지! 필요도 없고 갖지도 못할 특이하고 유별난 것만 자꾸 띄워서 어쩌자는 거야? 시민들을 죄다 도둑놈 만들겠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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